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가 현실이 됐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조 꼴찌로 탈락했다. 김민재(바이에른 뮌헨)는 터프한 수비로 맨유의 실낱같은 희망을 짓밟았다.
맨유는 13일 오전 5시(한국시간) 영국 맨체스터의 올드 트래퍼드에서 벌인 바이에른 뮌헨과 2023~24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0-1로 졌다. 후반 터진 킹슬리 코망의 득점이 양 팀의 희비를 갈랐다.
‘기적’이 필요했다. 앞서 1승 1무 3패를 거둔 맨유는 뮌헨전을 앞두고 조 최하위에 위치했다. 일단 뮌헨을 꺾고, 같은 시간 코펜하겐(덴마크)과 갈라타사라이(튀르키예)가 비겨야 맨유의 16강행이 가능했다.
그러나 뮌헨의 벽은 높았다. 안방에서 뮌헨을 넘지 못한 맨유는 꼴찌로 조별리그에서 UCL 여정을 마무리했다. 조 3위까지 주어지는 UEFA 유로파리그 티켓도 손에 넣지 못했다.
일찌감치 16강행을 확정한 뮌헨은 조별리그를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뮌헨은 맨유전 승리로 조별리그 무패 기록을 40경기(36승 4무)로 늘렸다. 뮌헨은 지난 2017년 9월부터 단 한 차례도 UCL 조별리그에서 진 적이 없다.
이날 다욧 우파메카노와 짝을 이룬 김민재는 선발 출전해 풀타임 활약했다. 그의 수비는 맨유 홈구장인 올드 트래퍼드를 얼어붙게 했다. 몇 없었던 맨유의 기회를 완벽히 틀어막았다.
눈에 띄는 수비가 몇 차례 있었지만, 맨유 최전방 공격수 라스무스 회이룬을 막는 장면이 백미였다. 전반 44분 맨유의 역습 상황, 회이룬이 뮌헨 진영에서 볼을 잡았다. 이때 우파메카노가 대치해 회이룬이 전진하지 못하도록 시간을 끌었고, 김민재가 맨유 진영에서 순식간에 달려와 볼을 탈취했다. 1m 91cm의 회이룬과 몸싸움에서 완벽히 승리했고, 침착하게 볼을 빼앗아 연결하는 것까지 완벽했다. 회이룬은 올여름 이적료 7500만 유로(1063억원)를 기록한 공격수인데, 김민재 앞에서 꼼짝도 못했다.
전반적으로 군더더기 없었다. 이날 뮌헨이 볼 점유를 오래 하며 공격을 주도했는데, 김민재는 후방에서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톡톡히 했다. 김민재는 우파메카노와 함께 팀에서 가장 많은 패스(88회)를 뿌렸고, 선발 멤버 중 패스 성공률(94.3%)은 두 번째로 높았다. 그만큼 결점 없는 경기를 펼친 것이다.
나흘 전 ‘참사’는 완전히 잊은 모습이었다. 뮌헨은 지난 9일 프랑크푸르트와 독일 분데스리가 14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1-5 참패를 당했다. 당시 뮌헨의 수비를 책임졌던 김민재는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독일 빌트는 수비진 모두에게 최하점인 6점을 줬다. 빌트 평점은 1~6점으로 나뉘는데, 숫자가 높을수록 좋지 못한 활약을 펼쳤다는 뜻이다. 김민재가 뮌헨 유니폼을 입은 후 최하점인 6점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독일의 전 국가대표 수비수 토마스 헬머는 빌트TV를 통해 “개인 기량은 뛰어나지만, 팀으로 뭉치진 못했다”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몇 번의 경합에선 이겼지만, 실수도 꽤 많이 했다. 노련하지만 겁을 먹었다. 프랑크푸르트가 몇 차례 압박하자 공을 놓쳐버렸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러나 불과 나흘 뒤 열린 맨유전에서는 승리의 중심이 됐다. 외부의 평가에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번 승리는 김민재뿐만 아니라 참사로 인해 침체한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값진 승리였다.
영국 매체 90MIN은 김민재에게 양 팀 통틀어 가장 높은 평점인 8을 부여하며 “맨유가 여름에 그를 영입하는 데 실패하면서 놓친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 한국 국가대표의 멋진 활약”이라고 극찬했다.
김민재는 불과 반년 전만 해도 맨유와 강력히 연결됐다. 수비 보강이 필요했던 맨유가 일찌감치 김민재 영입전에 뛰어들었다. 김민재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뛰는 것을 선호한다는 보도가 쏟아졌고, 맨유행이 유력해 보였다. 하지만 뮌헨이 뛰어들면서 기류가 급변했고, 당시 맨유는 김민재를 놓쳤다. 그런 김민재가 맨유 안방에서 철벽 수비로 실낱같은 희망을 사라지게 한 것이다.
갈 길 급했던 맨유는 4-2-3-1 포메이션을 꺼냈다. 최전방에 라스무스 회이룬, 2선에 알레한드로 가르나초, 브루누 페르난데스, 안토니가 나섰다. 소피앙 암라바트, 스콧 맥토미니가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섰다. 수비 라인은 루크 쇼, 라파엘 바란, 해리 매과이어, 디오고 달롯이 구축, 골문은 안드레 오나나가 지켰다.
결과가 크게 상관없었던 뮌헨도 힘을 빼지 않았다. 해리 케인이 선봉에 섰고, 르로이 사네, 자말 무시알라, 코망이 그 아래를 받쳤다. 3선에는 레온 고레츠카와 요슈아 키미히가 섰다. 알폰소 데이비스, 김민재, 다욧 우파메카노, 누사이르 마즈라위가 포백 라인을 형성했고, 골키퍼 장갑은 마누엘 노이어가 꼈다.
뮌헨이 볼을 오래 점유하며 경기를 장악했다. 맨유는 전반 초반에 이렇다 할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전반 25분 맨유 가르나초와 코망 사이 한 차례 불꽃이 튀었다. 양 팀 선수들이 잠시 모였지만, 신경전은 크지 않았다.
전반은 지지부진했다. 뮌헨도 전방에서 마무리가 원활하지 않았고, 맨유의 역습도 번번이 막혔다. 우파메카노와 김민재 모두 높은 집중력을 발휘해 빈틈이 없었다.
후반도 전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뮌헨이 후반 26분 0의 균형을 깼다. 케인이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 맨유 골문을 등지고 원터치로 찌른 패스를 코망이 오른발로 마무리했다.
이후에도 맨유는 이렇다 할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결국 맨유는 안방에서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치욕적인 결과를 받아 들게 됐다.
경기 후 에릭 텐 하흐 맨유 감독은 “양 팀 모두 기회가 적었지만, 경기의 강도는 좋았다. 우리 쪽에서는 바이에른을 리듬에서 벗어나게 했고, 수비 조직력은 아주 좋지는 않았지만, 꽤 괜찮았다. 특히 후반전 초반에는 경기장 높은 곳에서 볼을 되찾아 브루누에게 좋은 기회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때로는 한 선수가 아니라 여러 선수가 실수해서 상대에게 기회를 내주기도 했다. 실망스럽다. 더 잘했어야 했다”고 총평했다.
UCL은커녕 조 3위까지 주어지는 UEFA 유로파리그 티켓도 손에 넣지 못했다. 텐 하흐 감독은 “아직 많은 경기가 남아있고, 이제 우리는 당연히 EPL에 집중할 수 있다. (우리가) UCL에 출전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년에는 UCL에 복귀해야 한다. 물론 FA컵도 있지만, (리그) 톱4에 들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토마스 투헬 뮌헨 감독은 경기 후 “우리는 조 선두로 16강에 진출했고 모든 초점은 한 단계씩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투헬 감독은 케인을 콕 집어 칭찬했다. 그는 “해리는 항상 차이를 만드는 선수다. 그의 성격, 침착함, 그리고 자질 덕에 팀은 해리와 함께 어떤 일도 곧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그룹의 최고 리더 중 하나”라며 엄지를 세웠다.
뮌헨의 유럽대항전 순항을 이끈 케인은 경기 후 “우리가 경기를 통제하고 더 나은 기회를 잡은 것처럼 느꼈다. 우리는 침착했고 빠른 전환으로 그들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정상(조 1위)에 오른 후에는 항상 힘들지만, 우리에게는 좋은 동기부여가 있었다. 오늘 이겨서 좋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목표인 우승으로 가는 길의 첫발을 순조롭게 뗐다. 케인은 “내가 바이에른에 도착한 후 모두가 놀라웠다. 앞으로 더 많은 것이 있을 것 같다. 감독이 무엇을 원하는지 더 알아가는 것 같다. 이곳이 내게 잘 맞는다”며 웃었다.
이어 “우리는 이 대회에서 멀리 갈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것이 바로 UCL에서 우승하려는 야망”이라며 “힘든 시험이 되겠지만, 우리는 계속 발전해야 한다. 나는 우리가 성취할 수 있는 또 다른 수준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