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스포츠에서 ‘월드클래스’로 불리는 한국 선수가 있다. 내로라 하는 국제 대회에서 한국 선수와 호흡을 맞춰 뛰어난 성적을 거둔 함혜빈(30)이다.
함혜빈은 한국 댄스스포츠 라틴 부문(차차·룸바·쌈바·파소도블레·자이브) 최강자다. 지난 5월 파트너인 김민제와 함께 나선 블랙풀댄스페스티벌에서 한국인 최초로 라틴 부문 준결승(상위 12개 팀)에 진출했다. 한국인과 외국인 선수가 조를 이뤄 준결승에 오른 적은 있지만, 한국 선수로 조를 이뤄 이 정도의 성과를 낸 건 함혜빈-김민제가 처음이다.
블랙풀댄스페스티벌은 1920년 영국의 작은 휴양 도시 블랙풀에서 시작돼 제2차 세계대전 중 5년간을 제외하고는 매년 열렸다. 가장 오랜 전통과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댄스스포츠 대회 중 하나로, 댄서들에게는 꿈의 무대다.
함혜빈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아시아권 선수들은 보통 외국인 파트너와 대회에 나섰다. 둘 다 아시아인인데 이런 성과를 낸 건 엄청난 일”이라며 뿌듯해했다.
댄스스포츠는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선수들의 강세가 뚜렷하다. 아시아 선수들에게는 벽이 있는 종목으로 여겨졌다. 함혜빈은 “러시아 선수들도 신체조건이나 라인, 비율 등이 이미 갖춰져 있다. 아무리 테크닉이 좋아도 아시아인들에게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성과를 내려면)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투자도 많이 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댄스스포츠를 시작한 함혜빈은 지난 2011년부터 지금의 파트너인 김민제와 호흡을 맞췄다. 김민제의 병역 문제 때문에 공백도 있었지만, 경험이 쌓이고 호흡이 무르익으면서 둘은 ‘월드클래스’로 발돋움했다.
함혜빈과 김민제는 오랜 연인 관계다. 서로의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다. 함혜빈은 “(연인 관계가 기량에 끼치는 영향이) 솔직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아무래도 감정이나 표현이 보기에 엄청 중요하다. 사귀지 않는 커플들보다 조금 더 표현이 자연스럽다”며 “외국 선수들도 파트너와 거의 다 교제한다. 한국 선수들도 반 이상이 교제하면서 파트너를 한다”고 전했다.
잘 나가는 함혜빈도 고민이 있다. 그는 “우리가 잘하고 왔지만, 뒤를 이어줄 아마추어 선수가 많이 없다. 그런 게 안타깝다”고 했다. 국내에서 댄스스포츠는 인기 종목이 아니다. 라틴, 모던 부문(왈츠·비엔나 왈츠·탱고·퀵 스텝·슬로 폭스트롯)을 합친 한국 엘리트 선수 수는 300명 내외.
한국 댄스스포츠가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이어가려면 결국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야 한다. 함혜빈은 “댄스스포츠는 유산소와 무산소 운동이 같이 된다. 어떤 동작을 할 때는 근력을 많이 사용해야 하고 어떤 동작을 할 때는 유산소가 많이 활용된다. 종목과 음악도 다양하다. 여러 연령층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며 “동호회를 보면 (댄스스포츠를 하다가) 만나서 결혼하는 분들이 정말 많다. 이것도 매력이 될 것 같다”고 어필했다.
끝으로 그는 “댄스스포츠를 배우려면 학원에 가야 하는데, (앞으로) 학교에서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학부모님들이 댄스스포츠를 보고 (여자가) 남자와 손을 잡고 건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다. 하지만 배워보면 운동도 많이 되고 사회성도 길러진다. 이성에 대한 거부감도 많이 없어진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