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스포츠가 프로축구 40주년을 맞아 전문가 패널의 설문을 토대로 올타임 베스트11을 선정했다. 일간스포츠는 직접 뽑은 40년 최고의 선수 11명 명단을 소개한 후, 한 명씩 자세하게 소개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1983년 프로축구 수퍼리그 출범 이후 2023년 현재 피치 위를 누비는 현역 선수까지 다양한 각 포지션 최고의 선수들을 만나본다. <편집자주>
548경기 228골 77도움. ‘라이언 킹’ 이동국(44)이 프로 생활 23년간 K리그에서 세운 기록이다. 그는 프로축구 출범 40년 역사상 최다 득점자이며 두 번째로 많은 어시스트를 올렸다. 리그 MVP만 4회, 시즌 베스트11에는 5회 선정됐다.
그의 팀도 화려했다. 전북 현대의 왕조 구축에 구심점 역할을 했다. 2009년 전주성에 입성한 이동국은 전북에서만 리그 우승 8회를 이끌었다. 모두 핵심 공격수로 활약하며 이룬 성과라 더욱 값지다. 무엇보다 이동국은 나이를 먹을수록 농익은 기량을 과시하며 K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우뚝 섰다. 베스트11 선정에 참여한 전문가 10인 모두 그에게 한자리를 할애하는 데 이견이 없었던 이유다.
지난달 본지와 인천 송도의 이동국FC에서 만난 이동국은 “(40주년 베스트11에) 뽑아주셨으니 감사할 뿐이다. 황선홍, 최용수, 김도훈 등 너무 쟁쟁한 선배님들이 계시는데, 오랫동안 해외에 나가 계셔서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K리그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공격수이기에 표가 온 것 같다. K리그의 수준이 아시아 정상이고, 약한 무대가 아니지 않은가. 여기서 20년 가까이 시즌당 10골 이상 넣었다는 것에서 좋게 봐주신 것 같다”고 덧붙였다.
1998년 19세 나이로 포항 스틸러스에서 프로에 데뷔한 이동국은 K리그의 새바람을 일으켰다. 수려한 외모에 실력까지 겸비한 그는 미디어와 팬으로부터 높은 관심을 받았다. 그에게는 최고의 한 해였다. 탄탄한 기량을 지닌 이동국은 당시 차범근 축구대표팀 감독의 부름을 받아 1998 프랑스 월드컵에 참가, 네덜란드전 중거리 슛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11골을 넣은 그해 K리그 신인상도 그의 차지였다. 수많은 개인상 중 이동국이 가장 값지게 생각하는 상이다. 당시에는 현재의 영플레이어상과 달리 데뷔 시즌에만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탄탄대로를 걸을 것만 같았지만,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거스 히딩크 감독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당시 이동국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히딩크 감독이 원하는 스타일과도 거리가 있었다는 평이 있었다. 하지만 이때의 아픔이 축구화 끈을 더욱 조여 매게 한 자극제가 됐다.
그때를 떠올린 이동국은 “히딩크 감독에게 감사하다. 2002 월드컵 때 탈락시켜줘서 이때까지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때의 자극이 30세가 넘어서 더 많은 골을 넣을 수 있었던 힘이 된 것 같다. 당시 내가 월드컵을 뛰었다면 그 세계에 빠져서 (선수 생활이) 일찍 끝나지 않았을까 싶다. 히딩크 감독은 축구 외의 인생에서도 큰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 준 감독”이라고 했다.
시련을 이겨낸 이동국은 상무에서 군 문제를 해결한 후 2007년 1월 미들즈브러(잉글랜드)에 입단했다. 2001년 베르더 브레멘(독일) 입성 이후 야심 차게 내민 두 번째 유럽 리그 도전장이었다. 그러나 이동국은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1년 반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K리그에 복귀한 그는 전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특히 전북 이적 첫해인 2009년, 리그 32경기에 나서 22골을 몰아치며 우승을 이끌었다. 2011년에는 29경기에 출전해 15도움을 올리며 도움왕을 차지했다. 두 해가 본인이 생각하는 전성기다. 특히 2009시즌을 23년 프로 생활 중 최고의 해로 꼽았다.
이동국은 “(2009년에) 프로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우승컵을 들었다. 당시 (사람들이) 이동국은 끝난 선수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때 전북도 첫 (리그) 우승이었고, 나도 첫 득점왕을 탔다. 전북 팬들도 나와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전북이 강팀으로 올라갈 수 있는 시작점이었던 것 같다”며 “(전성기였던 저 때는) ‘오늘 골을 넣겠다’가 아니라 ‘오늘은 몇 골을 넣을까’란 생각으로 경기장에 들어갔다. 컨디션이 좋았고, 정신적으로도 강했다”고 기억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동국이 잘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이기심’이 없었던 덕이다. 어느 정도의 욕심은 골잡이들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이동국은 “나는 골 욕심을 가장 내지 않았던 선수일 수도 있다. 찬스가 와도 나보다 (동료의) 득점 확률이 높다면 주려고 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골도 잘 넣어야 하지만, 도움도 잘 줘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롱런’도 높게 평가받는 이유다. K리그 통산 548경기에 출전한 이동국은 필드 플레이어 최다 출장 기록 보유자다. 이동국보다 많이 뛴 선수는 골키퍼 김병지(706경기)와 김영광(성남FC·588경기)뿐이다. 이동국은 “30대에 접어들면 ‘정상에 올라섰을 때 은퇴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내가 축구화를 신고 축구를 시작했듯 은퇴 시점은 남이 정해주는 게 아니라고 봤다. 매 시즌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가졌고, 내려놓을 게 없다 보니 더 무서워졌다”며 “굳이 피해 가듯 은퇴하는 것보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고 했다. ‘100세 시대’에 왜 선수들은 똑같이 30대 초반에 은퇴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공격수로서 불멸의 기록을 쓴 이동국은 10년 뒤인 프로축구 출범 50주년 베스트11에도 뽑힐 공산이 크다. 그는 “(요즘에는) 잘하는 선수들이 다 해외에 진출하니 (나보다 좋은 기록을 남길 공격수가) 안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면서도 “나보다 더 잘하는 선수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