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놀면 뭐하니?'(제공=MBC) 트랙 기반으로 여러 창작 참여자들의 아이디어가 실시간으로 겹쳐지는 현대 대중음악에서 전통적인 관점의 ‘작곡’과 ‘편곡’의 경계는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2019년 MBC ‘놀면 뭐하니?’의 ‘유플래쉬’와 ‘뽕포유’ 프로젝트는 이 창작 방식의 패러다임 변화를 직관적으로 비교해 준 사례입니다.
‘유플래쉬’ 프로젝트가 보여준 창작 모델은 ‘협업 창작’이었습니다. 유재석이 연주한 기초 8비트 드럼 비트를 출발점으로, 유희열·이적·선우정아·뮤지 등이 중심이 돼 박자와 구간을 편집하고 화성(코드)을 얹어 곡의 기본 구조(Song Form)를 만든 후 윤상, 이상순, 기타리스트 한상원, 적재 등 세대를 아우르는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이 합류해 베이스, 기타 등 각종 악기 연주와 멜로디, 보컬을 순차적으로 쌓아 올렸습니다. ‘드럼 비트’라는 하나의 씨앗이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다섯 곡으로 피어난 것입니다.
반면 ‘뽕포유’ 프로젝트는 전통적인 ‘분업 창작’의 정석을 보여주었습니다. 유재석이 구상한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이건우 작사가가 가사를 써내려갔고, 박현우 작곡가가 건반으로 코드와 주선율(톱라인)을 붙여 악보를 제작했습니다. 이어 정경천 편곡가가 그 악보를 전달받아 전주·간주가 포함된 편곡을 더해 완성형 총보(Score)를 제작했고, 녹음실에서는 총보에 기반해 윤영인 밴드의 연주와 김효수의 코러스, 현악 스트링 세션, 유재석의 보컬을 순차적으로 녹음해 곡을 완성했습니다.
◇ 크레딧 표기와 실질적 ‘창작성’, 과연 일치하는가?
작업 방식의 극명한 차이는 저작자 크레딧 표기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유플래쉬’의 다섯 곡은 드럼을 친 유재석을 비롯해 창작에 참여한 모든 뮤지션이 작사 또는 작곡자로 표기된 반면, ‘뽕포유’의 ‘합정역 5번 출구’는 작사 이건우·유산슬(유재석), 작곡 박현우, 편곡 정경천으로 역할이 명확히 구별돼 표기됐습니다.
‘유플래쉬’는 8비트 드럼 비트에서 출발해 후속 참여자들이 화성, 구조, 대선율, 리듬, 음색, 멜로디를 유기적으로 레이어링해 나간 구조였습니다. 즉 ‘원곡’이 먼저 존재하고 이를 ‘편곡’했다는 식의 이분법이 성립할 수 없는 형태입니다. 따라서 ‘작곡’을 단순히 주선율 작성에 국한하지 않고, 최종 곡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창작적으로 기여한 모든 이들을 작사·작곡자로 등재한 것입니다.
이와 달리 ‘뽕포유’ 프로젝트의 ‘합정역 5번 출구’는 철저한 분업 체계와 명확한 영역 구분을 보여줍니다. 방송 당시 편곡 회의 상황을 살펴보면, 작사가 이건우와 작곡가 박현우, 편곡가 정경천이 모여 전주 구성부터 함께 논의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작곡가 박현우는 본인이 직접 악보에 적어온 전주 멜로디를 바이올린으로 연주해 선보였지만, 실제로 발매된 음원의 전주는 박현우가 연주했던 멜로디와는 다릅니다. 그것은 회의 과정에서 편곡가 정경천이 전주·간주 멜로디와 코러스를 자신이 수정하겠다고 밝혔고, 박현우가 이를 수긍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확실한 역할 구분은 녹음 현장에서도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반주 녹음 당일, 작곡가 박현우는 전주 마지막에 자신이 구상한 ‘빰빰’ 소리를 넣자는 의견을 제시했고, 이는 편곡가 정경천의 최종 결정에 따라 추가됐습니다. 하지만 유재석의 보컬 녹음날에는 반대의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유재석이 특정 멜로디에서 계속 실수를 하자, 이번에는 편곡가 정경천이 작곡가 박현우에게 멜로디 수정을 제안했고, 박현우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최종 수정이 이뤄졌습니다.
편곡에 대한 결정권은 편곡가에게, 멜로디에 대한 결정권은 작곡가에게 있다는 선이 명확했던 셈입니다.
결국 ‘유플래쉬’는 참여자들의 실질적인 창작 기여를 폭넓게 인정해 모두를 작사·작곡자로 등재한 사례인 반면, ‘뽕포유’는 편곡자가 전주·간주 멜로디를 새로 만드는 실질적 창작을 했음에도 사전에 약속된 역할에 따라 작사·작곡·편곡의 경계를 구별해 크레딧에 표기한 사례입니다.
문제는 음악 산업 내 관행과 사전 합의에 따라 부여돼 온 크레딧 표기 방식이, 저작권법이 판단하는 실질적 ‘창작성’의 기준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 ‘인간의 창작적 기여’의 실제적 기준은?
이 두 방식의 차이는 AI 음악의 저작권을 논할 때, 중요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인간의 창작적 기여’는 실제로 무엇을 기준으로 구분해야 할까요?
‘합정역 5번 출구’ 녹음 당시, 정경천 편곡가가 새로 만든 전주의 톱라인은 드라마 ‘전원일기’ 주제가로 유명한 김원용의 색소폰 연주와 김효수의 코러스로 완성됐지만, 세 사람은 작곡자로 등재되지 않았습니다. 필자 역시 2020년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OST인 크러쉬의 ‘둘만의 세상으로 가’에서 오케스트레이션(현악) 편곡을 담당했으나, 작곡이나 편곡 크레딧에 등재되지는 않았습니다.
이처럼 전통적인 인간 중심의 음악 작업에서는 모든 창작적 기여를 일일이 저작자 크레딧 표기로 환산하지 않고 관행과 역할 구분에 따라 크레딧을 정리했지만, 이제 AI시대에는 완성된 음악 속에서 ‘인간이 실제로 무엇을 창작했는가’를 구체적으로 추적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전통적 ‘분업 창작’ 관점에서 볼 때, AI가 전주와 간주 선율, 화성 진행, 베이스라인, 리듬, 오케스트레이션까지 생성할 경우 AI는 편곡자의 역할을 수행한 것입니다. 반면 ‘협업 창작’ 관점에서 보면, AI가 생성한 요소들 역시 곡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핵심 창작물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기존의 작·편곡가가 맡던 영역 상당 부분에 AI가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멜로디를 만들고 AI가 반주와 코드 구성을 제안하거나, 반대로 AI가 만든 곡을 사람이 재구조화하고 멜로디를 수정했다면 어디까지를 인간의 창작적 기여로 봐야 할까요? AI가 생성한 수많은 멜로디와 리듬 조각을 인간이 선택·조합하고 실제 악기로 재녹음했다면, 이를 인간의 창작물로 보아야 할까요, 아니면 AI의 생성물로 보아야 할까요?
AI가 창작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AI를 얼마나 활용했는가”, “인간의 기여도가 몇 %인가”라는 단편적·수치적 질문이 아닙니다. 최종 작품에 존재하는 각 표현의 시작점이 어디인지, AI가 제시한 수많은 가능성 중 인간이 무엇을 선택·변형·제거했는지, 그 선택을 통해 인간의 창작적 개성이 얼마나 투영됐는지, 결과적으로 인간이 작품 전체를 어디까지 ‘창작적으로 통제’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