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은 있는데 더빙이 없다. 넷플릭스도 디즈니+도 최근 들어 공개하는 오리지널 대작들엔 한국어 더빙 서비스를 하지 않고 있다. 자막을 읽기 어려운 소비자들은 사실상 OTT의 주력 오리지널 콘텐츠를 시청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수요 적은 한국어 더빙, 일본과 사정 달라
자막, 더빙은 언어가 다른 콘텐츠를 시청하는 대표적인 방식이다.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구독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최근 OTT들은 외국 콘텐츠뿐만 아니라 국내 콘텐츠에도 한국어 자막 서비스를 제공하며 시청의 용이함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더빙은 사정이 다르다. 늘어가는 한국어 자막 서비스와 달리 한국어 더빙은 좀처럼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어셔가의 몰락’을 비롯해 ‘원피스’ 실사판 등 넷플릭스가 근래에 기대작으로 내놓은 외국 콘텐츠들도 마찬가지다. 거의 모든 콘텐츠에서 일본어 더빙을 볼 수 있는 것과 비교된다. 특히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 이후 전 세계에서 각광받고 있는 K콘텐츠와 한국을 주요한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음을 여러 차례 강조했기에 한국어 더빙 서비스에 박한 상황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디즈니+도 이미 더빙 작업이 완료돼 있는 상태로 들어오는 극장 개봉 애니메이션 외에 몇몇 콘텐츠를 제외하면 한국어 더빙을 찾기 어렵다. 외국어에 능통하거나 자막을 보는 데 불편함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상대적으로 외국어로 된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수요의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글자에 한자가 많이 들어가 가독성이 떨어지고 자막으로 자막으로 썼을 때 지나치게 길어지는 경우가 많은 일본의 경우 더빙을 선호하는 시청자가 많다. 애니메이션의 발달로 성우 시장도 크기 때문에 더빙도 발달돼 있다. 반면 한국은 더빙보다 자막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고 성우 시장도 큰 편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넷플릭스든 디즈니+든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이기에 비교적 수요가 적은 한국어 더빙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수요보다 소외되는 시청자 고려하는 자세 필요”
OTT가 작품 시청의 주요한 툴로 자리하고 있는 만큼 한국어 더빙을 반드시 시장 논리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자막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나 저시력장애인, 길고 빠르게 넘어가는 자막을 한눈에 보고 이해하기 어려운 어린이와 노년층의 콘텐츠 접근성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국경을 넘어 콘텐츠를 전달하겠다는 넷플릭스, 디즈니+ 등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들의 가치관과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오디오 화면 해설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를 인정받아 국회에서 넷플릭스가 배리어프리 콘텐츠를 제공하는 대표적 OTT로 꼽히기도 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는 한국어 콘텐츠에 한정된 경우가 많다. 한국어 더빙 콘텐츠가 전체의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넷플릭스 측은 “전체 콘텐츠 및 비율 수치를 밝히고 있지 않다”고 말을 아꼈다. 또 외국어 콘텐츠의 경우 한국어 더빙이 거의 제공되지 않는 것 같다는 지적에는 “넷플릭스가 사오는 콘텐츠는 넷플릭스 제작이 아니기 때문에 콘텐츠마다 상황이 다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오디오 화면 해설 서비스를 제공하려 하고 있다. 노력하고 있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디즈니+ 측 역시 한국어 더빙을 제공하는 콘텐츠의 수와 비율을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한국어 더빙을 제공하는 것의 유무는 타이틀마다 다르다는 설명을 내놨다.
국회에서는 이와 관련해 법제화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 등 11인은 지난해 6월 지상파·종편 사업자는 외국 수입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편성할 때 시청자가 한국어 자막과 한국어 더빙을 선택해 시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더빙은 콘텐츠에 대한 시청자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며 글로벌 트렌드”라고 지적한 뒤 “OTT들이 한국어 더빙을 조금씩 시도하고 있어 과거보다 익숙해지고 있지만 한국어 더빙이 확대돼야 할 필요성이 있다. 한국어 더빙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이어 “수요적 측면이 아니라 소외시키지 않으려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