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는 19일 홈구장인 서울 고척스카이돔을 찾아 "2023시즌이 끝난 뒤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으로 해외 무대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구단 관계자는 "선수의 도전 의지나 생각을 존중하고 구단도 긍정적이다. 다만 내부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어서 내년 1월 업무가 시작되면 결론 내리겠다"고 말했다. 키움은 지난 16일 2022년 구단 업무를 끝낸 상황이다.
이정후의 해외 진출 도전 여부는 올겨울 프로야구 최대 이슈 중 하나였다. 2017년 데뷔한 이정후는 내년 시즌을 마치면 '1군 등록일수 7년'을 채워 포스팅 시스템 자격을 갖춘다. FA(자유계약선수)가 아닌 포스팅 시스템은 구단 동의가 필요하다.
그는 꾸준히 해외 진출 의사를 피력했다. 지난 8일 일구상 시삭식에서 최고타자상을 받은 뒤 "올해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좋은 평가가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며 "오는 1월 먼저 미국에 가 훈련할 거고, 현지 에이전트도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튿날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선 "목표를 갖고 열심히 하면 내년 이 시기에 좋은 소식이 들어오지 않을까 싶다"며 우회적으로 미국 메이저리그(MLB) 도전 의사를 드러냈다. 연말 일정을 마치고 생각을 정리한 이정후는 19일 구단에 해외 진출을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이정후는 자타공인 KBO리그 최고 외야수다. 5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 고(故) 장효조 전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이 보유한 외야수 골든글러브 최다 연속 기록(5년 연속·1983∼1987년)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올 시즌에는 142경기에 출전, 타율 0.349(553타수 193안타) 23홈런 113타점을 기록했다. 타격왕 2연패를 포함해 KBO리그 타격 5관왕(타율·최다안타·타점·출루율·장타율)에 오르며 데뷔 첫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시즌 중 MLB 스카우트가 여러 차례 키움의 홈구장을 방문, 그를 체크했다. 자연스럽게 해외 진출 가능성이 고개를 들었다.
이정후가 일찌감치 리코스포츠에이전시(리코)와 손을 잡은 것도 MLB 도전을 위한 준비로 해석됐다. 이예랑 리코 대표는 MLB 공인대리인으로 과거 김현수(LG 트윈스)와 박병호(KT 위즈) 강정호(은퇴) 등의 빅리그 진출을 성사시켰다.
키움은 포스팅 시스템으로 여러 선수를 미국에 보냈다. 2015년 강정호가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계약하며 태평양을 건넜고 이듬해 박병호가 미네소타 트윈스, 지난해에는 김하성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유니폼을 입었다.
포스팅 시스템은 이적료 개념의 포스팅 비용이 발생한다. 과거에는 가장 높은 포스팅 비용을 적어낸 구단이 선수와 단독 협상했다. 2018년 개정된 한·미 선수계약협정에 따라 현행 포스팅 비용은 계약 규모에 따라 결정된다. MLB 구단이 선수에게 제시한 보장 금액이 2500만 달러(326억원) 이하면 해당 금액의 20%가 포스팅 비용이다. 전체 보장 계약이 2500만~5000만 달러(326억원~652억원) 사이라면 2500만 달러의 20%(500만 달러·65억2000만원)와 2500만 달러 이상 금액에 대한 17.5%를 더한다. 전체 보장 금액이 5000만 달러를 초과하면 2500만 달러의 20%(500만 달러), 2500만~5000만 달러의 17.5%(437만 5000달러·57억2000만원) 5000만 달러 초과 금액의 15%를 모두 더해 포스팅 금액이 산정된다. 샌디에이고와 2800만 달러(366억원) 보장 계약한 김하성의 포스팅 비용은 552만 5000달러(72억2000만원)였다.
공교롭게도 MLB 선수 이적 시장은 활황이다. 지난 8일 포스팅 시스템으로 빅리그 문을 두드린 일본 프로야구(NPB) 요시다 마사타카(29)는 보스턴 레드삭스와 5년, 총액 9000만 달러(1177억원)에 계약했다. 이적에 따라 원소속구단 오릭스 버펄로스가 받는 포스팅 비용은 1537만 5000달러(201억원)였다.
이정후의 이탈은 팀 전력의 큰 마이너스다. 하지만 해외 도전 의지가 강한 만큼 포스팅 시스템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은 히어로즈는 그동안 대부분의 포스팅 비용을 구단 운영에 활용했다. 키움은 최대한 빠르게 이정후의 포스팅 여부를 결론 내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