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스포츠가 프로축구 40주년을 맞아 전문가 패널의 설문을 토대로 올타임 베스트11을 선정했다. 일간스포츠는 직접 뽑은 40년 최고의 선수 11명 명단을 소개한 후, 한 명씩 자세하게 소개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1983년 프로축구 수퍼리그 출범 이후 2023년 현재 피치 위를 누비는 현역 선수까지 다양한 각 포지션 최고의 선수들을 만나본다. <편집자주>
K리그를 대표하는 ‘왼발’ 하면 대다수의 팬은 염기훈(40·수원 삼성)을 떠올릴 것이다. 염기훈은 자타공인 국내 최고의 왼발 키커다. 기록이 증명한다. 그는 에닝요와 K리그 역대 프리킥 최다 득점(17) 공동 1위다.
애초 오른발잡이였던 염기훈은 유년 시절, 자전거 바퀴에 오른 발톱이 끼이는 큰 부상을 당했다.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축구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왼발의 감각을 키워야 했다. 약발 활용의 어색함을 익숙함으로 바꾸는 것의 답은 ‘노력’이었다.
염기훈은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그때를 떠올리며 “처음부터 왼발잡이가 아니었기에 한발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개인 운동을 1년에 300일 정도는 계속했다. 항상 기본기 연습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왼발을 차게 됐다”며 “왼발로 프리킥 연습을 가장 많이 했다. 공을 20개씩 세워놓고 프리킥, 슈팅 연습을 했다”고 밝혔다.
노력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K리그 통산 442경기에 출전한 염기훈은 77골 110도움을 쓸어 담았다. 18년 프로 생활 동안 K리그1 미드필더 부문 베스트11 3회(2011·15·17), 도움왕 2회(2015·16) 등 화려한 커리어를 쌓았다. 내로라하는 전선들을 제치고 40년 역사상 최고의 미드필더로 꼽힌 배경이다.
프로축구 출범 40주년 베스트11에 뽑힌 현역 선수는 염기훈과 데얀(킷치SC)뿐이다. 염기훈은 “(선정 소식을 들었을 때) ‘제가 왜요?’라며 깜짝 놀랐다. 훌륭한 선배님들이랑 뽑혔기에 어떤 상보다 더 뜻깊고 영광스럽다. 18년간 열심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북 현대에서 프로 데뷔한 염기훈은 울산 현대를 거쳐 2010년 수원 이적 후 전성시대를 열었다. 총 여섯 시즌 두 자릿수 도움을 기록했다. 빼어난 탈압박, 매끄러운 볼 배급 등 K리그 대표 ‘게임체인저’로 자리매김했다. 정확도 높은 킥이 주 무기인 그는 ‘왼발의 지배자’, ‘왼발의 마법사’ 등 별명도 얻었다.
2015년을 ‘전성기’로 꼽은 염기훈은 “당시 열심히 해서 중동 오퍼도 받았다. 그때는 크로스만 올리면 우리 팀에 갔고, 패스 역시 (어떻게 해도) 우리 팀에 갔다. 기억이 확실하지 않지만, 모든 대회 통틀어 공격포인트만 32~33개였다”고 회고했다. 염기훈은 2015시즌 리그에서만 35경기 8골 17도움이라는 눈부신 자취를 남겼다. 그해 도움왕도 그의 차지였다.
정상의 자리를 오래도록 지킨 것도 염기훈이 높게 평가받는 이유다. 22세의 나이로 프로 생활을 시작한 염기훈은 어느덧 불혹이 됐다. 그는 기본에 충실했던 것을 롱런의 비결로 짚었다. 염기훈은 “운동, 일상생활 등 항상 기본을 많이 지키려고 했다. 늘 솔선수범하려고 했고 운동장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고 돌아봤다.
2023시즌을 앞두고 ‘라스트 댄스’를 외친 염기훈은 수원의 플레잉코치로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 애초 지난 시즌을 마친 후 은퇴를 결심했지만, 이병근 수원 감독의 만류 덕에 현역 생활을 한해 더 이어가기로 했다.
목표는 확실하다. 통산 77골(110도움)을 기록한 염기훈은 3골만 기록하면 K리그 최초 80-80클럽에 가입하게 된다. 그는 “은퇴를 앞두니 개인 기록이 욕심나는 게 사실이다. 올해 (80-80 기록을) 세울지 모르겠지만, 축구화를 벗는 마지막까지 도전할 것”이라며 “동료들에게 우스갯소리로 ‘형 들어가면 페널티킥 만들어줘’라고 한다. 기록 경신은 스스로 할 수 없다. 후배들이 많이 도와주지 않을까 싶다”며 기대했다.
‘우승’도 마지막 바람이다. 염기훈은 수원에서 대한축구협회(FA)컵 우승 3회(2010·16·19)를 맛봤다. 전북에서는 프로 데뷔 해인 2006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섰다. 하지만 18년간 리그 트로피에 입을 맞추지 못했다. 전통 명가로 불리는 수원 역시 최근 정상과는 다소 멀어졌다.
염기훈은 “리그 우승을 하고 싶다. 올해 80-80까지 두 가지를 이룬다면, 지금까지 프로 생활한 18년 중 가장 기분 좋고 뜻깊은 해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