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일 월드컵 당시 거리에 모인 한국 팬들.(사진=게티이미지) 2002년 4강 신화를 쓴 한국과 닮았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를 꺾은 다음 날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51위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22일(한국시간) 카타르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3위 아르헨티나와의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C조 1차전에서 2-1로 이겼다.
그야말로 ‘대어’를 낚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경기 시작 10분 만에 리오넬 메시(파리 생제르맹)에게 페널티킥 골을 내주며 끌려갔다. 객관적 전력에서 열세였던 사우디아라비아는 단단한 수비벽을 구축한 뒤 ‘한 방’을 노렸다.
후반 들어 결실을 봤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후반 3분 알 세흐리의 왼발 슈팅이 아르헨티나 골문을 열어젖혔다. 분위기를 탄 사우디아라비아는 5분 뒤 알 다우사리의 추가 골로 역전에 성공했다. 아르헨티나의 파상공세가 이어졌으나 사우디아라비아는 끈덕지게 버티며 ‘루사일의 기적’을 만들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는 경기 다음 날인 23일 임시 공휴일 지정을 제안했고, 아버지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이 이를 받아들였다. 아라비아뉴스에 따르면 살만 국왕은 “아르헨티나를 꺾은 기념으로 쉬자고 명령했다. 공공·민간 모두에게 적용되며 교육받는 학생들도 휴일을 즐기게 된다”고 공표했다.
아르헨티나를 꺾고 기뻐하는 사우디아라비아 팬들.(사진=게티이미지) 흔한 일은 아니지만, 전례가 꽤 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카메룬이 아르헨티나를 꺾고 이튿날 공휴일을 선언했다. 이 경기 역시 ‘언더독의 반란’ 꼽을 때 빠지지 않는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도 임시공휴일을 선포한 바 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끈 한국은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폴란드를 꺾으며 순항을 이어갔다. 승리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공휴일 지정에 대한 여론이 높아졌다. 하지만 2002년 6월은 현충일, 지방선거일 등 쉬는 날이 많았고, 6월 15일 제1연평해전에 이은 6·25라는 분위기상 휴일 지정은 실현되지 않았다. 이후 한국의 결승 진출 시 결승전 다음 날인 7월 1일을 공휴일로 지정한다는 논의가 이뤄졌고, 결국 결과와 상관없이 이날을 임시공휴일로 정했다.
이제 카타르 월드컵에서 첫 승을 거둔 사우디아라비아지만, 아르헨티나를 잡았다는 것은 그 이상의 의미였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처음 본선에 진출해 16강행을 이룬 사우디아라비아는 이후 거듭 국제무대에서 ‘1승 제물’이 됐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개최국 러시아와 개막전에서 0-5로 참패했다. 이번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울린 승전고가 유독 값진 이유다.
이번 승리는 중동 축구의 자존심을 세운 일이기도 하다. 아랍에미리트의 부통령이자 두바이 국왕인 셰이크 모하메드 빈 알 막툼은 SNS(소셜미디어)에 “사우디아라비아는 승리할 자격이 있는 팀이다. 아랍에 기쁨을 준 사우디아라비아에 축하를 보낸다.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