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격투기 UFC 역사상 수많은 초살 KO승이 있었다. 그 가운데 필자의 머릿속에 가장 기억 남는 주인공은 코리 샌드헤이건(30·미국)이다.
2021년 2월 당시 밴텀급 랭킹 2위였던 샌드헤이건은 전 라이트급 챔피언 프랭키 에드가(42·미국)를 1라운드 경기 시작 28초 만에 쓰러뜨렸다. 일반적인 펀치나 킥에 의한 KO승이 아니었다. 샌드헤이건이 에드가를 무너뜨린 무기는 플라잉니킥이었다. 에드가가 펀치를 뻗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몸을 날려 무릎을 턱에 제대로 꽂았다. 에드가는 그대로 실신해 케이지 바닥에 쓰러졌다.
2021년 2월 밴텀급 경기에서 코리 샌드헤이건이 프랭키 에드가에게 플라잉니킥을 날리는 장면. 사진=UFC
모든 이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TV로 경기를 시청한 필자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나이를 먹고 전성기에서 내려왔다고 해도 에드가는 톱클래스다. 한때 밴텀급보다 두 체급이나 높은 라이트급을 지배했던 최고 선수였다. 그런 에드가를 플라잉니킥 한 방으로 쓰러뜨린 선수라니. 이후 샌드헤이건이란 이름은 필자에게 강하게 각인됐다.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났디. 마침 샌드헤이건과 화상 인터뷰를 할 기회가 생겼다. 당연히 가장 먼저 그 경기에 대해 물었다. 샌드헤이건도 그 경기를 떠올리면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도 역시 기분 좋은 기억임이 틀림없다.
샌드헤이건은 “처음부터 플라잉니킥을 계획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며 “다만 그 기술은 내 경기 계획에 늘 포함돼있고 열심히 준비했던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에드가가 공간을 좁히고 들어오는 순간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였던 것 같다”며 “정말 빠르게, 그리고 제대로 기술이 들어갔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28초 초살 KO승은 샌드헤이건의 파이터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곧바로 밴텀급 타이틀 도전자 후보로 떠올랐다. 하지만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전 밴텀급 챔피언 T.J.딜라쇼(37·미국)와 경기에서 접전 끝에 1-2 판정패했다. 이어 페트르 얀(30·러시아)과 잠정 타이틀전에서도 난타전 끝에 판정패하면서 연패 늪에 빠졌다. 두 경기 모두 내용은 만점이었다. 하지만 승리는 샌드헤이건의 것이 아니었다.
샌드헤이건은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중국 파이터 송야동(26)을 4라운드 닥터스톱 TKO로 꺾고 건재함을 증명했다. 사람들은 다시 그의 챔피언 도전 가능성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기회를 잡았다. 샌드헤이건은 오는 26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AT&T센터에서 열리는 ‘UFC 파이트나이트’ 대회에서 말론 베라(30·에콰도르)와 대결한다. 밴텀급 랭킹에서 베라는 3위, 샌드헤이건은 5위다. 여기서 이기는 선수는 현 챔피언 알저메인 스털링(34·미국/자메이카)에게 도전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밴텀급 랭킹 1위는 메랍 드발리시빌리(33·조지아)다. 하지만 드발리시빌리는 챔피언 스털링에게 도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스털링이 소속팀 동료이자 형제나 다름없는 절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샌드헤이건과 베라의 경기 승자가 다음 도전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샌드헤이건도 이번 경기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생애 처음으로 UFC 대회 메인이벤트에 나서는 샌드헤이건은 “제의를 받았을때 정말 기뻤고 흥분됐다. 이번 경기가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열심히 준비했다. 지금 기분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베라는 정말 좋은 선수다. 타격도 잘하고 그라운드 실력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경험도 풍부한 선수다”면서도 “하지만 내 가장 큰 강점은 방어가 좋다는 것이다. 베라의 공격이 쉽게 먹히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리헤이건 화상 인터뷰. 이석무 기자
샌드헤이건은 다른 일부 파이터처럼 상대를 도발하거나 독설로 자극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인터뷰 내내 비속어도 거의 쓰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을 이어갔다. 대신 그의 목소리에는 격투 스포츠에 임하는 진지함과 책임감이 가득 담겨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난 이 세계(UFC)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 자세히 모른다. 다만 주어진 경기를 잘 치르고 결과를 인정할 뿐이다. 만약 이번 경기를 이기고 타이틀 도전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난 어떤 싸움이든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준비한다. 그것이 내가 이 스포츠를 임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