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월드시리즈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패한 필라델피아 필리스. 사진은 논란이 된 시리즈 6차전 6회 투수 교체 장면이다. 게티이미지 미국 메이저리그(MLB) 역대 118번째 월드시리즈(WS)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2022 WS는 다양한 스토리로 관심을 모았다. 우선 아메리칸리그(AL) 정규시즌 최다승(106승) 휴스턴과 내셔널리그(NL) 가을야구 진출팀 중 정규시즌 승리(87승)가 가장 적은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더스티 베이커 휴스턴 감독은 역대 다승 8위(통산 2093승)에 오른 명장이지만, WS 우승 경력이 없었다. 필라델피아 간판 타자 브라이스 하퍼도 마찬가지. NL 최우수선수(MVP)를 두 번이나 받은 슈퍼스타지만 역시 WS 우승에 목이 말랐다.
휴스턴의 WS 우승은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그만큼 모든 전력에서 필라델피아를 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라델피아가 이번 가을 보여준 행보도 꽤 인상적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포스트시즌(PS) 진출 티켓을 손에 넣었고 첫 관문인 NL 와일드카드 시리즈부터 '시즌 93승'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2연승으로 제압, 디비전시리즈(DS)에 진출했다. DS에선 지난해 WS 우승팀이자 시즌 101승을 거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3승 1패로 꺾었다. 이어 챔피언십시리즈(CS)에서도 김하성이 버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4승 1패로 꺾었다. 전력이 더 강하다고 평가 받았던 팀들을 연파하고 WS 무대를 밟았다.
필라델피아는 WS 첫 3경기에서 2승(1패)을 따내 우위를 점했다. 하지만 4차전부터 내리 3경기를 패하며 그들의 돌풍은 막을 내렸다. 필라델피아로선 WS 6차전 6회 투수 교체가 아쉬웠다. 1-0으로 앞선 6회 1사 1·3루에서 호투하던 선발 잭 휠러를 왼손 파이어볼러 호세 알바라도로 바꿨다. 휠러의 투구 수가 70개로 적었지만 한 박자 빠르게 불펜을 가동한 것이다. 그런데 알바라도는 첫 타자 요르단 알바레스에게 역전 결승 스리런 홈런을 허용했다. 필라델피아는 2사 2루에선 알바라도를 세란토니 도밍게스로 교체했는데, 크리스티안 바스케스에게 쐐기 적시타를 맞고 1-4로 패했다.
롭 톰슨 필라델피아 필리스 감독. 게티이미지 휠러의 교체 타이밍이나 알바라도와 도밍게스 투입 시기에 대한 불만이 반드시 나올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야구는 결과로 말할 수밖에 없는 경기일 수 있다. 하지만 결과만 보고 비난하고, 질책한다면 이 세상에 장기간 성공한 감독이 나오는 게 불가능할 거다. 흔히 "감독의 가장 어려운 결정이 투수 교체 타이밍"이라는 얘길 한다. 그만큼 순간의 선택이 승패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는 내다보는 수정 구슬을 갖고 있지 않다면 완벽한 교체 타이밍은 존재하기 어렵다.
필라델피아는 지난 6월 22승 29패 상황에서 롭 톰슨이 감독 대행을 맡았다. 톰슨 감독은 승률 5할 미만의 팀을 맡아 분위기를 전환, 11년 만에 PS 진출 팀으로 탈바꿈했다. PS 내내 경쟁 팀보다 열세로 평가받는 선발과 불펜 운용을 극대화해 WS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톰슨 감독이 한 박자 빠르게 투수 교체 타이밍을 가져간 건 고전적 형태의 투수 운영법이 팀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선발진의 애런 놀라와 휠러, 불펜의 도밍게스와 알바라도를 제외하면 절대적 신뢰를 보낼 자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 전술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WS 진출에 성공한 셈이다.
비록 패했지만 6차전 투수 교체 타이밍을 감독의 판단 미스로만 몰아붙이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거 조 토레 뉴욕 양키스 감독의 성공 비결은 선수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라고 했다. 과소 혹은 과대평가가 아닌 정확하고 객관적인 선수 판단이 전력을 극대화하는 지름길일 수 있다.
필라델피아는 가시밭길 속에서 성공을 거뒀다. 그게 한두 차례 무너졌다고 모든 과정이 무시될 수 있을까. 결과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가져오는 폐해가 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