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생활건강의 대표 럭셔리 브랜드 '더히스토리오브후(이하 후)'가 조심스러운 변화를 시작했다. 오랜 시간 고수해왔던 한자 제품명과 고풍스러운 디자인을 일부 라인에 한해 없앴고, 일시적이기는 하나 모델에도 변주를 줬다. 주요 수출 창구였던 중국 시장이 위축되자 후도 달라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영미권 왕후, 레지나
LG생활건강(LG생건)은 최근 후의 신규 라인인 '로얄 레지나'를 출시했다고 밝혔다. 로얄 레지나는 트리트먼트와 세럼, 크림 등 3개 제품으로 구성됐다.
'레지나'는 유럽이나 영어권 등에서 두루 쓰이는 여자 이름이다. 라틴어로는 여왕과 왕비라는 뜻을 갖고 있다. 가톨릭에서는 천상의 모후로 성모 마리아를 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후가 그동안 아시아 중에서도 한국의 왕후였다면, 로얄 레지나는 영미권의 여왕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뷰티 브랜드가 신규 라인을 선보이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로얄 레지나는 유독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패키지 때문인 것으로 읽힌다. 로얄 레지나는 후가 고수해왔던 한자를 빼고 영어로 제품명을 새겼다. 새하얀 병은 자체로 세련되고 깔끔하다. 특히 LG생건은 로얄 레지나의 세럼과 크림은 리필이 가능한 패키지로 만들었다. 리필 제품을 사용하면 본품을 사용하는 것보다 리페어 세럼은 약 68%, 리차징 크림은 약 85%의 플라스틱 절감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비록 일부 라인에 한정돼 있기는 하지만 로얄 레지나는 그동안 후가 선보였던 패키징을 떠올리면 상당한 변화다. 후는 궁중 문화유산을 접목해 스토리가 있는 화려한 디테일을 자랑하는 용기를 브랜드를 대변하는 상징으로 삼아왔다. 백자 태항아리를 연상케 하는 곡선미와 봉황이나 황제의 옥쇄 문양을 본뜬 금속공예까지 패키지 자체가 예술품 수준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로얄 레지나는 후의 라인 중 하나로 후 전체의 리뉴얼은 아니"라며 "더 젊은 소비자를 끌어안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봐달라"라고 했다.
변화 반드시 필요
후의 이런 패키지는 한국보다는 중국에서 더 반응이 좋았다. 한류가 거센 가운데 전통적인 미를 그대로 얼굴에 바르고 싶어 하는 중국인의 욕망을 잘 읽어낸 덕이었다.
업계는 물론 LG생건은 내부적으로 후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해 LG생건의 영업이익은 40% 이상 떨어졌다. LG생건의 2022년 영업이익은 7111억원으로 전년(1조2896억원) 대비 44.86% 감소했다. LG생건은 지난 2018년 처음 영업이익 1조원의 벽을 넘긴 뒤 이를 4년간 유지해왔으나, 지난해 결국 영업이익이 1조원 밑으로 떨어졌다.
올해 1분기 실적도 좋지 않다. 뷰티사업 부문의 매출은 701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0.3% 증가하는 데 그쳤다. 영업이익은 612억원으로 11.3% 감소했다.
중국 시장의 침체가 부진한 원인이다. LG생건은 1분기에 북미 매출이 21.1% 늘었지만 중국 매출이 14.1% 떨어졌다. 주요 지역별 매출 비중은 중국 11%, 북미 8%, 일본 5% 순이다.
김홍기 LG생활건강 CFO 부사장은 올해 초 정기 주주총회에서 "최근 3년간 중국 시장에서 후의 시장 점유율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었던 만큼 패키지부터 브랜드 리뉴얼을 점차 추진할 계획"이라며 "제품 및 라인업 보강에 집중해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대비 경쟁력을 강화하고, 최고급 라인인 환유처럼 크림 위주의 고가 브랜드를 새롭게 론칭하는 전략을 펼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LG생건은 후 외에도 '숨37'과 '오휘' 등의 프리미엄 브랜드도 장기적인 리브랜딩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숨37은 모델을 수지로 교체하며 보다 젊은 이미지를 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LG생건은 코로나19로 중국 시장 매출이 급감했고 회복은 더디자 영업 전략을 다시 세워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며 "최근 국내 20·30대 소비자들의 씀씀이가 커지고 있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보다 젊은 브랜드 이미지 메이킹에 나설 전망"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