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깍.’ 장르와 분위기, 목소리의 결을 몇 줄로 입력하고 생성 버튼을 누르자 잠시 뒤 가사와 보컬, 드럼과 기타, 코러스까지 갖춘 두 곡이 재생된다. 수노(Suno)나 유디오(Udio) 같은 생성형 음악 서비스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이다. 음악 제작에 필요했던 여러 기술과 공정이 하나의 화면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번 연재는 이 장면에서 출발해 생성형 AI가 음악의 창작과 A&R, 소비, 권리, 직무, 그리고 산업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는지 총 7회에 걸쳐 살펴본다.<편집자 주>
[본 이미지는 AI 기술을 활용해 제작되었습니다.] 생성형 AI가 먼저 낮춘 것은 음악적 재능의 문턱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소리로 구현하는 기술적 문턱이다. 예전에는 머릿속에 멜로디가 떠올라도 악기를 연주하거나 악보를 쓰고, DAW(디지털 오디오 워크스테이션)를 다룰 줄 알아야 했다. 편곡을 붙이고 가이드 보컬을 녹음하려면 다른 사람의 도움과 비용도 필요했다. 이제는 “새벽 도시를 걷는 30대 남성의 쓸쓸한 인디 팝”처럼 원하는 장면과 정서를 문장으로 설명하는 것만으로 노래의 윤곽을 들을 수 있다. 그 곡의 특정 구간을 바꾸거나 가사를 수정하는 일도 가능해졌다. 창작의 출발점이 ‘연주할 수 있는가’에서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로 이동한 셈이다.
이 변화는 비전문가에게만 열린 기회가 아니다. 독립 창작자는 스튜디오에 들어가기 전 여러 방향의 데모를 시험할 수 있고, 중소규모 제작사는 외부 인력을 모두 투입하기 전 시장성과 콘셉트를 가늠할 수 있다. 전문 작곡가도 익숙하지 않은 장르의 리듬과 악기 조합을 빠르게 탐색한다. 과거에는 비용 때문에 포기했을 아이디어를 여러 버전으로 비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생성형 AI는 창작의 실패 비용을 낮춘다.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더 많이 시도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그 대신 대중음악 제작의 오랜 분업 구조는 압축되고 재배열된다. 하나의 완성된 곡은 작곡가와 작사가, 편곡가, 연주자와 가수가 소리를 쌓아 올린 뒤 프로듀서와 엔지니어가 녹음과 믹싱을 완성하는 협업의 결과였다. 생성형 AI는 이 가운데 초안 작곡, 편곡 제안, 가이드 보컬, 사운드 디자인을 한 화면에서 동시에 수행한다. 한 사람이 과거 여러 인력이 나누어 맡던 초기 제작 단계를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변화는 협업의 종말이라기보다 협업이 시작되는 시점을 뒤로 미룬다. 아이디어를 확인하는 데도 작곡·편곡·연주·녹음 인력이 필요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한 사람이 데모를 만든 뒤 필요한 전문가를 선택해 투입할 수 있다. 제작비도 초기 탐색보다 최종 녹음, 보컬 디렉팅, 사운드의 차별화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누가 참여하느냐 만큼 언제 참여하느냐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업계의 대응도 이런 변화를 보여준다. 스포티파이는 2026년 4월 보컬과 연주, 후반 작업 가운데 어디에 AI가 쓰였는지를 곡 크레딧에 표시하는 ‘AI 크레딧’을 음악 메타데이터 국제표준기구 DDEX 방식으로 시범 도입했다. 애플뮤직도 같은 해 3월부터 독자적인 ‘트랜스페어런시 태그’(Transparency Tags)로 유통 단계에서 AI 사용 신고를 받기 시작했다. 두 회사의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방향은 같다. ‘AI 생성’과 ‘AI 보조’를 가르는 이분법이 아니라, 어느 창작 요소에 AI가 쓰였는지를 특정하는 방식이다.
그렇다고 제작의 전문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문성이 작동하는 위치가 달라진다. AI가 제시하는 첫 결과는 완성된 작품이라기보다 선택 가능한 데모에 가깝다. 멜로디는 자연스럽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듯하고, 보컬은 매끄럽지만 가사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노래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생성 버튼은 곡을 내놓지만 그 곡이 왜 필요한지까지 판단하지는 않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딸깍’이라는 표현의 한계가 드러난다. 음악은 딸깍 한 번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수많은 결정이 남는다. 두 개의 결과 가운데 어느 쪽을 남길 것인가. AI 보컬을 가이드로만 쓰고 실제 가수의 목소리로 다시 녹음할 것인가. 이 선택들이 쌓여야 익명의 결과물이 특정 아티스트의 음악으로 바뀐다.
콘텐츠 생산이 늘수록 이 판단은 더욱 중요해진다. 디저(Deezer)는 2026년 7월, 그해 6월 정점 기준으로 하루 약 9만 곡의 완전 AI 생성 음악이 유입돼 신규 업로드의 절반을 넘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곡들이 차지한 실제 스트리밍 비중은 1~3%에 머물렀고, 그마저도 상당 부분이 부정 스트리밍으로 걸러져 정산에서 제외됐다. 한 플랫폼의 집계지만, 생산량의 폭증이 곧 청취와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음악이 부족한 시대의 문제는 만드는 것이었지만, 음악이 넘치는 시대의 문제는 무엇을 들어야 하고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전문 음악인의 역할도 여기에 맞춰 변한다. 작곡가는 처음부터 모든 음을 직접 만드는 사람을 넘어 생성된 소재를 자신의 언어로 다시 쓰는 사람이 된다. 보컬 디렉터는 정확한 음정뿐 아니라 발음과 호흡, 감정의 방향이 곡의 인물과 맞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프로듀서는 더 많은 버전을 더 빨리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흩어진 가능성을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시키는 최종 결정자가 된다.
한국저작권위원회가 2025년 6월 펴낸 ‘생성형 인공지능 활용 저작물의 저작권 등록 안내서’도 같은 맥락이다. 안내서는 인간의 창작적 기여가 인정되는 결과물만 등록 대상으로 보며, 창작자가 표현의 방법과 과정을 주도할 수 있는가(통제가능성), 의도한 바를 의도한 대로 나타낼 수 있는가(예측가능성)를 그 기준으로 삼는다. 이번 글의 초점은 권리 인정의 기준 자체가 아니라, 프롬프트 이후 인간이 결과를 얼마나 통제하고 변형했는가를 제도 역시 묻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생성형 AI는 제작 도구를 넓혔지만, 완성도와 방향에 대한 책임까지 대신 맡지는 않는다.
누구나 음악을 생성할 수 있는 시대가 곧 누구나 음악가가 되는 시대는 아니다. 앞으로 전문성을 가르는 기준은 첫 음을 만드는 속도보다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살릴지 결정하는 안목이다. 생성형 AI가 제작의 손을 늘려 놓았다면, 인간에게 남는 일은 그 손들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정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음악은 ‘딸깍’으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곡을 작품으로 완성하는 일은 결코 ‘딸깍’으로 끝나지 않는다. 다음 회차에서는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이 오래 사랑받을 수 있는지, 기술적 완성도와 인간 창작의 가치 사이에 놓인 간극을 살펴본다.
박태용 서경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저자소개=일본 메이저 음악기업 포니캐년(Pony Canyon) 한국지사 A&R 총괄 팀장과 소노르뮤직그룹 대표, 서울시립청소년음악센터 음악사업 총괄을 거치며 지난 20여 년간 음악산업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 왔다. 현재 대학에서 음악산업의 구조와 비즈니스, 창작과 유통 환경의 변화 등을 교육·연구하며 다음 세대 음악 예술가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을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