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수많은 인터뷰어들 가운데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가장 가슴에 와닿게 정리하는 사람은 바로 독일 출신의 영화음악가 한스 짐머이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란 영화에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한 음절만 들어도 이게 엔니오의 음악인지 아닌지 사람들은 금방 알아 챕니다. 그만큼 그의 음악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스며들어 있죠.” 그는 또 이렇게 덧붙인다. “엔니오의 영화음악은 우리들 인생의 OST이죠.”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원’(이하 미션 임파서블7) 개봉 홍수 속에 서울 일부 극장에서 조용히 상영중인 다큐멘터리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이하 엔니오)가 사람들 사이에서 은근한 파문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스테디 셀러’를 넘어서서 예술영화, 특히 다큐로서 흥행에 크게 성공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일 개봉한 ‘엔니오’는 19일까지 2만여명을 동원했다. ‘미션 임파서블7’에 딱 1/100 수준이다.
하지만 ‘미션 임파서블7’ 전국 스크린 수가 현재 2000개가 넘고 ‘엔니오’가 20개가 채 안된다는 점, 그것도 하루 1회 상영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다큐의 흥행세가 결코 만만한 수준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런 추세라면 예술영화 중 ‘대박 흥행’으로 손꼽히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기록(15만 8484명)에 다가설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단 개봉 스크린이 계속 확대된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엔니오’ 인기의 동력은 일단 지식인 사회다. ‘엔니오’의 음악은 꽤 대중적이지만 엔니오 모리꼬네 자체에 대한 관심은 그리 넓지 않다. 엔니오의 생, 그의 음악적 삶을 조명하는 내용은, 이른바 교양인들의 관심 영역일 수밖에 없다. 현재 이 영화의 주관객층은 영화 매니아, 지식인 계층인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17개 예술영화관 외에 전국에서는 유일하게 경기도 파주 헤이리 시네마 단 한 곳에서만 상영중인 바, 이 극장의 매니저 M씨는 ‘엔니오’ 때문에 “극장에 사람들이 늘었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다. 이들 예술영화관에는 유명 감독과 영화인, 뮤지션, 배우들이 조용히 다녀 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내용에 대한 입소문도 계속 퍼져 나가고 있다. 영화 중간, 롤랑 조페의 작품 ‘미션’이 언급되고 관련 OST가 만들어지는 과정, 음악의 선율이 나올 때 관객들 거의 전부가 울음바다가 된다는 얘기마저 돈다. 이런 소문이 나면 관객들 중 많은 수가 일단 울 준비를 하고 극장에 들어가게 되며, 이런 분위기가 알려지는 영화에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몰리는 법이다. ‘미션’은 1700년대 브라질 포르투갈 식민지의 한 원주민 마을을 지키려는 신부와 수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그린 내용이다. 1986년 개봉됐던 작품으로 롤랑 조페의 연출, 제레미 아이언스, 로버트 드 니로오, 리암 니슨의 연기로도 유명했지만 뭐니뭐니해도 엔니오 모리꼬네가 구축한 음악의 세계, 플룻과 오보에 같은 목관악기의 선율이 전세계의 심금을 울렸던 작품이다.
엔니오는 이번 다큐에서 ‘미션’의 음악을 만들기 직전의 상황에 대해 정통 클래식 업계의 따돌림에 지쳐 더 이상 영화음악을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했을 때였음을 밝히고 있다. 그에게 영화 ‘미션’은 음악 인생의 엄청난 분기점이었는데 정작 이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은 사람들 또한 인생이 큰 전환점을 간접적이나마 경험한 셈이 됐다.
우리사회에 만연된 진영논리의 정쟁과 갈등, 자연재해와 인재 등등으로 사람들의 심사가 편치 않다는 점도 이 영화에 대한 관심과 갈망을 높이는 요인이 될 것으로 점쳐진다. 세상사가 불편하고 피곤할 때 음악이 어떤 역할을 하고, 예술이 무슨 일을 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예술가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 가를 역설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것은 단순히 음악이 주는 아름다운 선율, 그 위로의 느낌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엔 일정한 반성의 사유가 담겨져 있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평생의 음악 작업을 통해 인간 삶이 지녀야 할 보편적 가치를 가르쳐 준 셈이다. ‘엔니오’의 인기는 지금 우리사회가 지향해야 할 조용한 성장, 내면의 성숙을 의미심장하게 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