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가 올라오는 순간, 법정은 SNS로 옮겨진다. 몇 장의 대화 캡처와 짧게 편집된 녹취가 증거처럼 퍼지고, 진실이 가려지기도 전에 댓글창에서 대중의 판결이 내려진다.
최근 배우 황정민을 둘러싼 사안도 같은 질문을 남긴다. 한 여성이 황정민과 사적인 관계였다고 주장하며 메시지 등을 공개했고, 황정민 측은 해당 여성이 지속적으로 자신을 괴롭혀 온 스토킹 사건의 피고인이며 자료도 악의적으로 편집됐다고 반박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만큼 어느 한쪽의 주장을 확정된 사실처럼 단정해서는 안 된다.
황정민의 처신이 적절했다고 두둔하려는 것은 아니다. 팬과의 사적 연락이나 만남에서 경계를 엄격히 관리하지 못했다면 그에 대한 설명과 책임은 필요하다. 그렇다고 현명하지 못한 처신이 있었다는 것과 집요한 연락, 사생활 공개, 사회적 공격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사람은 잘못을 할 수 있고, 동시에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잘못이 있었다는 이유로 보호받을 권리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일반인과 연예인의 갈등을 쉽게 약자와 강자의 구도로 바라본다. 그러나 폭로가 시작되는 순간 힘의 방향은 뒤집힐 수 있다. 폭로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와 공개 시점을 선택하지만, 연예인은 이름과 얼굴, 가족과 작품, 광고계약과 수많은 관계자의 생계를 걸고 대응해야 한다.
침묵하면 인정했다고 하고, 해명하면 말을 맞춘다고 한다. 고소하면 일반인을 압박한다고 하고, 고소하지 않으면 사실이어서 대응하지 못한다고 한다. 어느 길을 택해도 사회적인 유죄가 예정된 구조다. 연예인의 유명세는 오히려 상대의 공격 효과를 키우는 확성기가 된다.
연예인에게 의혹은 단순한 평판 문제가 아니다. 사실관계가 밝혀지기 전에도 광고가 내려가고 작품과 편성이 흔들린다. 폭로는 몇 분 만에 퍼지지만 법원의 판단에는 수개월이 걸린다. 훗날 주장이 허위나 과장으로 밝혀져도 첫 번째 헤드라인이 남긴 피해는 되돌리기 어렵다.
물론 유명인은 더 큰 영향력을 가진 만큼 더 많은 검증을 감수해야 한다. 실제 피해자의 용기 있는 폭로가 거대한 권력을 무너뜨린 사례도 많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폭로를 막는 일이 아니라 폭로와 판결을 구분하는 일이다. 피해 호소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최초 폭로자의 말을 곧바로 진실로 확정하는 것은 다르다.
언론은 폭로가 있었다는 사실과 폭로 내용이 사실이라는 판단 사이에 선을 그어야 한다. 잘린 녹취보다 전체 맥락을 확인하고, 반론도 폭로와 같은 무게로 다뤄야 한다. 대중 역시 누군가의 몰락을 실시간 콘텐츠처럼 소비하는 태도에서 한 걸음 물러설 필요가 있다.
스타의 이름은 대중에게 알려져 있지만, 그의 삶 전체가 대중의 소유물은 아니다. 잘못이 확인되면 그에 맞는 책임을 물으면 된다. 다만 확인되기 전에 한 사람을 파괴하지 않는 것, 잘못한 사람에게도 피해자로서 보호받을 권리를 남겨두는 것.
그것이 폭로의 시대에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정의다.
노종언 변호사 (법무법인 존재)
노종언 변호사 ▶저자 소개=노종언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 합격 후 현재 법무법인 존재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구하라,박수홍, 오메가엑스, 선우은숙 사건 등 굵직한 연예계 분쟁을 수행한 엔터테인먼트 분쟁 전문가입니다. 다수의 사건을 수행하며 얻은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엔터테인먼트 법률 이슈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