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37분쯤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 현미가 쓰러져 있는 것을 팬클럽 회장 김모씨(73)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현미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사망했다.
1937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현미는 1·4후퇴 때 부모, 6남매와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다. 1957년 미8군 위문 공연 무대 칼춤 무용수였던 현미는 방송을 취소한 한 여가수 대신 무대에 오르며 우연히 가수의 길을 걷게 됐다.
현미는 1957년 스무살의 나이에 ‘여대생 가수’라는 타이틀과 함께 현시스터즈로 데뷔했다. 이때 유명 작곡가 이봉조의 눈에 띄어 ‘아, 목동아’라는 팝송 번안곡의 음반을 받게 됐고, 이를 계기로 현미는 솔로 가수로 나서게 됐다.
재즈팝 장르를 부르며 1960년대부터 톱가수로 자리매김한 현미는 1962년 발매된 ‘밤안개’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에도 ‘보고 싶은 얼굴’(1963), ‘떠날 때는 말없이’(1964), ‘무작정 좋았어요’(1966), ‘몽땅 내사랑’(1967), ‘별’(1971) 등 무수한 히트곡을 남겼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디바로 떠오른 현미는 당시 여성 가수들 중에서도 독보적이었던 풍부한 성량과 무대 매너, 화려한 비주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후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 한국의 아픈 역사를 노래로 승화시키며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국민 가수로 성장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가수 생활이 뜸해지기 시작했고 ‘현미 노래교실’을 만들어 인생 제2막에 성공했다. 동시에 다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입담을 자랑하기도 했다. 90년대 이후부터는 성인가요 트롯 장르로 전향해 한계 없는 역량을 자랑했다.
2007년에는 데뷔 50주년 기념 앨범이자 53번째 음반 ‘마이 웨이’를 발매해 음악 활동을 이어갔으며 같은 해 50주년 골든 콘서트를 개최해 건재함을 알렸다. 가장 최근 발매된 곡은 2017년 발표된 ‘내 걱정은 하지 마’다.
지난 1월에는 아리랑TV의 ‘더 K레전드’에서 현미의 이야기를 전하는 ‘쉬즈 스틸 싱잉’ 편을 방송해 그녀의 삶을 조명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