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너마이트 타선'은 모기업 한국화약에 맞춰 한화 이글스 타선이 활약할 때마다 나온 수식어다. 1990년대 초 빙그레 이글스 시절 회자됐다. 역사가 긴 만큼 표현 자체도 진부하다.
무엇보다도 암흑기 한화에 '다이너마이트'는 적합하지 않았다. 빙그레 시절이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둔 1999년, 장타력으로 으뜸이었던 2008년에나 가능한 수식어였다. 이후 한화가 장타력으로 KBO리그 으뜸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간혹 대량 득점에 성공할 때도 이용규·정근우 등 콘택트를 갖춘 테이블 세터가 출루한 후 중심 타자들의 연타가 나왔을 뿐 장타가 핵심이 아니었다.
2023년 한화 타선에서 이전과 다른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화는 지난 21일부터 28일까지 6연승을 거뒀다. 이 기간 총 31점으로 평균 5점 이상을 얻었다. 특히 28일 대전 KT 위즈전에서는 이진영의 투런포, 노시환의 결승포를 앞세워 역전승했다.
눈에 띄는 게 타순 구성이다. 1번 타자로 타율 0.230의 이진영, 2번 타자로 타율 0.248의 김인환을 배치했다. 전통적인 테이블 세터와 거리가 멀다. 그런데 성공했다. 이진영은 삼진이 많지만, 출루율이 0.371에 달한다. 장타율에서 타율을 뺀 순장타율도 0.151을 기록했다. 팀 내에서 채은성(0.159) 바로 다음간다.
지난해부터 4~5번에 배치됐던 김인환은 시즌 초 부진했다. 그러나 2번 타순에서 살아나고 있다. 2번 타순 성적이 타율 0.286 장타율 0.429로 좋다. 무엇보다 6연승 기간 결승타만 세 차례 때려냈다. 두 사람 모두 현재 자리가 '찰떡'이다.
처음부터 '베스트 카드'는 아니었다. 한화는 4월부터 테이블 세터 구성에 골머리를 앓았다. 잘 치던 타자도 상위 타순만 오면 부진했다. 노수광·이원석·정은원 등을 시험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잘 치던 노시환도 2번 타순에 갔더니 무안타로 부진했다. 돌고 돌아 이진영이 테이블 세터에 먼저 안착했다. 최원호 한화 감독은 노시환이 뒤에 있기에 김인환에게 승부구가 들어온다며 그를 2번에 배치했다. 좋은 성과를 본 만큼 바꾸지 않기로 했다.
여기에 마지막 조각이 채워졌다. 대체 외국인 타자로 27일 대전 KT전에서 KBO리그에 데뷔한 닉 윌리엄스는 첫 경기에서 3타수 무안타 1타점에 그쳤다. 그러나 범타로 그친 타구 두 개가 모두 150㎞/h 이상의 강한 타구(최고 161.1㎞/h)였다. 무엇보다 상대가 사이드암스로에다 리그 최고 체인지업을 던지는 고영표였다. 해외 리그에서 좀처럼 만나볼 수 없는 상대였는데 정타를 쳤다. 윌리엄스 스스로도 "결과적으로 안타는 못 만들었지만, 충분히 좋은 타구였다. 자신감을 채웠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그리고 28일 바로 장타를 2개나 때려냈다. 첫 안타는 3루수 황재균 글러브를 맞고 뒤로 빠졌을 때 빠르게 2루를 노려 만들었다. 두 번째 타석에는 타구 속도 156.9㎞/h의 타구로 우중간을 갈라 2루타를 더했다. 최원호 감독이 채은성의 앞에서 윌리엄스가 '우산 효과'를 얻길 기대했는데, 결과적으로 성공한 모양새다.
노시환은 28일 경기 후 먼저 '다이너마이트'라는 키워드를 꺼냈다. 그는 "윌리엄스가 합류하면서 다이너마이트 타선이라고 말할 수 있는 느낌을 받았다. 상대 투수들이 더 압박을 받는 것 같다"고 했다. 6연승을 달렸지만, 도화선의 불은 이제 막 붙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