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종목 선수에게나 그렇겠지만, 항저우 아시안게임(9월 23일~10월 8일) 국가대표 이용현(30·장권전능)과 이용문(28·남권전능·이상 충남체육회)에게 우슈는 인생 그 자체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100일 앞둔 시점, 형제는 현재 충청북도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훈련에 전념하고 있다. 지난 13일 필승관 우슈 훈련장에서 오후 훈련을 마치고 본지와 만난 두 선수는 "막 훈련을 마쳐 모습이 추레한 게 아닐까 모르겠다"며 웃었다.
우슈를 먼저 시작한 건 형 이용현이었다. 그는 5살 때 뇌수막염을 앓았다. 고비는 넘겼으나 잔병치레가 끊이지 않았다. 쿵푸 사범 출신이었던 아버지 이정민 씨가 나섰다. 이용현은 "아버지께서 정말 엄격하게 가르치셨다. 중국요릿집을 하셨는데, '짜장면 한 그릇을 준비하는 동안 기본자세를 유지하기' '냉장고 문 잡고 옆차기' 같은 식으로 기본기를 지도하셨다"고 떠올렸다.
아버지 밑에서 시작한 우슈를 계속하기 위해 이용현은 7살 때 도장에 들어갔다. 동생 이용문도 그때 형을 따랐다. 그는 "형이 체육관을 다니기 시작하니까 나 혼자 집에 있었다. (심심해하니) 아버지가 형을 따라가 보라고 하셔서 졸졸 따라다닌 게 시작이었다"며 웃었다.
지난 제 98회 전국체전 수상 후 함께 촬영한 이용현(왼쪽) 이용문(오른쪽) 형제의 모습. 사진=충남체육회 제공
선수로서 길은 조금 달랐다. 먼저 꽃피운 건 동생이었다. 이용현은 "용문이는 꾸준히 노력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청소년 대표팀에 선발됐다. 반면 난 중학교 때 잠시 운동과 거리를 둔 적도 있다"며 "내가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을 때 동생은 이미 태릉선수촌 생활이 익숙해졌을 시기였다. 태극마크를 달고 동생과 처음으로 선수촌 정문을 지나갈 때가 생각난다. '동생한테 창피하지 않은 형이 됐다'는 생각에 정말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고 돌아봤다.
우슈는 대련을 뜻하는 산타, 그리고 태권도 품새처럼 무술을 표현하는 투로로 나뉜다. '강함'이 중요한 산타와 달리 투로는 아름다움도 필요하다. "투로는 터프한 피겨스케이팅"이라고 표현한 이용현은 "감점 형식으로 선수마다 구성 전략이 다르다. 난이도뿐 아니라 연기도 필요하고 그에 따라 성적이 갈린다"고 설명했다.
지난 3월 열린 우슈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한 이용현(왼쪽)과 이용문. 사진=이용문 제공
두 선수의 캐릭터는 전혀 다르다. 이용문은 형에 대해 "세상에 단 한 사람밖에 없는 우슈 선수다. 형이 짜는 투로에는 기본 틀, 정석이라는 게 없다.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해 주위의 예상을 빗나가게 만든다. 자유롭다"며 "형을 보면서 나도 틀에서 벗어나 보려고 노력하는데 잘 안된다"며 웃었다.
반대로 이용문은 모범생이다. 이용현은 "동생을 지켜보면 내가 잘못한 게 없어도 뭔가를 잘못한 것 같다. 그만큼 훈련 후에도 몸 관리에 철저하고 항상 우슈만 생각한다"고 칭찬했다.
형 이용현이 먼저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우슈 투로 도술·곤술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인천 때는 꿈으로만 꾸던 일이 현실이 돼 마냥 신나서 뛰었다. 우슈 금메달(이하성·장권)이 먼저 나와서 부담도 덜 했다. 지금 다시 보니 내가 잘하긴 했더라"고 미소 지었다.
이용문도 "원래 어릴 때부터 우리 가족의 꿈이 두 사람의 인천 아시안게임 동반 출전이었다. 잘하는 선배들이 정말 많아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이 됐다"고 떠올렸다. 4년 뒤 동생 역시 메달리스트가 됐다. 이용문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권·남곤 부문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이용현(왼쪽)과 이용문 형제. 사진=충남체육회 제공
'국대 형제'의 계기가 된 건 아버지였지만, 형제는 어머니 김민서 씨에게도 한목소리로 감사를 전했다. 어머니는 운동을 계속할 수 있게 해준 최고의 지지자였다. 이용현은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못했는데도 아낌없이 지원해 주셨다. 주변에서 '미래도 없는 운동은 그만 시키고 공부나 기술을 배우게 해라'고 하기도 했다. 아버지조차 흔들리신 적도 있다"며 "어머니는 '아이들이 무조건 인천 아시안게임에 함께 나갈 것'이라며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으셨다. 우리조차 우리를 믿지 않을 때, 어머니만 우리를 끝까지 믿으셨다"고 전했다.
이용현은 "내게 우슈는 평생 완성할 수 없는 무언가"라며 "하면 할수록 부족한 게 보인다. 죽을 때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용문은 "비슷한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그럴 때마다 우슈는 '내 인생'이라고밖에 답할 수 없다"며 "내 인생 전체가 우슈였다. 좀 바보 같을 수도 있지만, 노력했을 때 성취를 얻을 수 있었고, 계속 발전하니 계속 연습하고 싶어졌고, '하면 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아시안게임 첫 동반 출전의 꿈을 이룬 후 9년이 지났다. 다시 한번 함께 태극마크를 단 각오 역시 서로 달랐다. 이용문은 "첫 아시안게임은 설레기보단 두려웠던 기억이 난다. 오히려 이번이 더 여유롭게 느껴진다"고 했다. 반대로 2014년 때는 마냥 신났다는 이용현은 "지금 설렘은 전혀 없고 책임감을 조금 느낀다. 후배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창피하지 않게 하고 와야 한다는 부담감 혹은 욕심도 있다"고 다짐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목표를 묻자 이용문은 "선수라면 당연히 금메달"이라면서도 "그와 별개로 대회를 마친 후 형과 웃으면서 돌아오고 싶다"고 다짐했다. 이용현은 "그동안 동생은 꾸준히 잘해온 선수였기에 내 경쟁상대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올해는 컨디션도 좋고 '경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동생보다 좋은 성적을 내는 게 이번 대회 목표"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