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즐기는 팬이라면 이런 통념에 대해 한 번쯤 들어봤으리라. "어릴 때 변화구 던지지 마라."
많은 야구팬들은 어린 선수들의 변화구 비율이 높은 걸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몸이 덜 영글어진 상태에서 팔 부담이 커져 부상 위험도가 성인보다 더 높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이는 팬들의 '느낌'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전문가 집단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미국 스포츠의학연구소(ASMI)와 메이저리그(MLB) 사무국 또한 투구 가이드라인 '피치 스마트(Pitch Smart)'를 통해 청소년 투수의 변화구를 제한했다. 이에 따르면 사무국은 9세에서 12세 사이 선수는 직구와 체인지업 외 구종 투구를 자제하도록 권장한다. 가이드라인은 이후 18세까지는 직구와 체인지업이 자리잡은 후 커브 등의 브레이킹 볼을 연마하도록 하고, 19세 이후에는 별도의 제한을 두지 않는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 역시 이에 발맞춰 지난 2017년부터 유소년 선수들의 변화구 금지를 추진한 바 있다.
위 내용만 보면 그간 관념적으로 알아 온 '어린 투수가 변화구를 던지는 건 위험하다'는 인식이 맞아 보인다. 어린 선수들이 건강하게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은 분명 훌륭하다. 하지만 이에 앞서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변화구가 정말로 아이들에게 마냥 해로운 존재일까?
변화구가 위험하다는 인식만큼 관련 연구의 역사도 오래 됐다. 앞서 언급한 ASMI는지난 2002년 미국 스포츠 의학 저널을 통해 관련 내용에 대한 첫 연구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특정 구종이 어깨 및 팔꿈치에 통증을 유발하는지를 476명의 9~14세 투수들을 대상으로 한 시즌 간 조사했다.
연구 결과 커브를 던질 때 어깨 통증 위험도가 52%, 그리고 슬라이더를 던질 때 팔꿈치 통증 위험도가 86% 증가했다. 이 나이 때 선수들은 분명 변화구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다만 이와 동시에 투수가 한 시즌 동안 던진 투구 수 역시 팔꿈치 및 어깨 통증에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후 추가로 공개한 연구들은 기존 결과와 다소 상반된 내용들이었다. 우선 2008년 ASMI 연구진은 '유소년 야구공의 생체역학적 비교: 커브볼이 잠재적으로 해로울 수 있는가?'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답은 '그렇지 않다'였다.
총 3가지 구종(패스트볼, 커브, 체인지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팔꿈치와 어깨에 걸리는 부하는 패스트볼에서 가장 크게 나타났다. 부하가 가장 적은 건 체인지업이었다. 커브가 패스트볼보다 위험하다는 명확한 근거는 찾아볼 수 없었다.
2010년 논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해당 연구는 10년간 유소년 481명을 추적해 부상을 정량화했다. 연구는 투구 수 증가, 어린 나이에 커브 던지기, 그리고 포수 겸업이 부상 위험을 높인다는 총 3가지 가설을 세웠다.
연구 결과 부상과 가장 관련 깊은 건 투구 이닝이었다. 1년에 100이닝 이상을 소화한 선수들은 그렇지 않은 선수들보다 3.5배 가량 부상 위험도가 더 높았다. 반면 커브가 유소년 투수의 부상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근거는 이번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2002년 ASMI가 처음으로 세웠던 가설과는 반대 결론이다.
ASMI뿐만 아니라 드라이브 라인 베이스볼 등 다른 기관들의 결론도 비슷하다. 많은 투구 수를 가장 큰 부상 요인으로 꼽고 있다. 또한 구종 가운데 가장 강한 부하가 걸리는 공으로 변화구가 아닌 패스트볼로 꼽았다. 빠르게 던져야 하는 만큼 팔 부하를 피할 수 없는 탓이다. 현대 야구에서 세심한 관리를 받으면서도 토미 존 서저리 등으로 투수들이 이탈하는 것은 점점 빨라지는 구속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연구원들은 여전히 어린 선수가 변화구(커브)를 던지는 데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SMI 소속 글렌 플레이식 박사는 "커브볼이 안전한지 묻는 것은 잘못된 질문일 수 있다. 질문은 다음과 같이 바뀌어야 할 수도 있다. '그걸 과도하게 사용하고 있는가?' 너무 많이 던지는 게 부상으로 이어지고 종종 심각한 부상을 초래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뉴욕 양키스의 건강 및 퍼포먼스 디렉터로 활동 중인 에릭 크레시 역시 "커브가 좋은 아이는 남용될 확률이 높다. 코치가 승리를 위해 그를 계속 던지게 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베이스볼 싱크탱크의 란츠 휠러 대표는 "어린 나이에 커브를 던지는 투수의 가장 큰 문제는 부상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당장의 성공 때문에 강하게 던지는 법(패스트볼 던지는 법)을 배울 시기를 놓치는 것"이라고 칼럼을 통해 밝혔다.
이는 곧 새삼스럽지만, 중요한 사실들을 일깨워 준다. 어린 나이에 많은 공을 던지는 행위가 그 무엇보다 위험하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생각한 만큼 변화구 자체는 그렇게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소년의 변화구 구사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연구의 결과가 주로 커브에 집중됐고 슬라이더 등 다른 구종에 대한 자료는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핵심은 유소년 선수 부상을 방지하려면 '무슨 공을 던지냐'가 아니라 '얼마나 던지냐'에 있다. 결국 지도자가 눈앞의 성공이 아닌 미래를 볼 줄 안다면 변화구 조금 던진다고 큰일 나지 않는다. 변화구는 잘못이 없다. 잘못 활용하는 사람이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