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스포츠 스타들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제2의 인생을 만들어 가고 있다. 스포테이너(스포츠+엔터테이너)라 불리는 이들은 색다른 재미와 신선함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스포츠 스타들을 향한 방송가의 러브콜이 활발하다. 현재 방송 중인 예능만 살펴봐도 이들이 출연하지 않는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각 종목에서 최고의 기량을 뽐냈던 선수들이 예능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친근함을 안겨준다. 시청자들도 호기심을 갖고 지켜보다가 호감을 갖고 팬으로서 빠져들게 된다.
과거 스포츠 선수들의 예능 출연은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던 시절도 있었다. 출연자가 뛰어난 입담을 과시하고 시청자들의 웃음을 이끌어내야 하는 예능프로그램에 평생을 운동만 해 온 스포츠 선수가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실제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스포츠 선수가 방송가로 진출해 성공한 경우는 강호동과 지금은 활동을 중단한 강병규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상황이 뒤바뀌었다. 스포츠 선수들은 스포츠, 리얼리티, 먹방, 토크쇼, 유튜브 등 다양한 예능에 출연해 자신의 끼를 선보이고 있다. 주가가 올랐기에 프로그램 제작진은 인지도 높은 스포츠 스타를 먼저 섭외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방송가에서 이들의 주가가 높아진 이유는 단순하다. 대중이 관심을 가질만한 충분한 인지도를 지녔으면서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생소한, 신인 같은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대중은 익숙한 얼굴들에 쉽게 싫증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인기를 얻은 이들이 프로그램에 연이어 등장하면 대중은 금세 지루함을 드러낸다. 이는 곧 시청률 하락으로 이어진다. 이런 이유로 각 프로그램 제작진은 예능에 적합한 새 얼굴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레이더를 돌린다. 개그맨이 과거 예능프로그램에서 웃음을 책임졌다면 이제는 그 역할을 개그맨뿐 아니라 가수, 배우, 유튜버, 심지어 카메라 밖의 제작진까지 나눠갖고 있다.
이럴 때 스포츠 스타들이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가 됐다. 이들은 이미 각 종목에서 뛰어난 실력을 증명해 온 스타들이다. 높은 인지도는 물론 다양한 팬층도 가지고 있다. 한 종편 예능 PD는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어 출연 소식만으로도 반응이 뜨겁다”며 “다만 방송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가 관건인데 요즘 스포츠 선수들은 방송 인터뷰 경험이 많기 때문인지 카메라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끼를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들은 남다른 정신력과 승부욕, 뛰어난 센스를 갖춘 경우가 많다. 일반인들은 알지 못하는 해외 진출 경험이나 유명 스포츠 선수와의 에피소드 등을 방송에서 풀어낼 수도 있다.
더구나 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프로그램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축구를 소재로 한 JTBC ‘뭉쳐야 찬다’와 SBS ‘골 때리는 그녀들’, 야구 소재의 JTBC ‘최강야구’ 등이 대표적 사례다. 최근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스포츠에 직접 참여하는 대중이 늘어나는 것도 스포테이너의 방송 출연을 부추기는 요소다. 예능프로그램이기는 하지만 진정성을 갖고 참여하는 연습, 경기에서 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에 대중이 환호하는 것이다.
농구선수, 지도자로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고 승부욕에 있어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웠던 허재가 방송에서 허당끼 넘치는 모습으로 웃음을 선사한 것도 스포테이너들에 대한 호감도를 높였다. 허재가 현재 프로농구에서 활약 중인 두 아들과 함께 출연한 모습, 허재의 아들들이 예능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선수, 아들로서의 모습은 인간적인 매력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가기도 했다.
평생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온 스포츠 스타들의 승부 감각은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한다. 한국 여자골프의 레전드인 박세리와 한국 배구의 간판 김연경은 여러 프로그램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여제'로 분류되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스포테이너의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리얼리티 예능은 말보다 몸으로 하는 행동들이 보여지는 경우가 많다. 스포츠 선수들은 몸으로 하는 운동이 많다 보니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정직하고 진실하게 운동만 하던 사람들이라 시청자들에게 신선하고 더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이어 “단발성 인기를 벗어나 꾸준히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본업을 예능으로 보여주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특기, 장점들을 예능 요소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