김광현(34·SSG 랜더스)도, 양현종(34·KIA 타이거즈)도 아니다. 올 시즌 KBO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최우수선수(MVP) 투수 후보는 안우진(23·키움 히어로즈)이다.
기록이 말해준다. 안우진의 올 시즌 성적은 15승 8패 평균자책점 2.11이다. 다승왕은 케이시 켈리(LG 트윈스·16승)에 밀렸지만, 평균자책점과 탈삼진(224개) 1위에 올랐다. 그뿐만 아니라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24회)와 WHIP(이닝당 출루허용·0.95)도 1위. 규정이닝을 채운 선발 투수 22명 중 유일하게 1할대 피안타율(0.188)로 정규시즌을 마쳤다. 그는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아프지 않아서 만족한다. 풀타임 첫 시즌 평균자책점과 탈삼진 타이틀을 가져가 실감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우진은 2018년 신인 1차 지명으로 히어로즈에 입단했다. 휘문고 재학시절 저지른 학교폭력(학폭) 문제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실력 하나는 진짜"라는 평가를 들었다. 2020년 프로 첫 두 자릿수 홀드(13개). 지난 시즌엔 선발 투수로 8승을 따냈다. 그리고 올 시즌 유망주 껍질을 완벽하게 깼다.
그는 "주변에서 메이저리그(MLB) 톱10 선수 중 9이닝당 볼넷(BB/9)이 3개를 넘어가는 선수가 없다고 하더라. 그 말이 너무 와 닿았다. BB/9을 2.5개 밑으로 막아보자는 생각했는데 그 부분이 성적 향상에 많은 도움을 준 것 같다"며 "볼넷이 적으니 실점이 확실히 줄었다. 불리한 볼카운트에서도 스트라이크를 공격적으로 넣었다"고 돌아봤다. 안우진의 BB/9은 지난해 3.43개에서 올해 2.53개로 줄었다.
안우진은 정규시즌 마지막 등판(8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 리그 단일시즌 최다 탈삼진 기록에 도전했다. 경기 전 216탈삼진으로 지난해 아리엘 미란다(당시 두산)가 세운 기록(225개)에 9개 부족했다. 안우진은 7회까지 2피안타 8탈삼진 무실점 쾌투, 미란다 기록에 근접했다. 투구 수가 88개로 적어 기록 경신이 유력해 보였지만 8회부터 교체됐다. 그는 "그날 허투루 공을 던진 게 단 하나도 없다. 7회 위기(무사 2루)를 막고 다니까 맥이 풀린 거 같다. (신기록까지) 1~2개인데 큰 의미 없다. 내가 먼저 '그만 던지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4이닝만 채웠다면 단일시즌 '200이닝-200탈삼진' 기록도 가능했다. '200이닝-200탈삼진'은 2006년 류현진(당시 한화 이글스) 이후 명맥이 끊긴 대기록이다. 안우진은 "200이닝은 정말 어려운 거 같다. 7이닝 이상 투구(14경기)를 많이 했는데도 이닝이 부족하더라. 양현종 선배님이나 류현진 선배님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며 감탄했다. 류현진은 2006년 역대 10번째 '200이닝-200탈삼진' 기록을 세웠다. 양현종은 2016년 200과 3분의 1이닝(탈삼진 146개)을 소화했다. 종전 안우진의 한 시즌 최다 이닝은 지난해 기록한 107과 3분의 2이닝이었다.
안우진의 트레이드마크는 '고속 슬라이더'다. 야구통계전문업체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올 시즌 안우진의 슬라이더 평균 구속은 141.4㎞/h다. 웬만한 투수의 직구 평균 구속에 가깝다. 안우진은 "슬라이더를 던질 때 (손목을) 틀지 않는다. 슬라이더 그립을 잡고 직구처럼 던지는 게 중요하다"며 "피치 터널 구간이 만들어져 타자들이 (슬라이더를) 직구라고 생각해 스윙한다. 처음 슬라이더를 던질 때 포수가 '이게 무슨 슬라이더냐'고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피치 터널은 투수가 공을 던진 순간부터 타자가 구종을 판단할 때까지의 구간을 일컫는다. 보통 투구는 0.4초 만에 완료된다. 직구와 변화구를 던질 때 투구 폼과 공의 초기 궤적이 비슷하다면 타자가 반응할 수 있는 시간은 더욱 짧아진다. 안우진은 "피치 터널은 항상 신경 썼던 문제"라고 강조했다.
안우진의 올가을은 특별하다. 외국인 투수 에릭 요키시와 함께 포스트시즌(PS) 원투펀치 중책을 맡아야 한다. 홍원기 키움 감독은 안우진에 대해 "뒤를 받쳐주는 중간 투수가 강력했다면 기록상 20승도 가능했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안우진은 "긴장은 되지만 그 긴장도 컨트롤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호흡이나 투구 템포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관중이 많아도 내 공을 던질 수 있다"며 "올 시즌은 다 만족한다. 100점인 거 같다. PS에서 잘해야 120점을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