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4 홀이었다. 페어웨이 폭이 상당히 좁았다. 거리는 제법 길고. 뱁새 김용준 프로는 드라이버와 3우드를 함께 빼어 들고 티잉구역에 올라섰다. 흔히 티박스라고 부르는데 티잉구역이 옳은 말이다.
그는 머뭇거리지 않고 잔디를 반 움큼 뜯어 가느다란 바람에 태워 보냈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감안해 클럽을 고르는 척 할 심산이었다. 정상급 선수가 하는 루틴을 흉내 낸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는 뭔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3우드를 들었다. 연습 스윙을 두 번 하고 막 셋업을 할 때였다. 옆에 있던 후배가 갑자기 물었다. “뱁새님, 어떤 때는 드라이버를 잡고 어떤 때는 3우드를 잡나요”라고.
자격지심일까? 틀림 없이 “김 선배”라고 부른 것 같은데 그의 귀에는 “뱁새”라고 들렸다. 그는 셋업을 풀고 가소롭다는 듯이 미소를 띠며 답했다. “그런다고 내가 말려들 줄 알아?”라고. 그는 직전 홀에서 기가 막힌 퍼팅으로 버디를 해 그 홀 상금과 버디 보너스까지 받았다. 우쭐해질 수 밖에. 그 기세로 이번 홀로 오는 길에 카트 속에서 ‘내기 골프 이기는 비결’에 대해 떠벌렸다.
내기 골프에서 이기는 비결 가운데 약발이 가장 잘 선다고 그가 꼽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질문하라’였다. 질문하라! 고개를 끄덕이는 독자라면 상당한 실력을 가진 것이 틀림 없다. 무슨 소린지 갸웃한다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이런 고난도 전략을 보기 플레이어인 후배가 프로 골퍼에게 써먹겠다고 시도한 것이다. 그것도 배우자 마자 말이다. 그런 얕은 꾀가 어디 통하겠는가? 산전수전 다 겪은 뱁새에게. 더구나 ‘내기 골프에서 이기는 비결’을 정리한 원저작자 아니던가? 뱁새는 머리를 두어 번 흔들고는 다시 셋업을 했다. 후배가 한 방해 따위는 가볍게 털어낸 듯 했다.
그러나 ‘천기를 누설한 것’이 화근이었을까? 백스윙을 막 시작할 때였다. 문득 ‘어떤 때는 드라이버를 잡고 어떤 때는 우드를 잡는다고 말해줘야 멋질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얼빠진.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다하지 못한 채 골프 클럽을 휘둘렀다. 그 통에도 시원하게 맞은 공은 왼쪽으로 심하게 감겼다. 게다가 바람까지 힘을 보탰다. 공은 흰 말뚝을 듬성듬성 박아놓은 왼쪽 깊은 잡풀 속으로 사라졌다. 아웃 오브 바운드(OB)였다. 아뿔싸! 하수가 낸 꾀에 말린 것이다.
두 번째 공을 티업한 뒤에는 3우드 대신 드라이버를 집어 들었다. 내친 걸음이었을 터이다. 두번째 스윙은 더 우악스러웠다. 이번에는 크게 밀리며 또 OB가 났다. 그제서야 그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그 홀은 더블 파로 겨우 끝냈다. 더블 파란 정한 타수 보다 두 배나 친 것을 말한다. 파4라면 여덟 타를 쳤다는 얘기이다.
후배는 뱁새가 무너지는 사이 가뭄에 콩 나듯 하던 파를 해서 홀 상금을 챙기고는 입이 귀에 걸렸다. 다음 홀로 가는 길에 후배가 또 물었다. “내기 골프에서 이기는 다른 비결은 없느냐”고. 악당 같으니라고! 한 홀에서 OB를 두 번이나 내고도 무엇이 신났는지 뱁새는 또 떠벌렸다. “내기 골프 이기는 또 다른 전술은 재촉하는 것”이라고.
재촉하라!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재촉 당하면 템포가 급해진다. 당연히 타이밍도 나빠지고. 다만 재촉한답시고 노골적으로 빨리 치라고 밀어붙인다면? 아직 상수 축에 들기에는 먼 골퍼이다. “앞 팀과 거리가 벌어지면 욕을 먹으니 서둘러서 따라붙자”는 식으로 은근히 재촉해야 제 맛이다. 재촉하기는 몸이 채 풀리지 않은 초반에 써먹으면 효과가 더 크다. 내가 장담한다. 한 번 서두르게 만들면 좀처럼 경기감각을 되찾지 못한다는 것을.
재촉하기는 주로 상수가 하수에게 써먹는 수법이다. 하수가 어설프게 상수를 재촉하면? 십중팔구 제 발등 찍기가 된다. 잔뼈가 굵은 골퍼라면 웬만큼 서둘러서는 스코어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수는? 서두르게 하려다가 제풀에 실수가 더 잦기 마련이다.
얼씨구! 좋은 것 가르친다. 점잖은 골프 칼럼에 내기 골프 이기는 법이나 늘어놓다니. 독자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하지만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분한 눈물을 삼키는 독자가 저렇게 많은데. 내기 골프에서 이기는 법 제2회는 다음 회에 이어진다. 감질나게 하지 말고 한꺼번에 알려주면 어디 덧나느냐고? 지면 탓인 것을 어쩌겠는가!
‘뱁새’ 김용준 프로와 골프에 관해서 뭐든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메일을 보내기 바란다. 메일 주소는 지메일(ironsmithki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