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둥’ 김민재(27·바이에른 뮌헨)이 지난 시즌 이탈리아에서 보여준 활약상이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 그는 최근 이탈리아축구선수협회(AIC)가 선정한 올해의 팀에 포함, 당당히 베스트 11 중 한 자리를 꿰찼다.
김민재는 5일(한국시간) AIC의 시상식인 ‘그란 갈라 델 칼치오’에서 올해의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다. 이 시상식에선 ▶시즌 베스트11 ▶올해의 팀 ▶올해의 감독 ▶올해의 선수 등 다양한 부문의 주인공을 발표한다. 사무국 주최로 진행되는 시상식과 달리, 시즌 뒤에 열리는 것이 차이점이다.
김민재는 4-3-3 전형의 중앙 수비수 자리를 꿰찼다. 그는 테오 에르난데스(AC 밀란) 알렉산드로 바스토니(인터 밀란) 지오반니 디 로렌초(SSC 나폴리)와 백4를 구성했다. 마이크 메냥(밀란)이 골키퍼 자리를 차지했고, 중원은 스타니슬라프 로봇카(나폴리) 하칸 찰하놀루, 니콜로 바렐라(이상 인터 밀란)로 구성됐다. 공격진은 흐비차 크바라츠헬리아, 빅터 오시멘(이상 나폴리) 하파엘 레앙(밀란)이었다.
김민재는 이번 수상으로 2022~23시즌 나폴리에서 보여준 활약상에 화려한 이력을 한 줄 추가했다.
지난 2022년 7월 튀르키예 페네르바체를 떠나 세리에 A 나폴리 유니폼을 입은 김민재는 생애 처음으로 유럽 5대 리그(잉글랜드·스페인·독일·이탈리아·프랑스) 무대에 도전했다. 입단 당시 저렴한 몸값(1805만 유로·257억원)과, 다소 변방인 튀르키예 리그에서 합류한 탓에 현지 팬들의 민심은 좋지 못했다. 특히 칼리두 쿨리발리의 대체 자원으로 영입된 만큼 김민재의 합류에 의심을 가진 여론이 많았다. 영입 당시 현지 팬들은 담배 브랜드인 ‘KIM’을 인용, “KIM, 세 갑에 10유로(약 1만4000원)”이라는 냉소 섞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민재가 의심을 환호로 바꾸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입단 2달 만에 세리에 A 9월의 선수상을 품었고, 굳건한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김민재는 리그 38경기 중 35경기 출전, 2골 2도움을 올렸다. 축구 통계 매체 트랜스퍼마르크트에 따르면 김민재는 팀 내 공식전 출전시간 4위를 기록했다. 대체 불가능한 자원 중 하나였다.
단단하게 후방을 지킨 나폴리는 순항했다. 팀은 사상 처음으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8강 무대를 밟았다. 비록 UCL 도전은 8강에서 멈췄지만, 김민재는 대회 기간 단 한 차례도 드리블 돌파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어 33년 만의 스쿠데토(세리에 A 우승 트로피)를 품었다. 김민재는 등번호 3번을 달고 구단의 통산 3번째 스쿠데토와 함께 웃었다. 세리에 A 사무국이 선정한 2022~23 최우수 수비수상도 그의 몫이었다. 그는 에르난데스, 디 로렌초와 함께 경합을 벌였는데 트로피는 김민재에게 향했다. 지난 6월 기초군사훈련을 위해 입국했을 때, 그의 손에는 이탈리아 리그 최고의 수비수라는 트로피가 들려져 있었다. 사무국 선정 시즌 베스트 11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리며 활약을 인정받았다.
성공적인 세리에 A 데뷔 시즌을 마친 김민재는 또 1년 만에 ‘스텝업’을 이뤘다. 2023~24시즌을 앞두고 독일의 거함 뮌헨 유니폼을 입으며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이다.
뮌헨은 지난 7월 19일 김민재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뮌헨은 김민재와 2028년 6월 30일까지 장기 계약을 맺었고,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등번호 3번을 줬다.
김민재가 등번호 3을 달자, 독일 현지 매체 역시 큰 관심을 보였다. 당시 독일 매체 키커는 “김민재는 뮌헨에서 등번호 3을 단다. 이는 그가 뮌헨 수비수로서 큰 발자취를 남기게 될 것을 의미”라며 “과거 폴 브라이트너(71·독일) 빅상트 리자라쥐(53·프랑스) 페레이라 루시우(45·브라질)와 같은 뮌헨의 전설들은 이 등번호를 달고 활약했다”라고 조명했다.
김민재는 기초군사훈련 탓에 프리시즌을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했지만, 라이프치히와의 슈퍼컵에서 교체 출전하며 데뷔전을 치렀다. 비록 0-3으로 져 우승컵을 내줬지만, 나폴리에서와 마찬가지로 빠르게 주전 자리를 확보했다.
애초 분데스리가 사무국은 김민재가 마테이스 데 리흐트와 주전 수비수로 활약할 것으로 전망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데 리흐트는 부상으로 자리를 비웠고, 다요 우파메카노와 함께 합을 맞추는 시간이 늘었다.
문제는 뮌헨의 수비진 뎁스(선수층)였다. 뮌헨이 이번여름 김민재·콘라드 라이머·해리 케인 등 포지션을 고루 보강할 때, 수비 자원인 뱅자맹 파바르(인터 밀란) 요시프 스타니시치(임대·레버쿠젠) 뤼카 에르난데스(파리 생제르맹)가 모두 팀을 떠났다.
지난 10월에는 우파메카노마저 부상으로 쓰러지자, 자연스럽게 김민재의 출전 시간이 늘었다. 투헬 감독은 미드필더 레온 고레츠카를 중앙 수비수로 기용하는 등 고육지책을 썼지만, 김민재에게 주어진 휴식은 적었다.
‘괴물’이라는 김민재도 연이은 일정 탓에 지친 기색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에 독일의 전설 로타어 마테우스는 지난 10월 “김민재는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라며 “선수를 비난하려는 거는 아니지만, 이탈리아에서의 명성을 생각했을 때 내가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다. 분데스리가에 먼저 익숙해져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언론의 혹평도 이어졌다. 지난달 독일 매체 키커는 2023~24시즌 분데스리가 이적생들의 평점을 공개했는데, 김민재에게 단 6점을 줬다.
케인이 10점 만점, 로테이션 미드필더 라이머가 6점을 기록했다. 당시 김민재는 리그 전 경기 선발 출전한 시점이었다.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한 건 첫 2경기뿐이다. 소식을 접한 팬들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김민재는 97%의 경기를 뛰고 있는데 6점?’ ‘3골을 넣은 니클라스 퓔크루크(도르르트문트)가 7점인데, 김민재가 6점이라니’라며 의아함을 드러냈다.
하지만 축구계 관계자들은 김민재의 활약에 힘을 실어줬다. 먼저 크리스토프 프로인트 뮌헨 단장은 11월 현지 매체와 인터뷰에서 “(김민재는) 매 경기 90분을 뛰고 있다. 집중력 부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그를 감쌌다. 이어 빌트와의 인터뷰에선 “나는 김민재의 열렬한 팬이다. 그는 팀에 훌륭한 정신력을 불어넣어 줬다”라고 평했다.
그사이 기념비적인 업적도 세웠다. 바로 지난 10월 말일 열린 2023 발롱도르에서다. 김민재는 최종 30인 후보 중 22위를 기록하며 수비수 중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프랑스 매체 프랑스 풋볼이 주관하는 발롱도르 시상식은 1956년 처음으로 수상자를 선정했다. 한 해 동안 최고 활약을 펼친 축구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축구 선수에게 가장 큰 위업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명예로운 상으로 꼽힌다.
김민재는 지난 9월 2023 발롱도르 후보 30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아시아 출신 수비수로는 처음 있는 일. 한국 선수로 한정한다면 5번째였다. 2002년 설기현(안더레흐트) 2005년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19년·2022년 손흥민(토트넘)이 이름을 올렸다. 최고 순위는 ‘주장’ 손흥민이 2022년 기록한 11위였다. 첫 득표 역시 손흥민이 기록했는데, 2019년 최종 22위를 기록한 바 있다.
김민재의 포함 소식이 의미 있던 건 30인 명단 중 수비수는 단 3명에 불과해서다. 당시 김민재는 후벵 디아스·요슈코 그바르디올(이상 맨체스터 시티)과 함께 유일한 수비수로 30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각각 30위와 25위를 기록했다. 김민재가 22위에 이름을 올리며 이들을 모두 제친 셈이다.
‘강행군’ 우려에도 개의치 않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주기도 했다. 김민재는 지난 10월과 11월 평가전과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취재진과 마주한 자리에서 “늘 말씀드렸지만, 뛰지 못해서 힘든 것보다 뛰면서 힘든 게 낫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집중력을 더 유지하겠다는 다부진 각오를 전하기도 했다.
A매치 일정을 마친 김민재는 다시 소속팀으로 돌아갔고, 다소 행운 섞인 휴식기를 가지고 있다. 먼저 뮌헨은 지난달 30일 FC 코펜하겐(덴마크)과 2023~24시즌 UCL 조별리그 A조 5차전을 벌였는데, 김민재는 엉덩이 타박상 탓에 경기 명단에서 빠졌다. 뮌헨은 이미 UCL 16강 진출을 확정 지은 탓에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행운은 이어졌다. 이번에는 뮌헨에 이어진 폭설로 지난 2일 베를린과의 리그 13라운드가 취소됐다. 김민재 입장에선 오는 9일까지 열흘가량 휴식을 취하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