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서버가 그야말로 불이 나고 있다. 최근 공개된 두 프로그램이 크게 인기를 끈 덕이다.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드라마 ‘더 글로리’와 ‘메시아’를 자칭하는 이들의 뒷이야기를 담은 범죄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하 ‘나는 신이다’) 두 편의 K콘텐츠는 각자 방송에서 다룬 소재로 사회의 큰 관심을 이끌어내며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12월 파트1에 이어 파트2로 돌아온 ‘더 글로리’가 넷플릭스의 시청자들을 집중시켰다. ‘더 글로리’ 파트2 공개일이었던 지난 10일 넷플릭스의 국내 앱 이용자는 무려 55%나 폭증했다. 넷플릭스는 파트2 공개를 기념해 마련한 중간고사 이벤트를 서버 과부하 문제로 정상 진행하지 못 했고, 공개 당일이었던 10일 일시적으로 서버가 멈추는 일도 있었다. 그만큼 ‘더 글로리’에 대한 이용자들의 관심이 뜨거웠음을 실감하게 하는 사례다.
‘더 글로리’는 10대 시절 학교폭력을 당한 여성이 시간이 흘러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파트1에서는 과거 주인공 문동은(송혜교)에게 자행됐던 폭행들과 문동은과 대비되게 태평무사한 가해자들의 현재가 소개돼 시청자들을 분노케 했다면 파트2에서는 동은의 복수가 결말을 맺었다.
실제 누군가가 실행에 옮기면 다소 위험할 법한 사적 복수의 이야기가 이토록 사회적 관심을 모으게 된 것은 그 소재가 ‘학교폭력’이라는 어린 아이들에게 자행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실제 ‘더 글로리’ 공개 이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자신이 어린 시절 다른 친구들이나 교사로부터 당했던 폭행의 기억을 공유하는 글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심지어 프로그램을 연출한 안길호 PD마저 1996년 필리핀에서 학교를 다닐 당시 자신보다 어린 학생을 폭행한 사실이 드러나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안길호 PD의 법률 대리인은 논란이 불거진 지 이틀 뒤인 12일 “여자 친구가 자신으로 인해 학교에서 놀림거리가 됐다는 얘기를 듣고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해져 타인에게 지우지 못할 상처를 줬다”고 밝혔다. 이어 “이 일을 통해 상처받은 분들께 마음속 깊이 용서를 구한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직접 뵙거나 유선을 통해서라도 사죄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사과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아동학대처벌법상 폭행죄 공소시효는 성년이 된 이후 5년, 상해죄는 7년이다. 비교적 공소시효가 짧은 축. 여기에 학교폭력 사실을 시간이 지난 뒤 입증하기는 어려워 실질적 처벌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에 따라 과거의 성범죄 피해 사실을 연대의 형식으로 표현했던 ‘미투’처럼 학교폭력 피해 사례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사회 곳곳에 퍼져나가게 되리란 관측도 있다. 연예계에서는 이 같은 민감한 대중의 반응을 살펴 연습생 등을 선발할 당시 가족 및 주변인들과 면담을 갖고 생활기록부 내용도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2년간 학교폭력을 당했음을 고백한 유튜브 채널 아린다움 표예림의 채널 운영자 표예림 씨는 학교폭력에 대한 공소시효,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등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적용될 여지가 있는 조항을 폐지해 달라고 국회 국민동의 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나는 신이다’ 역시 한국 현대사에 등장했던 ‘메시아’의 이야기를 통해 특정 종교 내부에서 자행되는 끔찍한 범죄 사실을 고발하고, 이 같은 범죄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시스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꼬집으며 사회에 충격을 선사했다.
‘나는 신이다’에 따르면 특정 종교 내부에서 교주에 의한 신도들의 성착취가 계속될 수 있는 건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성범죄 피해를 입은 사람이 직접 다음 피해자를 찾아오거나 방관하게 함으로써 범죄에 가담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신이다’에서 자신의 피해 및 방관(가해) 사실을 증언한 이들은 이 같은 시스템의 폐해를 알리고 죄책감 때문에 숨어 있는 사람들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도왔다는 평가다.
방송사 내부나 연예계에서도 범죄에 연루된 종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속속 해명에 나서고 있다. 어떠한 종교를 믿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 종교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범죄와 관련돼 있다면 사회적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할 터. 아이돌 그룹 DKZ 멤버 경윤, 배우 강지섭 등이 ‘나는 신이다’에서 다뤘던 JMS 탈교 뜻을 밝혔다.
배우 정가은이 지난 2010년 SBS 예능 프로그램 ‘강심장’에 출연해 “저렴한 비용으로 모델 워킹을 배울 수 있는 예술단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그곳에선 수업 전에 늘 기도하고 산 중턱에는 ‘선생님’이 있었다”며 “선생님으로 불리던 남성이 노천으로 보이는 곳에서 수영복만 입고 앉아 있었다. 여자들 역시 수영복만 착용한 채 선생님 주변에 모여 있었다”고 밝혔던 내용도 다시 화제가 됐다. 이 내용은 ‘사이비’로 불리는 한 종교 단체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사이비 종교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포교 활동을 하고 있는가를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이비 종교에 다녔던 과거나 포섭될 뻔했던 이야기를 공개하며 정보를 제공하는 글도 잇따르고 있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타인을 돕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대학가에서도 일반적인 종교를 표방하고 포교 활동을 하고 있는 동아리 명단을 정리해 공유하는 등 사이비 종교에 면밀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모양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신이다’ 에피소드 ‘아가동산, 낙원을 찾아서’, ‘죽음의 아가동산’에서 언급된 신나라레코드에 대한 불매 운동도 전개되고 있다. ‘나는 신이다’에서 신나라레코드를 아가동산의 김기순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곳으로 소개하면서 유력 팬덤들은 신나라레코드에서 앨범을 공동구매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속속 하고 있는 상태다. 잘 만든 콘텐츠들이 사회적 문제에 대한 대중의 경각심을 깨워 사회에 변화를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나는 신이다’를 만든 조성현 PD는 기자 간담회에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분들이 이 사건과 종교를 알고 인지해서 사회에 화두를 던질 수 있길 바랐다”면서 “그런 일들이 실제 벌어지고 변화가 이뤄지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뿌듯하다”고 했다.
또 “사회적인 논의가 시작됐다는 점에서 프로그램의 소임을 다했다고 본다”며 “프로그램을 통해 어떠한 대안까지 제시하는 것을 하긴 어렵지만, 이렇게 사회적으로 상황이 무르익다 보면 어느 순간 그런 일도 가능하리라 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