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 없이 위태로운 항해를 이어가는 KT가 고통스럽지만 피할 수 없는 순간을 마주하게 됐다. 앞으로 5개월간 CEO(최고경영자) 선임 및 이사회 구성 절차를 싹 다 뜯어고쳐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나왔던 잡음을 없애고 경영 정상화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
문제는 정부와 여당이 ‘관치’라는 지적에도 아랑곳 않고 보내온 시그널에 이번에는 제대로 화답할지 여부다. 외압에도 꿋꿋하게 내부 인사를 고집했던 KT가 결국 다른 선택을 하게 될지 관심이 쏠린다.
주주 17곳, 인사 추천 '신경전'
10일 업계에 따르면 KT는 12일까지 지분율 1% 이상의 국내외 주요 주주로부터 '뉴 거버넌스 구축 TF'에 참여할 외부 전문가 추천을 받는다. 주주당 최대 2인까지 추천할 수 있으며, TF는 5명 내외로 구성할 계획이다.
TF는 올해 8월까지만 운영할 예정이지만 이사회에 개선안을 제시해 사외이사를 선임하고, 신규 사외이사들 중심으로 바뀐 정관에 따라 대표이사 최종 후보를 확정할 계획이라 영향력이 막강하다.
KT 이사회는 사실상 간판만 간신히 유지하는 상황이다. 대표직 낙마와 이사진 줄사퇴로 김용헌 사외이사(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1명만 남아있다. 강충구(고려대 교수)·표현명(롯데렌탈 전 대표)·여은정(중앙대 교수) 이사가 지난달 말 주총 전 사의를 표명했지만, 사외이사를 최소 3명 이상 두도록 한 상법에 따라 당분간 이사회 의사 결정에 참여한다.
눈 여겨봐야 할 점은 지분율 기준만 넘으면 동등하게 주어지는 2장의 추천권이다. 주식을 많이 보유할수록 유리한 주총 투표와 달리 최대주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현재 KT 지분 1% 이상을 보유한 주주는 국민연금을 비롯해 현대차, 신한은행, 실체스터인터내셔널, 티로우프라이스어소시에이트, 우리사주 등이다. 공시 의무(지분율 5% 이상)가 없는 곳까지 총 17곳이다.
전체 지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소액주주는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모든 주주의 의사를 취합해 반영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작년 말부터 이어진 대표 선임 과정에서 국민연금은 KT의 차기 대표에 내부 인사가 오르는 것에 반대표를 시사한 바 있다. 이른바 주인 없는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가 투명하지 않다는 게 표면적 이유였다. 현대차그룹 역시 같은 편에 섰다.
이에 반해 글로벌 양대 의결권 자문기관인 글래스루이스와 ISS는 KT의 결정을 지지했다. 상황에 따라 국내와 해외의 전략적 투자자들 간 신경전이 펼쳐질 수도 있다. KT 직원들이 모인 우리사주의 움직임도 변수다.
지배구조 전문가만 모을 수 있을까
가장 큰 문제는 전문성 없는 인사가 TF에 들어가 대표 선임 절차에 관여하는 경우다.
앞서 KT는 "기업의 지배구조와 경영에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격 요건으로 기업 지배구조 관련 학계 전문가(교수 등)·지배구조 관련 전문기관 경력자(연구소장 또는 연구위원, 의결권 자문기관 등)·글로벌 스탠다드 지배구조 전문가를 꼽았다.
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1명을 추천했는데 딱히 전문가가 아니라고 판단해도 과감하게 빼고 갈 수 있겠느냐. KT 입장에서는 어려운 문제"라고 했다.
TF를 꾸리는 과정도 대표 후보를 압축할 때와 마찬가지로 투명성을 담보해야 길게 갈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아직까지는 명확한 방향성을 읽을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와 관련해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IT 기술이나 법률, 회계 등 지배구조라는 표현 속에 여러 요소가 존재하는데 전문가를 규정하는 기준이 뚜렷하지 않아 보인다"며 "TF 구성을 완료해도 왜 해당 인사들을 뽑았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사후에라도 선정 절차와 기준을 공개하는 게 안전해보인다"고 말했다.
KT는 이제 물러설 곳도 없다. 정부와 여당의 입김에 정신없이 흔들리며 주가와 실적에도 먹구름이 꼈다.
KT의 주가는 연초 대비 8% 가까이 떨어지며 3만원대도 아슬아슬하다. 구현모 전 대표가 취임 초기 1만원 후반대의 주가를 작년 8월 2배 가까이 끌어올리며 한때 시가총액 10조원을 찍었던 성과가 물거품이 됐다.
김장원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CEO 임기가 만료되는 3년마다 겪을 가능성이 주가에 불확실성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경영의 지속성과 투자의 예측성 관점에서 아쉬움이 노출됐다"고 했다.
박종욱 직무대행은 성과를 낼 필요가 없는 주체인 만큼 실적 개선에 주력할 가능성이 낮아 2만원 중반대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4626억원, 283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6.98%, 8.68%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 KT는 5564억원으로 11.21%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분기 자산(부동산) 매각으로 일회성 비용(746억원)이 발생한 데 따른 기저효과도 있지만, 이를 제외해도 성장률은 1% 미만으로 경쟁사 대비 뒤처지는 모습이다.
'CEO 공백' 리스크에 주가·실적 동반 하락
결국 낙마했지만 구현모 전 대표가 올해 연임을 추진하면서 가장 큰 무기로 삼았던 것은 지난해 실적이었다. 처음으로 연간 매출 25조원 시대를 열었다.
통상 3년 임기의 KT CEO는 자신의 성과가 반영되지 않는 1년 차는 무난히 넘기고 2년 차부터 실적 기반을 다진 뒤 3년 차에 극대화해 연임을 노린다.
하지만 올해는 실적 반등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여기에 CEO 공백은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김홍식 하나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실적이 예상보다 너무 좋았던 탓에 올해 실적이 큰 부담이 된다"며 "마케팅 비용이 더 이상 의미 있게 감축되기 어렵고 MNO(이동통신) 가입자가 감소함과 동시에 이동전화 매출 성장이 둔화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라고 했다.
김 연구원은 또 "누가 경영진으로 오던지 KT의 올해 실적은 불안하다"며 "이통 3사 중 가장 부진한 주가 성과가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결정권자가 없으니 투자도 밀리고 있다. 지난 1분기 박종욱 직무대행 체제로 전환하기 전 혼란스러운 시기에 발주가 끊겨 협력사들이 위기에 직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KT 관계자는 "연초부터 계획된 투자 사업들이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집행되기 시작했다"며 "유·무선 투자 사업들이 빠르게 추진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달 중 주요 협력사 대상으로 KT의 투자 계획을 공유하고, 안전사고 예방을 최우선으로 공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광역본부주관으로 간담회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했다.
지나친 간섭으로 KT의 근간을 흔든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정부는 뒤늦게 해명을 하고 나섰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9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정부가 그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개입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라며 "경영진이 자진해서 좋은 지배구조를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