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AI 드라마 ‘도화담기’의 한 장면/사진=바이두백과 영상 캡처 배우도, 촬영장도 없다. 중국에서 숏폼을 중심으로 몸집을 키운 AI 드라마가 지방 방송사 정규 편성까지 진출했다. 제작비와 제작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기대는 크지만, 막상 완성된 작품을 보면 기술의 빈틈도 선명하다. 국내에서도 AI를 활용한 장면이 하나둘 등장하는 가운데 제작비 상승에 시달리는 드라마 업계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중국 안후이위성TV가 지난달 선보인 20부작 사극 ‘도화담기’는 전 제작 과정을 AI로 완성해 중국 지방 위성채널에 편성된 첫 완전 AI 중편 드라마다. 안후이성 징현의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인 선지 제작 기술을 소재로, 명나라 만력제 시기 황실 호위무사가 제지 공방에 잠입해 여성 장인과 함께 기술과 나라의 대의를 지켜내는 과정을 그렸다. 전통 제지 과정 108단계를 서사에 녹이는 등 소재와 기획 자체는 공을 들였다.
AI 영상 산업의 성장세를 고려하면 방송 편성도 갑작스러운 선택은 아니다. 올해 1분기 중국 영상 업계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마이크로 드라마(숏드라마) 약 12만 8000편 가운데 AI 숏드라마가 95% 이상을 차지했다. 특히 경영난을 겪는 지방 방송사 입장에서는 고액의 드라마 구매 비용을 줄이면서 자체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AI가 매력적인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 AI 드라마 ‘도화담기’의 한 장면/사진=바이두백과 영상 캡처중국 AI 드라마 ‘도화담기’의 한 장면/사진=바이두백과 영상 캡처 문제는 ‘싸게 만드는 것’과 ‘볼 만하게 만드는 것’ 사이의 간극이다. ‘도화담기’에서는 장면 전환이 매끄럽지 않아 화면이 순간적으로 끊기는 듯한 느낌을 주거나, 인물의 표정과 몸짓이 다소 뻣뻣하게 느껴지는 장면이 눈에 띈다. 일부 조연은 얼굴이 서로 비슷하게 생성돼 인물 구분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여기에 실제 배우처럼 섬세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도 한계가 있어 ‘불쾌한 골짜기’를 느낀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이 같은 문제는 AI 기술의 화제성보다 콘텐츠 자체의 완성도가 우선돼야 한다는 비판으로 번졌다. 중국 AI 드라마 ‘도화담기’의 한 장면/사진=바이두백과 영상 캡처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AI 영상의 강점과 한계가 장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고 봤다. 그는 “현재 AI는 액션 연출에서 비교적 강점을 보인다”며 “동작이 빠른 액션 연출 특성상 오류나 어색한 점을 빠르게 지나칠 수 있기 때문에 거부감이 다소 덜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등장인물의 얼굴이 서로 비슷하게 구현되거나 감정 표현이 과장되는 점은 여전히 한계로 꼽힌다. 이 교수는 “세밀한 디렉팅으로 이를 보완할 수는 있지만, 액션 장면보다 창작자가 세부적으로 조정해야 할 부분이 훨씬 많아 비용 효율도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TV 편성 자체는 AI 드라마가 모바일을 넘어 TV 화면에서도 수용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는지를 시험하는 과정이라는 의미가 있다. 다만 이 교수는 완전 AI 드라마를 기존 실사 드라마와 같은 선상에서만 볼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는 “풀 AI 드라마는 오히려 애니메이션의 범주로 보는 편이 적절하다. 결국 이러한 장르를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며 “방송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려면 각 신의 생성 실패를 걸러내는 과정에서 버려지는 장면이 많고, 최근에는 모델 사용 비용도 높아져 배우 출연료를 제외하면 의외로 비용 절감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AI 모델의 비용 효율이 개선되기 전까지 완전 AI 드라마는 ‘실험’의 성격이 강하고, 당분간은 비용 부담이 큰 기존 CG(컴퓨터그래픽) 작업을 AI로 대체하는 방식이 먼저 확산될 것으로 내다봤다. 사진=모피어스스튜디오 제공 국내도 이미 그 단계에 들어섰다. 지난달 종영한 SBS 드라마 ‘김부장’은 약 3분 길이의 액션 시퀀스를 AI로 제작해 화제를 모았다. 오는 11월 방송 예정인 KBS 대하드라마 ‘문무’도 대규모 전쟁 장면의 군중과 화재 장면, 실제 촬영이 어렵거나 위험한 장면을 구현하는 데 AI 기술을 활용할 예정이다.
실제 제작 현장에서도 AI 도입에 대한 관심은 높다. MBC 드라마 ‘판사 이한영’, ‘언더커버 하이스쿨’ 등을 제작한 정연지 슬링샷스튜디오 대표는 “드라마 업계 역시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추세”라면서도 “저작권에 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라고 말했다. 창작물은 권리의 귀속이 중요한데 AI가 만든 결과물의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아직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실제 일부 플랫폼에서는 관련 문제가 정리되기 전까지 AI 작업물 사용을 지양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제작 구조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정 대표는 배우의 경우 향후 초상권을 판매하는 형태의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봤으며, 가장 큰 변화가 생길 분야로는 CG 등 후반 작업을 꼽았다. 기존에는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했던 작업을 AI가 보완하면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어렵거나 위험이 따르는 촬영에서 제작비 부담을 줄이면서 볼거리를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당장 AI가 제작비 절감의 만능 해법은 아니다. 정 대표는 “현 시점에서는 AI 전문 업체와 인력에 들어가는 비용이 높아 실제 비용 절감이나 시간 단축이 이뤄지고 있지는 않다”고 전했다. 배우의 초상권뿐 아니라 작가가 쓴 극본의 저작권 등 풀어야 할 문제도 적지 않다.
중국이 먼저 완전 AI 드라마를 TV에 편성하며 기술의 가능성과 한계를 시험대에 올린 가운데, 국내에서는 당분간 배우와 촬영장을 모두 AI로 대체하기보다 제작비가 많이 들거나 촬영 위험이 큰 장면부터 AI 활용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AI가 드라마 제작의 판을 바꿀지는 얼마나 많은 것을 대신할 수 있느냐보다, 시청자가 AI라는 사실을 잊고 작품에 빠져들 수 있을지 완성도에 달릴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