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우(40·KIA 타이거즈)의 ‘야구 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다. 그의 마흔 살의 봄이 뜨겁다.
올 시즌 최형우는 21일까지 출전한 35경기에서 타율 0.323, 4홈런, 22타점, 출루율 0.421, 장타율 0.484를 기록했다. 팀 내 최고령 타자인 그가 타율과 OPS(출루율과 장타율 합계) 부문에서 1위를 지키고 있다.
클러치 능력이 가장 돋보인다. 최형우는 지난달 21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KIA가 2-4로 지고 있던 9회 말 이승현으로부터 끝내기 3점 홈런을 때려냈다. 이전 14경기에서 4승 10패에 그치며 KBO리그 최하위(10위)에 떨어졌던 KIA는 최형우가 승리를 이끈 삼성전을 기점으로 반등, 이후 11경기에서 9승(2패)을 거두며 중위권으로 도약했다.
롯데 자이언츠가 10연승을 노렸던 지난 3일 홈경기에서도 최형우가 활약했다. 1-0으로 앞선 3회 말,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던 우완 투수 나균안의 포크볼을 공략해 적시 2루타를 치며 10-2 승리를 이끌었다. 올 시즌 최형우는 득점권에서 타율 0.367를 기록했다. 결승타만 3개다. 최형우는 지난 두 시즌 전반기 부진했다. 안구 질환에 시달렸던 2021시즌은 타율 0.203, 2022시즌에는 0.227에 그쳤다.
최형우는 올해 만 40세, 우리 나이로 마흔한 살이다. 배트 스피드가 크게 느려질 시점에 오히려 전성기에 버금가는 타격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여전히 KIA의 4번 타자다.
변화가 있다. 최형우는 지난 시즌(2022) 후반기, 트레이드 마크였던 레그킥(leg-kick)을 없앴다. 이동발(좌타자의 오른발)을 살짝 뗀 뒤 지면에 찍고 타격했다. 파워를 덜 싣더라도 콘택트에 집중하겠다는 의지였다.
올 시즌 초반에는 다시 레그킥을 사용하는 타격을 하고 있다. 주자 상황, 상대 투수의 슬라이드 스텝(퀵모션) 속도에 따라 발 높이에 변화를 줄 때도 있지만, 핵심은 다시 호쾌한 스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소 말을 아끼는 편인 최형우는 그저 “컨디션이 좋은 편이어서 자신 있게 스윙하고 있다"라며 웃었다.
올 시즌 최형우의 퍼포먼스는 마흔 살에도 리그 정상급 기량을 보여준 이대호(41·전 롯데)를 떠올리게 한다. 이대호는 은퇴를 예고하고 치른 2022시즌 타율 0.331을 기록하며 지명타자(DH)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35경기 기준으로는 리그 2위 기록이었던 타율 0.373을 남기기도 했다.
지난겨울 최형우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이)대호 형처럼 은퇴를 예고하고, 빼어난 기록을 내며 마지막을 장식하긴 어려울 거다. 2022시즌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팀에 도움이 될 수 없다면 미련 없이 은퇴하겠다는 의지도 전했다. 최형우는 이대호가 ‘마흔 살 시즌’ 35경기에서 기록한 타율보다는 낮지만, 더 많은 타점과 득점권 타율을 기록했다. 팀 기여도가 결코 이대호에게 밀리지 않는다.
최형우는 지난달 23일 삼성전에서 개인 통산 465번째 2루타를 기록, 이승엽(현 두산 베어스 감독)을 넘고 이 부문 KBO리그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지난 10일 SSG 랜더스전에선 통산 3800루타를 넘어서며, 이 부문 3위에 올라서기도 했다. 22일 현재 1483타점을 기록, 이승엽이 보유한 역대 1위 기록(1498개) 15개 차이로 다가섰다. 그가 가는 길이 곧 KBO리그 역사다.
최형우는 “지난해 KT 위즈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처음으로 아이들(아들·딸)이 야구장에 왔다. 조금 더 야구를 해야 아빠가 그라운드에서 뛰는 모습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흔 살 나이에 뜨거운 시즌을 보내고 있는 그의 원동력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