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 감독이 인간의 욕망을 둘러싼 기괴한 멜로 드라마를 만들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썸바디’다.
‘썸바디’는 소셜 커넥팅 앱 썸바디를 매개로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개발자 김섬(강해림 분)과 그의 주변의 친구들이 의문의 인물 윤오(김영광 분)와 얽히며 벌어지는 이야기. 연쇄살인범과 로맨스, 전혀 연결되지 않는 두 단어가 만나 기괴한 멜로 드라마가 탄생했다.
정지우 감독의 안목은 이번에도 정확했다. 영화 ‘은교’를 통해 김고은을 발굴했듯 ‘썸바디’에서는 배우들의 새 얼굴을 끄집어냈다. 로맨스 연기를 선보여온 김영광을 파격 변신으로 이끌고 신예 배우들의 가능성을 증명해냈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개발자 김섬, 성소수자이자 젊은 무당 목원(김용지 분),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경찰 기은(김수연 분)까지 배우들은 작품 안에서 캐릭터 그 자체였다. -공개 후 반응은 찾아봤나. “전혀 안 찾아봤다. 반응 보고 마음이 흔들려서 작품에 도움될 게 없었다. 내 동료들, 배우들은 다들 좋은 말만 해주더라. 영화는 예매가 시작되는 순간 (성적이 나오기 때문에)박스오피스가 두렵다. OTT에서는 성적이 공유되지 않아서 훨씬 더 마음이 넉넉하다.”
-첫 드라마는 어떤 느낌이었나. “촬영할 때나 편집할 때 이 화면을 핸드폰으로 본다면 어떨지 꾸준히 점검했다. 편집에서는 훨씬 더 강박적으로 확인했다. 큰 화면으로 보면 좋을 디테일들이 많이 있는데 핸드폰으로 보면 알아봐주지 못할 것 같아 아쉬웠다.”
-시나리오 집필 과정을 설명한다면. “악당 한 명과 세 명의 약자라는 기획이 흥미로웠다. 또 평소에 긴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대해 호기심이 있었다. 영화를 찍으면 계획보다 러닝타임이 길어지기도 했다. ‘썸바디’는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기회는 너무 좋았는데 고민이 2배가 되는 게 아니라 8배가 됐다. 쉽지 않았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어디까지 보여주려 했나.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섬 캐릭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다 잊고 만들었다. 섬은 소통, 공감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정도로 설정했다. 어찌 보면 가벼운 형태의 묘사에 가까워진 것이다.”
-하반신 마비, 성소수자 캐릭터를 드라마에 녹인 이유가 있다면. “어떤 사람은 키가 크고 작듯이 형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면 어떨까 했다.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지만 쉽진 않았다.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관계를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나. 그걸 과장할지 말지의 문제로 인물을 바라보는 게 목표였다.”
-강해림을 캐스팅 한 이유는 무엇인가. “강해림 배우는 고유했다. 그 고유함을 유지해보고 싶은 강한 유혹을 느꼈다. 이 사람은 모든 걸 천천히 판단하는 편이다. 조금만 기다려주면 더 재밌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 섬 캐릭터도 느리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이 배우에게도 있어서 둘을 겹쳐봤다. 이 사람이 가진 영민함, 명석함을 나중에도 느끼게 될 거다.” -드라마 구축에 신경 쓴 부분은. “윤오는 연쇄살인범이지만 겉으로는 지극히 일상적인 사람이다. 또 ‘썸바디’ 앱에서는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현실에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현실에서 한 번씩 지나갔을 수도 있는 사건, 사고들을 뒤틀고 각색해서 만들었다.”
-김영광을 캐스팅 한 이유가 있다면. “로맨틱 코미디에서도 아주 믿음직스러운 연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서로 사전 단계에서 여러 가지 대화를 해봤다. 김영광은 작품에 갈증이 있던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하기 위해 몇 달간 몸을 만들고 기다렸다더라. 캐릭터에 지나치게 몰입한 기분까지 들었다.”
-최유하(사만다 역)도 빌런이 아니냐는 의견이 많은데. “‘썸바디’를 잃고 싶지 않고 실패하지 않는 것이 목표인 사람이다. 그래도 마지막에 정직하게 변신을 하지 않나.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해결책을 찾겠다고 나선다. 사만다가 뒷배가 돼준 게 전개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기은의 자동차를 자체 제작했다고 들었는데.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저런 형태의 차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만들었다. 고친 차로는 도로주행을 하면 안 되기 때문에 두 대의 차량을 사용해 공을 많이 들였다. 저런 발명품이 있었으면 좋겠다.”
-윤오에 대한 기은의 마음은 무엇인가. “답답하고 민폐 캐릭터로 작동했으면 하는 게 의도였다. 윤오와 을지로에서 맞닥뜨렸을 때 ‘왜 나를 놓고 갔냐’고 던진 질문을 보면 기은에게는 혹시라는 기대가 명백하게 있다. 윤오를 위협적으로 받아들인 게 아니라 반대의 면에 기대가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김수연 배우와 아주 긴 얘기를 나눴다.” -계속해서 결핍을 파고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직업이 좋은 건 작품을 통해 자신에 대해 모르고 있던 걸 깨달을 수 있다는 점이다. 원래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닌데 내 안에 있는 어떤 요소들이 순화된다. 악한 연기를 보다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왜 보나 싶다가도 보고 난 후에 내 삶이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느껴지지 않나. 두렵기도 하지만 내 안이 디톡스 된 듯한 느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