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이제 너희들은 내 손에 다 죽었어' 라이벌과 승부를 앞둔 전날 밤 칼을 갈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 독자는 손을 들어보기 바란다. 막상 다음날 결과는 어떠했는가? 상대를 늘씬하게 패주었는가? 진짜로 그랬다면 기량이 빼어난 골퍼가 틀림 없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습을 하는 그런 골퍼 말이다.
웬걸! 막상 라운드 당일에는 이상하게 안 풀려서 진땀을 뺐다고? 십중팔구 그랬을 것이다. 벼락 연습으로 재미를 보았다는 골퍼는 드물다. 그럴 수 밖에 없다.
8년 전 일이다. 뱁새 김용준 프로는 마흔 살을 훌쩍 넘은 나이에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 선발전을 도전했다. 두 번 떨어지고 세 번째에 가까스로 통과한 것은 애독자라면 이미 다 아는 이야기이다.
그 세 번째 도전을 할 때인 지난 2015년 10월 마지막 날이었다. 그 때는 아직 프로가 아닌 '뱁새 김씨'는 이제 하루만 잘 치면 프로가 되는 단계까지 올라왔다.
예선전 1라운드와 2라운드를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했다. 본선 첫날도 강풍을 이기고 선전했다. 얼마나 바람이 강했는지 뱁새가 7오버파나 쳤는데도 같은 조에서 21등으로 끝낼 수 있었다. 45등까지가 합격인데 말이다. 본선 마지막 날만 잘 치면 되는 상황. 뱁새는 푹 자고 잘 먹고 발걸음도 가볍게 대회장으로 나섰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어깨에 바위덩어리를 하나 올려놓은 것 같았다. 전날 밤 잠을 거의 자지 못한 탓도 있었다. 그런데 몸이 무거운 데는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전날 시합을 마친 뱁새는 저녁을 먹고 드라이빙 레인지를 찾았다. 몇 가지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등수는 제법 좋았지만 맞바람에 고전을 하고 나니 아쉬웠다. 드라이버 티샷을 낮게 보내는 연습을 하고 싶었다. 나름대로 잘 한다고 자부하던 펀치샷 감각도 더 깨우고.
뱁새는 그날 저녁 90분간이나 연습을 했다. 그것도 파워 게임만. 얼마나 공이 시원하게 뻗어나가던지! 뱁새 입꼬리는 저절로 올라갔다. 신이 나서 강풍 속에서 시합을 치르느라 탈진한 것도 잊고 공을 치고 또 쳤다. 한 달 넘게 혼자서 대회장 부근에 숙소를 잡고 칼을 가느라 쌓인 피로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자신감에 한껏 부푼 뱁새는 숙소로 돌아왔다. 그 때 뱁새가 한 생각이 바로 '드디어 나도 프로 골퍼가 되는구나!'였다.
당시 뱁새 김씨는 스포츠 생리학은 커녕 운동의 기본도 모르고 있었다.
어떤 '모지리'가 중요한 시합 전날 그렇게 심하게 연습을 한다는 말인가! 그것도 밤에 말이다. 몸을 많이 움직이면 피로 물질이 나오는 것은 한참 뒤에 알게 되었다. 운동을 하면 호르몬인 에피네필렌 따위가 나온다. 당장은 피로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호르몬이다. 이걸 아드레날린이라고도 부른다. 몸이 피로 호르몬을 분비하면 지치거나 아픈 것을 잘 느끼지 못한다. 축구 선수가 세게 걷어차이고도 멀쩡하게 일어나서 뛰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심하게 다쳤을 것 같은데 아무렇지 않게 경기를 계속 하는 경우 말이다.
그런데 팔팔하던 그 선수가 경기를 마친 다음에 병원에 입원을 한다니? 꾀병 아닐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이것이 바로 피로 호르몬이 만드는 마법이다. 피로 호르몬 덕에 당장은 느끼지 못한 피로나 고통은 그 다음날 찾아온다. 가끔은 다음 다음날 몰아치기도 하고. 이른바 '지연 통증'이다. 산에 다녀온 지 하루나 이틀 뒤에 심한 근육통을 느끼는 것이 대표적이다.
사진=게티이미지 프로 선발전 본선 마지막 날 겪은 심한 근육통과 피로도 그런 것이었다. 막바지에는 한 달 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같이 일어나 해가 떨어질 때까지 연습을 했으니! 뱁새가 무쇠도 아니고 견딜 재간이 있었겠는가? 돌이켜 보면 뱁새는 이미 심한 근육통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사나흘 운동을 하면 하루나 이틀은 푹 쉬어야 근육에 쌓인 피로를 걷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뱁새가 알 턱이 있었겠는가? 스윙을 몸에 각인시켜야 한다는 무식한 생각만 했을 뿐.
본선 마지막 날 뱁새는 제 기량을 하나도 발휘하지 못했다. 드라이버 티샷은 비거리가 크게 줄었다. 맞바람에 어쩔 수 없이 잡아야 하는 롱 아이언도 무거워서 도무지 휘두를 수가 없었고. 롱 아이언은 긴 아이언을 말한다. 3~5번 정도를 롱 아이언이라고 부른다. '6번도 롱 아이언이라고 느낀다면 아직 하수'라는 선배 프로 최병복의 말에 뱁새도 언제부터인가는 5번까지만 롱 아이언으로 친다.
다시 선발전 본선 마지막 날로 돌아가자. 내기 골프로 잔뼈가 굵은 뱁새가 두어 클럽 길게 잡고 겨우 겨우 경기를 풀어간 것은 기적이었다. 초속 10m 안팎은 되었을 강풍에 청년들도 고전한 덕을 보기도 했고. 그렇게 뱁새는 턱걸이로 선발전을 통과했다.
그렇다. 아무리 마음이 급하다고 해도 전날 밤에는 연습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차라리 라운드 당일 새벽에 일찍 가서 몸을 푸는 것이 지혜롭다. 라운드 직전에 드라이빙 레인지에 가도 되냐고? 적어도 전날 밤에 무리하는 것 보다는 백 배 낫다는 이야기이다. 벼락 공부는 몰라도 벼락 연습은 '별무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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