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심장인 반도체 산업이 내년 본격적인 혹한기에 진입할 전망이다. 수요는 좀처럼 회복하지 않고 재고만 쌓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몰고 온 '비대면' 착시효과가 사라지자 IT업계가 직격탄을 맞은 탓이다.
이재용 회장이 취임 후 글로벌 무대에서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며 파트너십을 확장하고 있지만 시장의 우려를 반영하듯 주가는 지지부진하다. 메모리를 벗어나 새로운 먹거리로 부상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는 대만 TSMC가 격차를 더욱 벌리며 리더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삼성전자에게 2023년도 만만치 않은 도전의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TSMC-삼성, 파운드리 격차 더 벌어져
19일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삼성전자는 상위 5개 파운드리 업체 가운데 전 분기 대비 유일하게 성장이 둔화했다.
시장의 절반 이상을 가져간 TSMC의 점유율은 지난 2분기 53.4%에서 3분기 56.1%로 3%포인트 가까이 증가했다. 매출도 181억4500만 달러에서 201억6300만 달러(약 26조원)로 11.1% 늘었다. 매출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와 4배에 가까운 차이다.
삼성전자는 가까스로 두 자릿수를 지켰지만 점유율이 16.4%에서 15.5%로 1%포인트가량 빠졌다. 매출 역시 55억8800만 달러에서 55억8400만 달러(약 7조원)로 0.1% 감소했다.
같은 기간 3~5위 UMC(대만)·글로벌 파운드리(미국)·SMIC(중국)가 0.2~4.1%의 매출 증가세를 보인 것과 대비된다.
삼성전자와 TSMC의 점유율 격차는 37.0%포인트에서 40.6%포인트로 벌어졌다.
트렌드포스는 "TSMC는 올해 새로운 아이폰에 대한 애플의 강력한 수요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뒀다. 7나노 이하 공정이 성장을 이끌었으며 파운드리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커지고 있다"며 "삼성은 아이폰 신제품 관련 부품의 혜택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매출이 떨어졌다. 원화 약세의 영향도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도 퀄컴·구글·테슬라·엔비디아 등을 고객사로 유치했지만 아직 절반에 가까운 물량이 내부거래에서 나오는 것으로 추측된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2019년 파운드리 2위 삼성전자가 내부거래를 제외하면 점유율이 17%에서 7%로 떨어져 4위 수준에 그친다고 분석한 바 있다.
파운드리는 삼성전자의 미래나 마찬가지라 순위를 바꿀 묘수가 절실한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 1위를 달성하면, 삼성전자보다 큰 기업이 국내에 추가로 생기는 것과 비슷한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가 향후 5년간 팹리스(반도체 설계), 바이오와 함께 3대 주력 사업으로 내세운 이유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더 작고 얇게(초미세 공정) 만들기 위해 새로운 설비를 들여야 하는 것은 물론 공정 개발에도 막대한 비용이 필수라 일반 기업들은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한다.
파운드리는 이처럼 다양한 수요 기업이 부담 없이 자체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한다.
세부적으로 TSMC·UMC·글로벌 파운드리는 위탁생산만을 수행하는 '퓨어-플레이' 파운드리로 분류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직접 설계한 제품을 만들면서 위탁생산을 병행하는 IDM(종합 반도체 기업)으로 불린다.
IDM이 설계부터 제조까지 전 과정을 수행하기 때문에 경쟁력이 우월해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애플은 모바일 패권을 다투는 삼성전자 대신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자체 개발 없이 생산설비만 운영하는 TSMC를 파트너로 택했다. 퀄컴과 AMD도 TSMC의 주요 고객이다.
최첨단 공정의 수율(전체 생산품에서 양품이 차지하는 비율)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절대적 네임밸류의 삼성전자도 언제든 고객을 빼앗길 수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기 영향을 덜 받는 파운드리도 내년 업황이 그다지 밝지 않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디지타임즈리서치의 에릭 첸 연구원은 "완제품의 재고 조정이 2023년까지 지속하고 경제 상황이 소비 심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글로벌 파운드리 매출은 2.3% 감소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TSMC가 유일하게 웃는 파운드리가 될 것이라며 자국 기업을 치켜세웠다.
여기에 캐시카우인 메모리 반도체는 단가 하락과 재고 확대로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3분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40.7%, 28.8%의 점유율로 시장을 양분한 D램의 매출은 전 분기 대비 28.9% 감소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두 번째로 큰 충격이라는 게 트렌드포스의 설명이다.
같은 기간 낸드플래시 시장 매출도 가전과 서버 등 완제품 출하량이 기대치를 하회하면서 18.3% 하락했다. 이 시장에서도 삼성전자가 31.4%의 점유율로 1위를 기록 중이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마이크론과 SK하이닉스 등이 (D램) 감산을 공식화한 가운데 업계 1위 삼성은 감산 계획을 부인하고 있다"며 "하지만 생산라인 효율화 등의 방법으로 일정 부분 자연스러운 감산은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했다.
그는 또 "낸드도 감산이 불가피하다. 2023년의 반도체 업황은 불안감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재용 회장 취임도 주가 못 올렸다
이처럼 핵심 수익원은 어두운 터널에 진입하고 미래 먹거리도 경쟁사에 밀리면서 주가는 저점에 머물고 있다. 연초 대비 삼성전자의 주가는 20% 넘게 떨어졌다.
어지간한 호재는 주가에 반영조차 되지 않는다.
이재용 회장이 공식 취임한 지난 10월 27일에는 전일 대비 0.17% 오른 데 그쳤다가 다음 날 곧바로 3.70% 곤두박질쳤다. 향후 5년간 450조원에 달하는 투자 계획을 발표한 지난 5월 24일에는 전일 대비 2.06% 떨어진 것도 모자라 3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지난달 6만원대를 유지하던 주가는 이달 중순 5만원대로 마감하는 날이 더 많다. 3분기에 이어 4분기도 '어닝쇼크'를 기록할 가능성이 커져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삼성전자의 2022년 4분기 영업이익을 전년 동기 대비 약 40% 감소한 8조원 초반대로 추정했다.
삼성전자는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내년에도 이어지지만 일부 수요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메모리는 불확실성에 따른 상반기 수요 영향은 존재하지만 IDC(데이터센터) 증설 재개 등 서버용 제품을 중심으로 수요 개선이 전망된다"며 "파운드리는 고성능 컴퓨팅(HPC)·차량용 반도체 등에서 신규 수주를 확대해 경쟁사와의 격차 축소를 위한 발판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