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종(35·KIA 타이거즈)은 오는 3월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야구대표팀 투수조 조장으로 선임됐다. 이강철 대표팀 감독이 "젊은 선수들을 많이 도와달라"는 당부와 함께 양현종에게 직접 요청했다.
이강철 감독은 KIA 투수코치 시절 양현종을 지도한 은사이자, 그의 리더십과 프로 정신을 오랜 시간 지켜본 선배다. 양현종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부터 2019년 프리미어12까지 국제대회를 5번이나 치렀다. 어느덧 대표팀에서도 최고참이 된 그가 투수조 리더를 맡는 건 당연했다.
양현종은 "(지난 16일 열린) 대표팀 첫 소집에서 (동갑인) 김광현(SSG 랜더스)이 참석하지 못했다. 내가 투수 중 나이가 가장 많아서 감독님이 조장을 맡기신 것 같다"고 웃어 보이며 "선배들만 따르면 됐던 예전과 달리 이젠 부담감이 있다. 태극마크를 가슴에 새기고 그라운드에 나서는 선수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처음 호흡하는 후배들도 있지만, 많이 대화하며 가까워질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
최근 추신수(SSG)가 "언제까지 김광현과 양현종인가"라고 WBC 대표팀 구성을 두고 반문하며 세대교체 논란을 점화했다. 추신수는 학폭(학교폭력) 전력이 있는 안우진(키움 히어로즈)의 발탁을 주장했다. 국민 정서에 반한 이 발언 때문에 추신수는 큰 비난을 받았다.
지난달 30일 소속팀 미국(애리조나 투산) 전지훈련 출국 전 만난 양현종은 "(추신수의 발언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말을 하기가 조심스럽다"면서도 "(적지 않은 나이에도) 대표팀에 뽑힌 것 자체가 영광스럽다. 책임감을 찾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뿐"이라는 말로 자기 생각을 에둘러 전했다.
한국야구는 2021년 열린 도쿄 올림픽에서 노 메달(4위)에 그치며 망신을 당했다. 선수 몸값은 높아졌지만, 국제 경쟁력은 떨어진 탓에 야구팬의 실망이 커졌다. 이번 WBC는 위기에서 맞이한 재도약 기회다.
국제대회 성적이 갖는 의미를 잘 알고 있는 양현종은 "또 부진한 성적으로 대회를 마치면 이미 실망한 야구팬들이 등을 돌릴 수 있다. 팬들의 발걸음이 다시 야구장으로 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뿐 아니라 이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게 대표팀 선수들의 숙제이자 목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현종은 3월 초 열리는 WBC에 맞춰 예년보다 빨리 몸을 만들었다. 보통 1차 스프링캠프 2주 차에 진행하는 30~40m 롱토스를 이미 소화했다. 양현종은 "연차가 쌓인 만큼 국제대회 등 다른 일정이 있으면 이에 맞춰서 준비해야 한다. WBC 대회가 리그 개막보다 빨리 열린다고 '시간이 없다'는 말을 하는 건 핑계"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롤링스사 제품인 WBC 공인구는 실밥이 도드라지지 않고, 가죽이 미끄러운 편이다. 대표팀 베테랑 투수 양현종에게 공인구 적응은 특별한 게 아니다. 그는 "공인구를 한국 대표팀만 쓰는 게 아니다. 공이 미끄러워서 못 던졌다는 핑계를 대면 야구팬들이 인정하겠는가. (공인구에) 익숙해지도록 계속 노력할 뿐이다"고 전했다.
이강철 감독은 투구 수 제한(1라운드 기준 65구)이 있는 이번 대회에서 양현종과 김광현을 구원 투수로 활용하려는 구상을 전한 바 있다.
선발 투수로 고정된 2019년 이후 구원 등판은 37번(KBO리그 기준)에 불과한 양현종이지만 보직은 연연하지 않는다. 그는 "태극마크를 달고 '나는 선발 투수'라고 고집할 선수는 없을 것이다. 감독님의 의중을 이미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양현종의 WBC 목표는 4강 진출. 이강철 감독의 소망과 같다. 양현종은 "야구는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모르는 스포츠다. 대표팀 유니폼을 입으면 이겨야 한다. (4강전이 열리는) 미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