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쉬다 보니 마음가짐에 변화가 생겼어요.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게 아니라 평생을 할 배우 생활인 만큼, 조급할 필요가 없다는 걸요. 현재 주어진 것을 열심히 하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싶어요.”
또렷한 이목구비에 강렬한 분위기, 중저음의 목소리까지. 언뜻 보면 차가운 인상을 남길 수 있지만 실제로 만나본 진이한은 진중하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매력적인 배우였다. 최근 서울시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진이한은 ‘배우 진이한’과 ‘인간 진이한’, 두 가지 모습을 진솔하게 밝혔다.
“어렸을 때 사실 코미디언이 꿈이었어요. 그만큼 원래 성격은 굉장히 재밌는데, 주변 사람들이 다들 ‘반전 매력’이라고 얘기를 많이 해요. 진지한 것보다 개구쟁이같은 모습이 더 많아서 드라마나 예능 같은 곳에서 제 원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진이한은 25일 종영한 KBS2 월화드라마 ‘오아시스’에서 보안사 준장 출신 정권의 실세 황충성(전노민)의 오른팔 ‘오만옥’ 역할로 활약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이어지는 격변의 한국을 배경으로 세 청춘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그려낸 ‘오아시스’는 시청률 8%를 기록하며 호성적을 거뒀다.
극중 오만옥은 황충성에게 그야말로 ‘충성’을 다짐하는 인물로, 황충성을 따라 안기부 직원까지 됐다가 검찰청 조정관으로 파견된다. ‘오아시스’의 주인공 최철웅(추영우)에 모진 고문까지 하는 ‘사냥개’로 분한 그는 무자비한 성격의 오만옥을 소름끼치게 표현하며 시청자들에게 원성을 사기도 했다.
진이한은 오만옥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냐는 질문에 “어떻게 하면 더 잔인하게 보일 수 있을까 생각했다”며 “감독님을 자주 찾아 뵙고 얘기를 많이 하다보니 점점 캐릭터가 구축됐다”고 답했다.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역할이었어요. 촬영 기간 내내 정말 재밌게 연기했어요, 그저 캐릭터에 단순하게 접근을 하니까, 뭘 해도 다 악역처럼 보였던 것 같아요. 아마도 오만옥 이후로 악역 전문 배우가 되지 않을까요?”
오만옥은 과거 학생 운동을 한 젊은이들을 모두 잡아들이며 안기부의 소임을 다하지만, 결국 평생을 헌신한 황충성에 의해 총을 맞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오아시스’의 시청자들이 원하던 완벽한 사이다 결말. 다만 진이한은 6개월 동안 애정을 갖고 연기한 오만옥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만옥이만 봤을 때는 그저 자기 인생을 위해 열심히 살았던 친구예요. 자기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 것뿐이고, 그때는 그게 정답이라 생각했던 시대라고 생각해요. 물론 주인공들 입장에서는 정말 나쁜 인생을 살았고, 죽어야 하는 게 맞지만요.”
뮤지컬 배우 출신으로 올해 데뷔한 지 19년을 맞은 베테랑 배우인 진이한은 MBC ‘몽땅 내 사랑’(2011), ‘기황후’(2013), ‘개과천선’(2014), tvN ‘마이 시크릿 호텔’(2014), ‘크로스’(2018)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크로스’ 이후 약 5년 동안 안방극장에서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진이한은 집안 사정으로 인해 개인적인 시간을 보냈다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은 괜찮아지셨지만, 아버지가 잠시 아프셨었어요. 아버지를 돌보다 보니 코로나19까지 터지고, 그렇게 시간이 훌쩍 지나가더라고요. 배우로서 작품을 하지 못해 힘든 시기였지만 제 스스로를 돌아보고 충전을 할 수 있는 시기였기에 후회는 하지 않아요. 이제부터 좋은 작품을 계속하고 싶어요.”
오랜만에 현장으로 돌아와 다시 카메라 앞에 선 진이한은 공백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오아시스’에서 완벽한 연기를 선보였다. 실제 진이한의 연기에 100% 몰입한 시청자들은 매 회 오만옥을 향한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다. 다만 진이한은 자신의 연기에 대한 평가를 묻자 “냉정하게 말해 아직 반의 반도 못 왔다”며 겸손한 면모를 드러냈다.
“아마 자기 연기에 100% 만족하는 배우는 없을 것 같아요. 배우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는 책임감이 제 욕심일 수도 있지만, 더 노력하고 열심히하는 수밖에 없어요. 나중에 죽기 전까지도 이런 생각을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