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36·SSG 랜더스)은 지난 2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전 10회 초 무사 만루에서 홈런을 터뜨렸다. 여러모로 유의미한 홈런포였다. 올 시즌 15번째 홈런을 날린 최정은 박동원(LG 트윈스)을 제치고 시즌 첫 홈런 단독 선두에 올랐다.
통산 13호 만루포를 날린 최정은 이범호 KIA 타이거즈 타격 코치(17개)에 이어 이 부문 공동 2위에 올랐다. 개인 통산 홈런(444개)도 이승엽 두산 감독의 역대 최다 기록(467개)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갔다. 통산 1415타점을 올린 최정은 같은 날 1500타점 고지에 오른 KIA 최형우를 향한 전진도 계속했다.
SSG는 이날 승리로 지난 18일 LG 트윈스에 내준 1위를 한 경기만에 되찾았다. 김원형 SSG 감독이 "찬스에서 최정이 스타답게 만루홈런을 쳐줬다. 역시 최정이다"라고 치켜세운 이유다.
이날 홈런은 노림수와 기술이 결합한 결과였다. 11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슬라이더 실투를 놓치지 않았다. 당시 최정은 두산 이영하와 승부에서 볼카운트 1볼-2스트라이크로 밀리고 있었다. "정말 힘들었던 타석"이라고 떠올린 그는 "이영하의 슬라이더가 워낙 좋다. 초구도 슬라이더를 생각했다. 이 정도면 스트라이크겠다 싶어서 방망이를 돌렸는데 크게 빠진 공에 헛스윙했다"며 "그때부터 타격 포인트가 흔들렸다. 그래서 어떤 타이밍으로 쳐야 할지 고민했다. 이러다 삼진을 당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고 떠올렸다.
위기에서도 슬라이더에 대한 조준을 놓지 않았다. 최정은 "'직구는 파울로 만들고 슬라이더를 잡자'고 생각했다. 공을 포수 미트까지 끌고 와 친다는 생각으로 타이밍을 아주 늦게 잡았다"며 "다행히 풀카운트까지 끌고 갔다. 투수가 스트라이크를 넣어야 할 상황이 왔고, 결국 (노림수가) 좋은 타구로 연결된 것 같다"고 했다.
최정은 기록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그는 "겸손을 떠는 게 아니다. 홈런 개수는 정말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매 시즌 목표는 두 자릿수 홈런이다. '올해도 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만 한다. 10개 이후 홈런은 보너스"라며 "어쨌든 팀이 이기는 홈런을 많이 치면 좋겠지만, 의식하진 않고 있다"고 했다. 만루 홈런 역대 2위의 기록도 "어릴 때부터 경기를 많이 나갔고, 만루 상황에도 많이 나섰기 때문일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새 역사를 향해 달려가는 그의 태도는 오히려 가볍고, 유쾌했다. 홈런을 친 후 어떤 생각을 하고 그라운드를 돌았는지 묻자 "지난번 KBS의 지상파 중계 때 (선수 시절 팀 선배였던) 윤희상 해설위원이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내가 거절해서 선배가 난처했다고 하시더라. 오늘도 인터뷰를 요청하셔서 '팀이 이기고 내가 잘한다면 해줄게요'라고 했다. 그라운드를 돌면서 '밤 10시도 넘었고 연장전까지 갔으니 약속한 인터뷰를 못 하려나' 싶었다"며 웃었다.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최정은 '오늘 연장전을 치른 게 맞는지' '(선두 싸움을 하는) LG가 이겼는지'를 되물은 후 "그만큼 오늘 경기에 집중한 게 아니겠나"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올스타전 2차 중간 집계 결과 드림팀 3루수 선두인 것에 대해 "(12개 포지션 중 10개에서 1위를 달리는) 롯데의 일원이 된 느낌이다. 오히려 모든 야수가 롯데 선수인데 나만 (다른 팀 선수로) 3루에 있으면 재밌을 것 같다"고 기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