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웃을 날이 올 거다. 내가 있든 없든 분명 한화가 리그 정상에 설 날이 올 거라고 확신한다(Whether I'm here or not, We will smile. And this team, will go on top)."
지난 3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당시 경기 전까지 한화는 6연패에 빠져 있었다. 불펜 보직은 여전히 불분명했고, 타선은 6연패 기간 8득점 빈공에 시달렸다. 리빌딩 3년 차에 맞이한 최악의 상황.
늪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던 한화에 대해 묻자 수베로 감독은 한화의 미래에 대해 "장담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당시 수베로 감독은 "언젠가 웃을 날이 올 거다. 내가 있든 없든 분명 한화가 리그 정상에 설 날이 올 거라고 확신한다"며 "지금은 그날을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고통스러울 거다. 중요한 건 확실한 계획이다. 여러 비난 또한 스포츠의 일부다. 그러나 우선 지금은 계속해서 팀이 계획한 바를 진행해야 한다. 나는 이 팀이 작년보다 좋은 성적을 낼 거라는 확신이 있다"고 자신했다.
1군 감독의 목표는 당연히 팀 성적이다. 선수들과 달리 팀 성적이 곧 '개인 성적'이다. 그리고 성적을 내야 재계약도 할 수 있다. 성적이 부진했다 하더라도 시즌이 한 달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지도자 본인이 "내가 있든 없든"을 언급했다는 건 수베로 감독 본인도 이미 결별을 예상했다는 의미기도 하다.
당시 수베로 감독의 말을 듣고 곧바로 떠오른 일화가 있다.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02년 유시민 작가와 나눈 이야기다. 당시 노 대통령은 "노무현의 시대가 오겠어요?"라고 물었고, 유 작가는 "100% 온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노 대통령의 답은 "그때는 내가 없을 것 같다"였다. 당시 수베로 감독의 말을 듣자마자 노 대통령의 일화가 머리를 스쳐갔다.
야구 기사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신념이 있듯 수베로 감독 역시 자신의 신념이 있었고, 한화 선수단에 그 비전을 담았다.
'한화의 시대'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는 이미 윤곽이 보였다. 한화는 수베로 감독의 경질이 발표난 11일까지 총 6경기에서 5승 1패를 거뒀다. 위닝 시리즈가 두 차례에 최하위 탈출도 성공했다. 이 기간 타선은 폭발했고, 선발은 안정화됐다.
'수베로 호' 한화는 재능의 가치를 알고, 그 재능이 만개할 수 있도록 기다렸다. 수베로 감독이 지난해 부상 후 최대한 콜업을 늦췄던 문동주는 당당히 에이스가 돼 최하위 탈출을 만든 KT 위즈전 승리를 이끌었다. 시범경기 활약에도 콜업을 서두르지 않았던 김서현은 당당히 1군 필승조로 자리 잡았다. 역시 지난해 부상 후 복귀를 늦췄던 노시환은 많은 시행착오 끝에 KBO리그 정상급 타자가 됐다. 그리고 늦게나마 5월 그 빛을 조금씩 보고 있다.
누군가에게 '최하위 감독'으로만 남을 수도 있지만, 수베로 호의 유산은 분명 존재한다. 당장 경질 직전이었던 10일 경기 전에는 노시환에게 김하성이라는 비교 대상을 들어 내야 수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메이저리그(MLB)에서 통할 수 있다는 격려도 남겼다. MLB 선수들을 지켜본 경험이 있고, 젊은 선수들의 눈높이에 맞춰 전할 수 있던 건 수베로 감독이기에 노시환에게 전할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었다.
수베로 감독 개인의 성과는 아닐지 몰라도, 한화는 지난 2년 동안 여러 빛나는 재능들을 갈고 닦았다. 공이 빠른 투수들이 계속 모였고, 이원석과 문현빈 등 젊고 빠른 '툴 플레이어' 야수들도 가능성을 천천히 드러냈다. 보이지 않았고, 수베로 감독 아래에서 그 마지막 한 조각을 채우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한화의 시대'를 위한 준비는 분명 진행되고 있었다.
팀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할 때 이례적인 감독 경질은 한화 선수단에 충격으로 남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화 선수단이 내릴 답은 한 가지다. 떠나는 수베로 감독을 위해서든, 팀을 위해서든, 역시 함께 동고동락했던 최원호 신임 감독을 위해서든, 선수 개인을 위해서든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힘으로 '한화의 시대'를 '100% 오는'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