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와 숫자는 내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아직 싸울 힘이 있고 내가 재밌어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UFC 공무원’ 그리고 ‘명승부 제조기’. UFC 라이트급의 베테랑 짐 밀러(40·미국)를 소개하는 수식어다. UFC 역사를 논할 때 수많은 파이터가 언급된다. 하지만 절대 빠져선 안 될 주인공이 바로 밀러다, 밀러가 파이터로 살아온 길은 곧 UFC 역사다.
밀러는 지금까지 40전(24승 15패 1무효)을 치렀다. 통산 경기 수가 아니다. UFC에서만 싸운 기록이다. 통산 전적은 51전(35승 16패)이나 된다. 2008년 UFC 89에서 데뷔해 16년째 UFC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UFC 역사상 밀러보다 많이 싸운 선수는 없다. 최다 출전 부문 단독 1위다. 2위인 헤비급 전 챔피언 안드레이 알롭스키(미국/벨라루스·39전)보다 1경기 많다. 3위는 지난해 밀러에게 패한 뒤 은퇴한 도널드 세로니(미국·38전)다.
이뿐만이 아니다. 밀러는 전 체급을 통틀어 UFC 최다승(24승) 1위, 최다 피니시(16회) 2위, 최다 서브미션(11회) 공동 2위 등 기록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체급인 라이트급으로 범위를 좁히면 기록은 더 많아진다.
밀러는 단순히 오래 활약한 것이 아니다. 꾸준함은 더욱 놀랍다. 데뷔 이래 거의 매년 2~3경기씩 꾸준히 치르고 있다. 심지어 2016년에는 1년에 4경기나 치른 적도 있다. 30대 후반에 접어든 2020년대 들어서도 매년 2~3경기씩 꾸준히 소화하고 있다.
기량도 녹슬지 않았다. 밀러는 최근 3연승을 거두고 있다. 그것도 모두 펀치나 서브미션에 의한 피니시 승리였다. 물론 전성기 때처럼 톱 클래스에서 경쟁하는 것은 아니다. 라이트급 랭킹에서도 밀려난 지 오래다.
하지만 밀러는 자신에게 기록이나 랭킹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밀러는 오는 19일 열리는 UFC 파이트 나이트에서 자신의 41번째 UFC 경기를 치른다. 상대는 자신보다 9살이나 어린 알렉산더 에르난데스(31·미국)다.
밀러는 경기를 앞두고 필자와 온라인 화상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기록은 물론 영광스러운 것이지만 그것이 나를 설명할 수는 없다”며 “내게 기록이나 숫자는 큰 의미가 아니다. 그저 경기가 잡히고 옥타곤에 들어서면 상대 선수에게만 집중할 뿐이다”고 말했다.
밀러의 또 다른 수식어는 ‘명승부 제조기’다. 지금까지 UFC 40전을 치르면서 13번이나 파이트 보너스를 받았다, ‘파이트 오브 더 나이트’ 7차례, 퍼포먼스 오브 더 나이트 3차례, 서브미션 오브 더 나이트 3차례 수상했다. 심지어 2012년 조 로존과 치렀던 엄청난 난타전은 그 해 ‘올해의 경기(Fight of the Year)에 선정되기도 했다.
밀러는 “보너스를 타려고 경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난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면서 가능한 한 빨리. 확실하게 끝내버리고 싶다”며 “하지만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접전이 많이 나온다. 사실 보너스를 받은 경기 가운데는 내가 진 경기도 제법 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이어 “다만 나는 지고 있다고 생각해도 포기하지 않는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상대를 피니시 시킬 수 있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몰아붙이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전성기가 많이 지났음에도 계속 싸우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는 “난 아직 모든 상대와 다 싸우지 못했다”고 말한 뒤 미소 지었다. 이어 “격투기는 여전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인 동시에 돈을 벌 수 있는 재밌는 방법이다”며 “아직도 난 경쟁력이 있고 멈출 생각이 없으며 보여줄 게 더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밀러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2013년 그는 라임병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했다. 라임병은 진드기가 사람을 무는 과정에서 균이 신체에 침범해 여러 기관에 병을 일으키는 감염 질환이다. 극심한 고통과 신체 능력 저하를 불러온다.
밀러는 “솔직히 운이 좋았다. 지금은 병을 완전히 극복했다”며 “그 병을 앓고 난 뒤 몸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체중을 감량하고 좋은 음식을 먹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밀러는 “오래 선수 생활을 하는 특별한 비결은 없지만 단순하게 살려고 한다”며 “특히 충분히 수면을 취하는 것과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나는 가족을 위해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가장 즐겁고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쏟는다”고 덧붙였다.
밀러도 언제까지 격투기 선수로 활동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UFC 공무원‘이라 불릴 정도로 정신없이 싸웠던 그 역시 이제는 은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아직도 1년에 3~4번씩 경기를 준비하고 싸울 힘이 있다”면서도 “언젠가 열릴 UFC 300 대회가 내 45번째이자 마지막 UFC 경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 밀러는 한국팬들 응원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한국에도 UFC를 좋아하는 팬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밀러는 “항상 날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한국 팬들에게 인사를 전한다”며 “아직 한국에 가서 팬들을 직접 만날 기회는 없지만 언젠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어 “계속 멋진 경기로 한국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다”며 “이번 경기도 기대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