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내가 고등학교 때 임신을 하면 어떻게 할 거야?” 갑작스런 Z의 질문에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김은숙 작가는 자신의 딸이 “엄마는 내가 죽도록 때리면 더 가슴이 아플 것 같아? 아니면 죽도록 맞으면 더 가슴이 아플 것 같아?”라는 질문을 받고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Z의 질문은 한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고 나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 끝에 이렇게 대답했다. ”너랑 잘 상의해서 결정해야지. 네 생각은 어떤지, 어떻게 하는게 좋을지 의견도 들어보고.” Z는 알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짓더니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제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너 ‘고딩엄빠’ 프로그램 본 적 있어?”라고 물어봤다. “챙겨보는 프로그램은 아닌데 친구들끼리 가끔 얘기하기는 해.” ‘고딩엄빠’는 10대에 부모가 된 고딩엄빠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청소년들은 ‘고딩엄빠’를 어떻게 생각할까? Z의 생각이 궁금했다.
X재국 : ‘고딩엄빠’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
Z연우 : 고등학교 때 엄마 아빠가 된다는 건 힘든 일인 거 같아요. 그걸 보는 시청자의 입장도 늘 조마조마하고 걱정이 앞서고. 엄마 아빠가 된 고등학생들이 많이 힘들 것 같은데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건 자신들의 아이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요. 너무 사랑스런 아이를 만나게 돼서 기쁘기도 하고 잘 키우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모든 고등학생들의 기본적인 책임이 공부인데, 고딩 엄빠는 공부를 하는 게 아닌 아이를 키워야 하는 거잖아요. 사실 성인들도 아이 키우는 걸 힘들어하고 두려워하는데 고등학생들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렇다고 주변에서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고딩엄빠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어른들도 별로 없어서 더 위축되고 막막할 것 같아요.
X재국 : 요즘 우리나라 청소년들 성교육 수준은 어떤 것 같아? 문제점이 있다면?
Z연우 : 초등학교에서 가르쳐주는 성교육은 그냥 우리 몸 안에서 어떻게 아이가 생기는지만 알려줘요. 그 전에 어떤 과정이 있고, 주의할 점은 무엇인지 하나도 안 가르쳐 주고요. 난자와 정자가 만나 아이가 생긴다는데 우리는 우리 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해 볼 수 없고 어떻게 했을 때 그 둘이 접촉되는 건지도 모르고요. 그리고 성교육 시간에는 이건 부끄럽고 민망한 게 아니라면서 막상 평소에 궁금한 성지식에 대해 물어보면 ‘잘못’을 저지른 사람 취급을 하며 혼을 내거나 “네 나이대에는 몰라도 돼“라고 말하는 어른들이 더 많고요. 결국 학생들은 SNS나 선배들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성’에 대한 이야기로 성 지식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이 교육적인 내용보다는 유머용이거나, 너무 심각한 내용들이어서 제대로된 성교육이라고 볼 수 없을 거 같아요. “아이는 어떻게 생겨요?”라고 물어보는 어린이들에게 “결혼하면 생기는 거야!” “남자와 여자가 같이 자면 생기는 거야” 이렇게 순화해서 알려주는 게 더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거 같아요. 그렇게 알고 살아오다가 청소년기에 실제로 아이가 어떻게 생기는지 알게 되면 충격을 받거든요. 성에 대한 관심이 더 많이 생기는 중,고등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책에서 봤는데 프랑스는 여고생이 임신을 하면 그 여고생과 아이가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학교와 사회 그리고 국가가 나서서 도와줄 방법을 모색하는데 우리나라는 여고생이 임신하면 ‘퇴학’부터 시킨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도 달라질 필요가 있겠다. 이런 이야기로 대화를 마무리하려는데 Z가 묻는다. “아빠 근데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지 않았어?” “어, 그건 음… 이거랑 다른 문제인 거 같은데. 음…” 나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모순된 것들이 너무 많고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고 말하는 경우가 너무 많으니까. 아, 저출산 문제까지 Z랑 토론해야 하다니, 피곤하다.
필자소개=이재국 작가는 서울예대 극작과를 졸업하고 ‘컬투의 베란다쇼’, ‘SNL코리아 시즌2’, 라디오 ‘김창열의 올드스쿨’ 등 다수의 프로그램과 ‘핑크퐁의 겨울나라’, ‘뽀로로 콘서트’ 등 공연에 참여했다. 2016 SBS 연예대상 방송작가상을 수상했다. 저서는‘아빠왔다’, ‘못그린 그림’이 있다. 이연우 양은 이재국 작가의 딸로 다양한 재능을 가졌으며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은 대한민국 평범한 청소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