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발표된 메이저리그(MLB) 아메리칸리그(AL) 최우수선수(MVP)는 애런 저지(30·뉴욕 양키스)였다. 저지는 올 시즌 홈런 62개를 때려내 1961년 로저 메리스가 세운 AL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61년 만에 갈아치웠다. 경쟁자가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해 AL MVP 수상자이자 베이브 루스 이후 성공적으로 투·타 겸업 시즌을 보낸 오타니 쇼헤이(28·LA 에인절스)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다.
오타니는 2년 연속 투수와 타자 모두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저지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각축전이 예상됐지만, 결과는 저지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저지는 30개의 1위 표 중 28표를 휩쓸어 오타니를 압도했다. 물론 저지의 기록은 MVP를 받고도 남을 성적이었다. 홈런(62개) 득점(133개) 타점(131개) 출루율(0.425) 장타율(0.686)이 모두 AL 1위. 리그를 대표하는 슬러거인데 타율까지 0.311(2위)로 높았다.
오타니의 성적이 크게 뒤지는 건 아니었다. 오타니는 지난해 0.257였던 타율을 0.273으로 끌어올렸다. 홈런(46→34개)과 타점(100→95개)이 줄었지만, 마운드에서의 활약은 1년 전 기록을 훌쩍 뛰어넘었다. 타자를 겸하면서도 15승을 따내 메이저리그(MLB) 데뷔 첫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평균자책점(3.18→2.33)을 낮추면서 탈삼진을 무려 219개나 잡아냈다. 이닝을 비롯한 대부분의 투수 지표에서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그런데도 MVP 투표에서 일방적으로 밀린 건 시대의 흐름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저지가 '레전드' 메리스를 넘어선 것도 있지만 2000년 이후 이른바 '약물의 시대' 이후 청정 홈런 타자가 탄생했다는 이미지가 투표 결과에 영향을 끼쳤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2000년 전후로 쏟아진 60홈런 타자들이 대부분 약물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점에서 저지의 기록이 더 큰 의미가 있었다.
1996년과 1998년 AL 유력한 MVP 후보는 모 본(당시 보스턴 레드삭스)이었다. 본은 두 시즌 모두 40홈런을 때려낸 강타자였다. 1995년 AL MVP로 팀에 끼치는 기여도가 대단했다. 하지만 본은 1996년과 1998년 MVP 투표에서 낙방했다. 그는 당시 미디어와 거의 견원지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냉전 중이었고, 인터뷰에 거의 응하지 않았다. 결국 투표권을 가진 기자들이 그에게 등을 돌려 AL MVP 투표 5위, 4위에 그쳤다. 당시 본에 대한 기사가 우호적이지 못했고 문제가 있는 선수라는 낙인을 반전시키기 어려웠다.
2003년 신인왕 투표도 흥미로웠다. 그해 가장 강력한 AL 신인왕 후보는 '고질라' 마쓰이 히데키(당시 뉴욕 양키스)였다. 마쓰이는 106타점을 기록할 정도로 센세이션한 활약을 보여줬지만, 결과적으로 AL 신인왕 투표에서 앙헬 베로아(당시 캔자스시티 로열스·73타점)에 밀렸다. 불과 4포인트 차이로 희비가 엇갈렸는데 투표 결과에 영향을 끼친 건 '일본 프로 출신 선수를 MLB 신인으로 봐야 하는가'하는 여론이었다.
그도 그걸 것이 1995년 노모 히데오(당시 LA 다저스)가 '토네이도' 돌풍을 일으키며 신인왕에 올랐고 2000년 '대마신' 사사키 가즈히로, 이듬해 스즈키 이치로(이상 당시 시애틀 매리너스)가 신인왕을 차지, 일본 프로야구(NPB) 출신 선수들이 빅리그 신인왕을 싹쓸이했다. 처음에는 NPB를 한 수 아래로 보고 관대하게 생각했지만 연속된 수상 탓에 '이들을 신인으로 보면 안 된다'는 여론이 우세해졌다.
수상한 선수들이나 그렇지 않은 선수들 모두 경쟁력을 갖춘 후보들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시각과 투표 결과가 차이를 보이면 두고두고 회자가 될 수밖에 없다. 어디까지나 '만약'이라는 단서가 붙지만 올 시즌 저지가 매리스의 홈런 기록을 갈아치우지 못했다면 판세가 바뀌었을 수 있다.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영예, 개인 타이틀을 차지하려면 시대와 분위기도 잘 타고나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