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투루 만든 장면이 없다. 청각을 넘어 촉각까지 자극하는 듯한 소리부터 문살의 모양 하나까지. 안태진 감독은 자신의 장편영화 데뷔작 ‘올빼미’에 그야말로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왕의 남자’ 조감독 이후 17년 만에 또 다른 사극 영화를 찍기 위해 부안을 찾았던 안 감독. 배우 유해진을 왕의 자리에 올리고 주맹증을 소재로 한 세계 최초 영화를 만들기까지, 감독이 신경 썼던 모든 것을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낱낱이 물어봤다. -영화 ‘올빼미’가 개봉했다. “얼떨떨하다. 별로 현실 같지 않은 기분이다.”
-관객들의 반응을 좀 봤나. “봤다. 어떤 분이 팝콘이 수북하게 담긴 사진을 한장 올리셨다. 관람 후 남은 팝콘이라며 영화를 보는 내내 심장이 조여서 팝콘을 못 먹었다고 하더라. 그 평이 기억에 남는다.”
-사극 스릴러 장르지만 앞부분은 서사를 촘촘하게 까는 데 많이 할애돼 있다. “관객들을 믿고 정통적인 방식을 썼다. 다만 앞부분이 지루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유머를 조금 썼다.”
-캐스팅도 화제가 많이 됐다. 유해진을 인조로 캐스팅한 배경이 궁금하다. “이제껏 작품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왕을 보여드리고자 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영화 속 인조는 인간적인 약점을 많이 드러내는 캐릭터다. 그런 인물을 떠올렸을 때 유해진 생각이 났다.” -캐스팅은 수월했나. “‘왜 나냐’고 묻기에 ‘형이 하면 다를 거 아니냐’고 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라. 유해진만이 표현할 수 있는 인조, 왕이 있다는 것을 그 순간 확실히 알았다. 사석에서 한 10년 만에 본 건데 ‘잘 지냈냐’는 인사도 안 하고 인조 얘기만 하더라. 눈빛이 그냥 일반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 불안과 의심 가득한 눈으로 초조해하면서 물어보기도 했다. 그때부터 사실 알았다. ‘올빼미’에 인조 역으로 출연해줄 거라고. 캐스팅하기 위해 만났을 때부터 이미 빙의해 있는 느낌이었다.”
-빛이 없는 곳에서만 볼 수 있는 주맹증을 가진 캐릭터가 등장한다. “세계 최초 아닐까 싶다. 다른 작품이 있을까 싶어 열심히 찾아봤는데 못 찾겠더라. 밝은 곳에서 볼 수 없는 인물이 궁에 들어가서 무언가를 목격한다는 내용이 대단히 흥미로웠다. 그래서 연출을 하고 싶었다.” -주맹증을 가진 침술사 경수 역은 류준열이 맡았다. 촬영 초반 통화를 많이 했다고 들었다. “주인공을 한다는 게 대단히 외로운 일일 것 같다.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끌고 가는 것 아닌가. 류준열과 나눈 이야기는 대부분 다 시나리오 관련한 것이었다. 사실 대화를 하면서 크랭크업 하기 이틀 전까지 계속 시나리오를 고쳤다.”
-어떤 부분을 수정헀나. “큰 구조나 구성을 바꾸기는 어려웠다. 다만 디테일한 부분, 감정 요소 같은 것들에 변화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그릴지, 관객들에게 잘 이해시킬 수 있을지 같은 것들을 고민했다.” -소현세자 역의 김성철도 영화 개봉 이후 큰 관심을 받고 있는데. “세자에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캐스팅했다. 사극은 처음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사극 톤을 어떻게 잡을지 예상이 안 됐고, 사극 의상을 입었을 때도 어떨지 상상만 했는데 보고 깜짝 놀랐다. 간단한 리딩 자리에서 기침 연기를 하는데 그 소리부터 심상치 않았다. 간결한 대사 안에서도 세자의 품위와 심성이 느껴지는 것 같더라. 김성철 배우의 연기 장면을 모니터로 보면서 혼자 낄낄거렸던 기억이 있다. 연기가 너무 좋아서. (웃음)” -부친인 인조 역의 유해진과 대비를 생각한 것도 있나. “그런 부분도 있다. ‘올빼미’ 속 인조와 대단히 다른 성정을 가진 인물이 소현세자다. 차분하고 현명하고 인조와 대비되는 느낌의 배우를 캐스팅하고자 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게 연출에 부담이 되진 않았나. “주변에 물어보면 인물은 알지만, 자세한 디테일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놀라긴 했다. 오히려 조선 시대 다른 인물들에 비해 작품으로 덜 다뤄진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또 소현세자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더라도 ‘올빼미’에서 누가 소현세자를 죽였다고 그리는지, 어떠한 이유로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설명하는지는 궁금해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미스터리한 부분을 더 담으려고 노력했다.” -주맹증을 가진 인물의 시야를 표현하기 위해서도 애를 많이 썼을 것 같다. “불 꺼진 상태를 영화에 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때는 현대도 아니고 불이 다 꺼지면 고작해야 달빛 정도였을 텐데, 달빛이 채워진 실내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큰 고민이었다. 조명 감독님이 진짜 고민을 많이 했고, 조명 스태프들이 대단히 고생했다. 또 주맹증에 걸린 사람의 시야를 표현하는 데 있어 컴퓨터그래픽 사용은 최소화하려고 했다. 컴퓨터그래픽을 쓰니까 슈퍼히어로 영화 같더라. 그래서 최대한 현장에서 처리할 수 있는 광학적인 방법을 쓰고자 했다. 카메라 앞에 많은 것을 갖다 대 봤는데 최종적으로 물주머니와 스타킹을 이용해 찍은 장면이 남았다.”
-넓고 광활한 궁이 아닌 미로 같은 느낌의 궁도 인상적이었다. “미술감독님이 공간마다 특색을 살려줬다. 각 공간이 인물의 성격을 표현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색을 통해 욕망을 드러낸 부분도 있다. 궁을 설계할 때는 보통 거대하고 펼쳐진 공간을 그리는데, 우리는 닫힌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여기서 빠져나가고자 하는 사람의 눈에는 감옥처럼 보이게끔 만들고 싶었다. 갑갑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올빼미’를 아직 보지 못 한 관객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올빼미’는 빛과 어둠을 다룬 영화다. 주맹증을 다루다 보니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의 대비가 크고, 그래서 어두운 장면도 많다. 시각 외에 청각적인 부분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사운드 좋은 극장에 와서 보시면 더 작품의 온전한 재미를 느끼실 수 있으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