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예 해방의 아버지’ 에이브러험 링컨 미국 제16대 대통령은 독특한 이력이 있다. 바로 미국 레슬링 협회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것이다.
링컨과 레슬링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그는 레슬링 선수 출신이다. 심지어 아주 잘했다. 오늘날이었다면 헐크 호건이나 더 락,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 존 시나 같은 슈퍼스타가 되지 않았을까. 1m93㎝나 되는 거구였으니 어쩌면 언더테이커 같은 선수가 됐을지도 모른다.
링컨은 1809년 2월 19일 미국 중부 지방인 켄터키주 하딘 카운티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숲을 일구어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매우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었다. 생활이 어려워 이릴 적부터 육체노동을 많이 했다. 그 덕분에 힘이 장사였다.
링컨은 가정형편 탓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22세가 되어 가족을 떠나야 했던 링컨이 할 수 있는 일은 짐을 나르는 등의 단순노동이 대부분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닥치는 대로 했다.
그때 링컨이 접한 직업 중 하나가 바로 레슬링이었다. 1800년대 초반 레슬링은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공터나 술집 앞 맨바닥에서 구경꾼들이 둘러싼 상황에서 경기가 펼쳐졌다.
지금같은 엄격한 룰은 없었다. 상대를 붙잡고 넘어뜨리는 것을 넘어 주먹이나 발길질도 허용됐다. 감정이 달아오르면 무기도 사용돼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당시 영국이나 아일랜드에서 온 이민자들 사이에선 의견충돌이 생길 경우 레슬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전통이 있었다. 주로 노동자 계층에서 레슬링은 큰 인기를 누렸다.
키가 큰 데다 온갖 육체노동으로 단련돼 있던 링컨은 당시 레슬링 최강자였다. 특히 ‘칼라 앤드 엘보(Collar-And-Elbow) 레슬링’에 강했다고 한다. 칼라 앤드 엘보는 서로 상대의 팔과 목덜미를 잡은 채 힘과 기술을 겨루는 방식의 레슬링이다.
링컨은 강력한 팔힘으로 상대를 제압한 뒤 두 손으로 상대 목을 잡고 들어올려 내리꽂는 기술을 잘 썼다고 한다. 오늘날 프로레슬링에 비유하면 언더테이커가 잘 쓰는 ‘초크 슬램’과 비슷하다. 사전에 약속된 동작을 쓰는 오늘날 프로레슬링과 달리 실전에서 이런 기술을 쓰기란 쉽지 않다. 링컨의 힘이 그만큼 압도적이었다는 뜻이다.
레슬링은 링컨의 인생을 바꿨다. 링컨은 선수로 활동한 12년간 300경기 넘게 치르면서 단 1패만 당했다고 한다. 전적에 대한 분명한 근거는 없지만 레슬링 선수로서 강했던 것은 여러 문헌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링컨이 1830년 자신이 살던 일리노이주 마을에 찾아온 건달을 레슬링으로 제압해 몰아낸 스토리도 유명하다. 1831년 루이지애나주 챔피언이었던 링컨이 아메리칸 원주민들과 전쟁을 앞두고 레슬링을 통해 장교가 됐다는 기록도 있다.
링컨이 훗날 변호사를 거쳐 정치인이 됐을 때도 레슬링 경력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선거에 나섰을 때 상대 후보는 ‘길거리에서 쌈박질이나 하던 젊은이’라며 링컨을 비하했다. 하지만 정치인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인 뒤에는 오히려 레슬러의 강인한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웠다고 한다.
링컨의 파이터 이미지는 오늘날 대중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의 가상 역사 판타지 소설인 ‘에이브러험 링컨 : 뱀파이어 헌터’에선 링컨이 밤마다 뱀파이어로부터 인류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냥꾼으로 등장한다. 이 소설은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고 나중에 드라마로도 제작됐다.
심지어 주인공 링컨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온갖 육체노동을 한다는 스토리도 비슷하다. 특히 링컨이 뱀파이어를 죽일 때 도끼를 사용한다는 설정은 그가 어릴 적부터 도끼질을 잘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