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발표한 '보류선수' 제외 명단에는 지난 3년(2020~2022) 동안 KT 위즈 소속으로 뛴 외국인 투수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35)도 포함됐다.
KT는 이미 지난달 24일 오른손 투수 보 슐서를 영입해 두 자리 중 한 자리를 채웠다. 2022시즌 뛰었던 웨스 벤자민과도 재계약 협상에 들어갔다. 포스트시즌 선발진에서 제외했던 데스파이네와는 이미 결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데스파이네는 2020시즌을 앞두고 KT 유니폼을 입었다. 15승 이상 거둬줄 에이스가 필요했던 KT는 2019시즌 11승을 거둔 라울 알칸타라와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데스파이네를 선택했다.
데스파이네는 2020시즌 15승 8패, 평균자책점 4.33을 기록하며 KT의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다. KT가 통합 우승을 차지한 2021시즌도 13승(10패) 평균자책점 3.39를 남기며 나쁘지 않은 페이스를 보여줬다.
이강철 KT 감독은 2020시즌 중반 "데스파이네가 많은 승수뿐 아니라 선발진 리더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했다. 국내 선발 투수 배제성·소형준·김민수는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체력 저하·슬럼프 관리 노하우가 쌓이지 않은 젊은 투수들에게 데스파이네의 존재는 큰 힘이 됐다. 정확히는 '4일 휴식 뒤 등판'이라는 루틴을 고수하는 데스파이네 특유의 성향이 의도치 않게 긍정적인 효과를 냈다.
휴식일(월요일)이 정해져 있는 KBO리그에선 선발 투수 대부분 5일 휴식 뒤 등판한다. 화요일에 등판하는 투수만 4일 휴식 뒤인 일요일에 출격한다.
데스파이네의 등판 간격을 맞춰주기 위해선 국내 투수가 등판을 미뤄야 했다. 이들의 등판 준비 루틴이 흐트러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장점 효과가 더 컸다.
데스파이네는 2020시즌 최다 등판(35번)과 최다 이닝(207과 3분의 2)을 기록했다. 2021시즌도 33경기에 나서 이닝 소화 부문 리그 1위(188과 3분의 2)에 올랐다. 선발 투수가 많은 이닝을 막아준 덕분에 불펜진 관리도 수월했다.
올 시즌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경험을 쌓은 KT 국내 투수들은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하면서도 자신의 루틴이 지켜지길 바랐다. 결국 후반기부터 데스파이네는 자신의 루틴을 지키지 못했다. 감독과 코치 입장에선 데스파이네보다 더 좋은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는 국내 투수들을 먼저 관리해야 했다.
데스파이네의 투구 위력은 이전 2년보다 떨어졌다. KT가 그와 재계약하지 않은 이유다. 이 결정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숙제도 생겼다. 난타를 당하면서도 이닝을 막아주던 데스파이네가 떠나면서 그 부담을 불펜진이 안게 됐다.
KT 선발진은 최근 3년 리그에서 가장 많은 이닝(2436)을 소화했다. 2위 삼성 라이온즈가 기록한 2335와 3분의 1이닝 보다 100이닝 더 많았다. 3년 연속 30경기 이상 등판한 데스파이네의 공이 컸다.
당장 2023시즌은 '이닝 이터' 공백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3년 이상 위력을 유지하는 불펜 투수가 드문 점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결국 데스파이네의 자리를 채우는 새 외국인 투수는 물론 국내 투수들이 이전보다 많은 이닝을 막아줘야 한다. 마침 고영표, 소형준은 승수보다 이닝 욕심이 더 많다. KT 마운드 운영에 꽤 큰 영향을 미쳤던 선발 투수가 떠났다. 2022시즌 KT 레이스 키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