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TAR타르' 스틸. 사진제공=유니버설픽쳐스 코리아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권력 의지가 삶을 추동하는 내적 동기며 삶 자체라고 설파했다. 이 에너지는 더 가지려는 의지와 더 강해지고자 하는 의지를 동반하며 권력 관계에서 위계질서를 필연적으로 생산한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어떤 세계도 이런 권력 관계와 위계질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은 없어 보인다.
뮤지션의 세계에서 지휘자는 위계질서의 정점에 있는 존재인가? 가상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첫 여성 수석 지휘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타르(TAR)’(감독 토드 필드, 2023년)는 이 질문에 명확하게 아니라고 답한다. 이 영화는 엔딩 크레딧에서나 나오는 영화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오프닝 타이틀에서 먼저 제시된다. 클래식 뮤지션에 대한 영화의 오프닝 배경 음악으로는 아마존 토속민의 노래가 흘러 나온다.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시작인 것이다. 검은 바탕에 문자가 스크롤 되는 오프닝이 끝나면 지휘자 리디아 타르(케이트 블란쳇)의 다양한 업적과 이력을 소개하는 강연 사회자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에 리디아 타르가 입을 옷을 만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화면을 장식한다. 옷감을 재단하고 재봉질을 하고 단추를 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 다음에야 지휘자에게 옷이 입혀지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는 지휘복을 입은 지휘자에게만 주목하지 말고, 그 옷을 만드는 사람들의 과정에 주목하자는 감독 의지의 표명이다.
초반 10분을 할애하는 강연에서 타르는 지휘자의 권력에 대해 언급한다. 곡 해석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고 지휘자는 시계를 시작하는 사람, 즉 연주하는 시간을 지배하는 자라고 말한다. 이에 사회자가 오케스트라의 핵심이 지휘자에서 제1바이올린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하는데, 언제 바뀌었냐고 반문한다. 타르는 어떤 지휘자가 뾰족하고 긴 막대를 바닥에 찍으며 템포를 맞추곤 했는데 단원들은 싫어했을 것이고, 그가 실수로 자신의 발을 찔러 괴사로 죽게 되면서 바뀌게 됐다고 능청스럽게 말한다. 이 말은 지휘자의 오만과 실수가 지휘자 자신을 죽게 한다는 이 영화의 메시지를 상징한다. 영화 'TAR타르' 스틸. 사진제공=유니버설픽쳐스 코리아 이 영화는 지휘자로서 최전성기에 있는 타르가 그 권력을 휘두르면서 한편으로 견디기 힘든 왕관의 무게로 심리적으로 얼마나 짓눌리며 지내는가를 함께 보여준다. 타르는 그를 아끼는 마음에서 도와주는 주변사람들의 노고를 당연시 여기며, 심지어 그들의 자리를 빼앗고 그가 새롭게 마음이 가는 사람들로 교체해 결국 주변사람들이 등을 돌리게 만든다. 자신이 설립한 재단 회원 중 그와 가까웠던 지휘자가 자살하자 사건의 화살이 타르에게 쏠리고, 그가 대학에서 한 강연을 악의적으로 편집한 동영상이 SNS에 유포돼 성추문에 시달리기도 한다. 극도로 예민해진 타르는 지휘자 자리에서 쫒겨났음에도 오케스트라 리허설에 들어가 난동을 부리면서 추락의 끝으로 가게 된다. 영원회귀의 정점에 도달하면 다시 하락한다는 니체의 말처럼 추락의 바닥에서 타르는 정신적 멘토인 레너드 번스타인의 예전 비디오 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음악을 시작했을 때의 근원으로 회귀한다.
세 시간 가까운 이 영화를 몰입시키는 데는 케이트 블란쳇의 신들린 연기가 큰 역할을 한다. 케이트 블란쳇은 그동안 국제적으로 주요한 시상식에서 이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도 수상이 유력해 보인다. ‘타르(TAR)’는 그 외에도 아카데미 시상식에 작품상·감독상·각본상·촬영상·편집상 등 6개 부문의 후보에 올랐다. 리허설이나 공연할 때 짧게 나오기는 하지만 작곡가 말러의 5번 교향곡과 엘가의 첼로협주곡 등이 영화의 격조를 더한다.
그리스 극작가 소포클레스는 ‘신은 잘난 척하는 혀를 경멸한다’고 했다. 이 영화는 잘 나갈 때야말로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 겸손한 마음이 필요하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