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했다고 끝이 아니다. 다시 공을 잡아 던지면 된다. 영화 ‘리바운드’ 제목을, ‘리바운드’로 지은이유다. 기적의 8일을 영화로 그렸지만, 기적보다는 실패가 끝이 아니라는 데 방점을 찍었다. ‘리바운드’가 뜨거운 이유다.
농구선수 출신 공익근무요원 강양현. 해체 위기에 놓인 부산중앙고 농구부 코치로 발탁된다. 학교에선 만년 꼴찌니 그냥 구색만 갖추라고 한다. 제대로 된 선수도 없다. 중학교 유망주들은 죄다 서울 농구 명문고로 떠난다.
양현은 이곳저곳 전화를 돌리고 찾아다니며 선수들을 모은다. 오합지졸이다. 어릴 적 주목받던 천재 선수였지만 지금은 슬럼프에 빠진 가드 기범, 발목 부상으로 꿈을 접고 길거리 내기 농구를 전전하던 스몰 포워드 규혁, 점프만 잘하는 축구선수 출신 센터 순규, 길거리 농구만 해온 파워 포워드 강호 등이다. 그나마 키가 2미터가 넘는 고교 최고 유망주 센터 준영이 합류하면서 구색은 갖춘다. 전술은 오직 하나 센터 준영에게 공을 줘라. 즐거운 농구는 사라지고 이기는 농구만 남았다.
하지만 준영은 결국 서울 농구 명문 용산고로 떠난다. 설상가상 용산고는 첫 경기 상대다. 팀워크가 무너진 부산중앙고는 용산고에 치욕적인 몰수패를 당한다. 그렇게 부산중앙고의 농구는 끝이 난 듯 했다. 실패한 듯 했다.
리바운드가 실패가 아니라 기회라는 걸 새삼 깨달은 양현은, 다시 선수들을 모은다. 농구 경력 7년차지만 정규 경기 경험이 전혀 없는 만년 벤치 식스맨 재윤, 농구 열정은 가득한 자칭 마이클 조던 진욱까지 합류하면서, 이들은 마침내 다시 농구를 할 기회를 얻는다. 즐거운 농구 시간이 시작된다.
‘리바운드’는 2012년 단 6명의 선수로 대한농구협회장배에서 준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뤄낸 부산중앙고 농구부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농구를 아는 사람이라면, 교체 선수 없이 경기를 계속 한다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알 터. 8일 동안 모든 경기를 5명이 뛰면서 준우승을 했다는 건 가히 기적이라고 할 만하다. 열정과 투지, 노력과 근성, 그 모든 걸 아우른 두 번째 기회에 대한 갈망이 만들어낸 기적이다.
장항준 감독은 ‘리바운드’를 이 두 번째 기회에 초점을 맞췄다. 실패했더라도 간절히 노력하면, 어쩌면 주어줄 지도 모르는 두 번째 기회. 그리하여 ‘리바운드’는 전반부와 후반부 호흡이 다르다. 전반부가 지리멸렬한 실패의 이야기라면, 후반부는 두 번째 기회의 이야기다. 그리하여 전반부는 느리고, 후반부는 빠르다. 전,후반부가 다른 이 호흡은, ‘리바운드’란 영화 그 자체다. 중요한 건 경기 결과가 아니라 두 번째 기회라고 말한다. 이 두 번째 기회를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고, 어떻게 해야 잡을 수 있고, 어떻게 해야 이룰 수 있을지를 친절히 설명한다. 이 전,후반부 다른 호흡과, 결과보다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연출은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지만 이 영화와 잘 맞는다.
무엇보다 맛깔 나는 대사들이 느린 전반부에는 활력소로, 빠른 후반부에는 쉼표로 작용한다. 이 밸런스가 좋다.
‘리바운드’는 친절하다. 농구를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을 만큼, 해설과 자막으로 친절하게 설명한다. 주제를 놓치고 갈까봐 몇 번이고 친절하게 짚는다. 이 친절한 연출은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관객이 느낄 법한 감정까지 설명하기도 하고, 농구에 문외한이라고 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끌고 가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친절함은 장항준이란 사람과 닮았을 수도 있다. 소심해서 친절한. 또는 친절해서 소심한.
강양현 코치를 연기한 안재홍은 좋다. 웃긴 것과 우스운 것은 종이 한 장 차이건만, 그는 웃기게 말과 상황을 풀어낸다. 안재홍이란 배우가 가진 힘이다. 기범 역을 맡은 이신영은 다부지게 잘 생겼다. 그렇게 연기한다. 주어진 걸 아직은 덜 활용하지만, 그래도 주어진 게 뭔지 아는 것 같다. 규혁을 연기한 정진운은 비로소 배우 같다. 눈에 힘을 줄 때와 뺄 때를 알게 된 것 같다.
‘리바운드’에는 적이 없다. 상대는 있지만, 적은 아니다. 승패가 중요한 영화였다면, 적을 구체화했을 테지만, 그랬다면 더 박진감이 넘쳤을 테지만, 이 영화는 승패가 아니라 과정을 택했다. 그 과정이 중요한 영화다. 그래서 영화 막바지 울려펴지는 ‘펀’의 ‘위 아 영’(We are Young)은 반갑다. 실패해도 두 번째 기회를 얻기 위해 다시 뛰는 사람들은 누구나 젊다고 격려해주는 것 같다. 지금 ‘리바운드’가 반가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