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은 12일 발매된 두 번째 앰비언트 앨범 ‘비잉-위드’를 한마디로 이렇게 정의했다.
루시드폴이 올 겨울 ‘비잉-위드’로 돌아왔다. 정규 10집 ‘목소리와 기타’ 발매 후 약 1년 만의 신보다. ‘비잉-위드’에는 사람은 물론 바다 속 생물과 풀벌레, 미생물 다양한 소리를 음악으로 빚어 담았다. 최근 ‘비잉-위드’ 발매 전 일간스포츠를 만난 루시드폴은 신보에 대해 “내가 지금 가장 천착한 화두가 녹아있다”고 밝혔다.
앰비언트 음악은 반복적인 멜로디 구조를 부각하는 인스트루멘탈 음악(노래보다는 악기를 강조하는 음악)이다. 지난 2021년 ‘댄싱 위드 워터’ 이후 또다시 앰비언트 음악을 선보이는 루시드폴은 손가락을 다친 경험 이후 이 장르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10여 년간 제주살이를 하고 있는 그는 약 5년 전 농작물 작업 중 농기구에 손가락이 끼는 부상을 당해 큰 수술을 했다며 “지금은 다 나았지만 날이 추울 때 살짝 시큰거리는 느낌 정도만 남아 있다. 재활이 잘됐다”고 전했다.
“다쳤을 당시에는 ‘내가 기타를 다시 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 심란했어요. 기타로 노래를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라서 미래가 불안하더라고요. 자꾸 이런 걱정이 드니까 기타 음악이 아닌, 평소에 잘 안 듣는 음악들을 듣기 시작했고 그때 유난히 앰비언트 음악을 많이 들었죠. 어느 날 컴퓨터를 부랴부랴 사서 프로그램을 깔고 한 손으로 할 수 있는 앰비언트 음악 작업을 하기 시작했어요. 앰비언트 음악은 제게 보이지 않는 틀을 벗어난 계기라서, 마치 운명 같아요.”
사실 앰비언트 음악은 생소한 장르인 터라 리스너들에게 단번에 다가가기 쉽지 않다. 루시드폴 또한 “나도 아무리 노력해도 안 좋아하는 음악이 있지 않겠나. 앰비언트가 그랬다”며 “그런데 어느 순간 음악이 내게 직접 다가오는 게 아니라, 마치 향초처럼 내 주변으로 흩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 말했다.
“앰비언트 음악을 통해 기승전결이나 멜로디 라인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소리의 질감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클라이막스가 있는 흐름을 비껴가면서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그 이상한 흐름이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집에 있을 때, 과수원에서 일할 때, 모든 순간에 계속 듣고 있는데 딱 체온과 너무 잘 맞는 물을 마시는 느낌이에요. 자극은 없지만 너무 편안한 그 느낌이요.”
이번 신보는 여덟 마디 모티프의 반복과 변주가 돋보이는 ‘마인드미러’, 현악기 사운드를 해체하고 재조립해 소리의 재탄생을 보여 주는 ‘아비르’, 공사장의 굉음을 채집해 만든 ‘마테르 돌로로사’, 인간과 자연의 소리를 한 데 모아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낸 ‘미크로코즈모’, 한 시간 가량의 음악에 따스한 위로의 메시지를 담은 ‘트렌센던스’ 등 총 5곡이 수록됐다. 이들 중 타이틀곡은 ‘마테르 돌로로사’로 루시드폴은 거친 소리들을 통해 인간의 욕망에 신음하는 지구, 그리고 모든 생명을 위한 연민과 연대의 메시지를 담았다.
루시드폴은 신보 노트에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를 위한 찬가”라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건네는 음악도, 삶과 죽음 너머로 흩어진 곡도 들어있다”라고 소개했다. 그는 트랙스트들에 대해 “내가 지금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라며 “음악을 만들 때 콘셉트를 먼저 정한 적이 없다. 나의 작은 순간들이 모여 하나의 모음집 같은 음악을 선보였는데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다”고 설명했다.
“노래를 만드는 루시드폴이 있고, 여기에서 세포가 분열을 하듯 ‘2023년의 루시드폴’이 있죠. 음악적 자아가 또 하나 생긴 셈이죠. 지금의 저는 음악의 질감을 통해 리스너들에게 어떤 체험과 감동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바꿔 말하면 최소한 ‘듣기 싫은 소리’는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판단 기준이 있는데, ‘마테르 돌로로사’도 공사장의 소리이지만 설명하지 않으면 모르실 거예요. 있는 그대로의 소리를 트랙에 깔아 만든 게 아니라 잘게 잘라 뒤섞으면서 새로운 소리를 만든 거죠. 저는 이 작업을 ‘발효’라고 표현해요. 미생물을 발효시키면 다른 향이 나듯 소리도 그렇죠. 이번 제 음악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감동의 소리가 되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