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독친’에서 혜영(장서희)은 ‘딸 바보’다. 모범적이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딸 유리(강안나). 혜영은 유리가 이 다음에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고, 그러기 위해 공부에 매진해야 한다고 믿는다.
어느 날 혜영은 딸에게 꽁치와 우유가 머리에 좋다며 먹기를 권하는데, 사실 유리에겐 알러지가 있는 식품들이다. 딸을 사랑하지만 알러지가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하는 모순. 혜영의 사랑은 어딘가 방향이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독친’은 독이 되는 줄도 모르고 지독한 사랑을 주는 엄마 혜영이 딸 유리의 죽음을 추적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런 영화다. 독친이란 ‘자식에게 독이 되는 부모’라는 뜻으로, 국내에선 생소한 단어다. 옆나라 일본에서는 널리 쓰이고 있다고 한다. 동아시아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간섭, 집착은 뭐 굳이 더 말 안 해도 유명하다.
영화 관련 인터뷰 자리에서 어떤 기자가 “어떻게 엄마가 자식이 어떤 알러지가 있는 줄도 모르느냐”고 하는 말을 듣고 번뜩 어떤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지난 추석에도 손에 감을 들려 보냈다는 것을. 감을 못 먹는다는 걸 거의 40년째 이야기하고 있는 데도 말이다.
흔히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무조건적이라고 하지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건 오히려 자식 쪽이다. 세상의 규칙이나 기준 같은 것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가 어떻게 생겼든, 어떤 직업을 가졌든, 집안일을 얼마나 잘하든 관계없이 부모에게 사랑을 준다.
부모의 사랑은 다르다. 무척 조건적이다. 사회의 규범을 아이에게 가르쳐야 하는 부모의 입장상 그들의 사랑은 늘 이런 식으로 표출된다. “청소 잘해서 너무 예뻐”, “공부 잘해서 대견해”, “친구들하고 사이좋게 지내야 착한 아이지” 등등등. 예쁘고 대견하고 착하다고 하는 앞에는 자연스럽게 어떠한 조건이 붙는다.
‘독친’은 자식에게 독이 되는 사랑을 주는 부모의 이야기이자, 한편으론 그런 부모에게도 사랑을 주고 싶어하는 아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유리가 자신을 감정적으로 너무 괴롭게 몰아붙인 엄마를 떠올리며 “나는 엄마의 엄마가 되고 싶어. 사랑을 주는 법을 알려주고 싶어”라고 하는 부분은 많은 관객들이 울컥하는 장면이다. 유리가 엄마 혜영에게 받고 싶었던 사랑이란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지 않은 그냥 순수한 무엇이었을 것이다.
추석 때 받아온 감은 아직도 냉장고 안에 있다. 엄마가 좋아하는 딱딱한 단감이다. “나 감 안 먹는다니까”라고 하자 엄마는 “홍시가 아니라 먹을 만할 거야”라고 했다. 오히려 홍시는 가끔 먹는데…. 못 먹는 감이 냉장고에서 죄책감으로 썩어간다. 사랑과 관심이란 무엇일까. 어쩌면 이렇게 제각기도 모양이 다를까. 지난 1개월 여 동안 그 감을 보며 이런 생각을 몇 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