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연일 '과점 폐해' '가격 담합' 등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내자 이동통신 3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민생 경제 회복을 위한 첫 단추로 가계 통신비 인하를 콕 집어 채찍질에 나선 것이다. 그동안 한정된 시장 안에서 투자 노력 없이 이득을 취해왔다는 지적에 이동통신 업계는 내심 억울한 모습이다.
21일 이동통신 업계 관계자는 최근 정부의 5G 중간요금제 세분화 요구와 관련해 "칸막이처럼 각 요금제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아야 건강하다고 볼 수 있다"며 "하나의 상품이 밀려 내려가면 나머지 요금제의 스킴(계획)을 모두 손봐야 한다. 그냥 떡하니 내놓기 어려운 이유"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달 들어 비용 부담을 낮춘 5G 신규 요금제 출시에 더욱 속도를 내줄 것을 업계에 주문했다. 이미 중간요금제와 약정 없는 온라인 요금제 라인업을 구축했지만 국민 기대치에 못 미친다는 판단에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금융·통신 분야는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고 정부 특허에 의해 과점 형태가 유지되고 있다"며 "통신의 품질과 요금, 서비스 개선을 위한 건전한 경쟁이 촉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공정거래위원회는 이통 3사의 영향력이 막강한 단말기 유통 시장을 면밀히 살펴볼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요금체계를 담합했는지 조사할 가능성도 열려있다.
또 전날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2차관은 '통신시장 경쟁 촉진 정책 방안 TF' 첫 회의에서 "회사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담합이 형성되는 분위기가 없었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하반기 이통 3사가 정부의 요구에 대응해 20~30GB 구간 5G 중간요금제를 선보였지만 통신비 부담 완화에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은 것으로 봤다.
현재 3사 모두 비어있는 40~100GB 구간 요금제를 상반기 내 추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5G 평균 데이터 사용량인 50GB 이상 구간도 충족해야 한다는 진단에서다.
정부의 방향성과 달리 이통 업계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주주와 오프라인 매장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엮여 있어 기한 내 신규 요금제 설계 완료가 힘들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통 업계 관계자는 "아직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분석도 해야 하는데 상반기로 못 박기가 쉬운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70GB 상품을 내놨다고 가정하면 과거의 20~30GB 구간과 달리 100GB에 가까운 프리미엄 요금제에서 다운그레이드할 가능성이 있어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과점 상황을 우려한 다음 날인 지난 16일 이통 3사의 주가는 일제히 하락했다. 점유율 1위 SK텔레콤의 주가가 전일 대비 4.3% 떨어지며 가장 큰 낙폭을 보였다.
자급제 활성화를 위해 약정 부담을 없애고 비대면으로 가입 절차를 간소화한 온라인 요금제 개편도 추진되고 있다. LG유플러스가 이달 중 활성화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며, KT도 다음 달 안에 개선책을 공개할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온라인 요금제 업그레이드에도 걸림돌이 있다. 대형 오프라인 유통점의 불만이 커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온라인 요금제는 직영 매장이 수수료를 가져간다”며 “대형 유통점으로 가야 할 고객들이 본사 온라인으로 빠져 파이 나눠 먹기로 인식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가뜩이나 포화 상태에서 단말기 가격은 올라 시장 자체가 불황인데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