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7년, 10년까지 길게 본다면 난 중장거리 타자가 돼야 한다. 그게 내 최종 목표다."
배지환(24·피츠버그 파이리츠)이 루키 시즌 자신의 주력을 증명했다. 그가 보여주고 싶은 게 하나 더 남았다.
올해 배지환은 메이저리그(MLB)에서 처음으로 풀타임 시즌을 소화했다. 유망주 시절부터 80점 만점에 70점(아주 뛰어난 수준·상위 2.2% 수준) 평가를 받았던 준족은 기대대로였다. 시즌 중 왼 발목 부상을 입어 출전 경기 수가 다소 적었으나, 6월까지 20도루(최종 24도루)를 기록하는 등 빠른 발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5월 초까지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도루 1개 차까지 추격하는 등 도루왕 경쟁에도 참여했다.
MLB 공식 통계 홈페이지인 베이스볼 서번트에 따르면 배지환은 올해 주루 득점 가치(Run Value)로 리그 상위 7%에 들었다. 단순 스피드만 따지면 리그 최상위(상위 3%)에 이름을 올린다.
다만 타격에서는 부진했다. 마이너리그 시절 보여준 장타 가능성을 살리지 못했다. 2022년 마이너리그 트리플A에서 뛰었던 그는 시즌 타율 0.289, 장타율 0.430을 기록한 바 있다. 특히 5월 한 달 동안 장타율이 0.556에 달해 잠재력을 드러냈다.
배지환은 당시 본지와 인터뷰를 통해 "고교 시절에도 장타를 칠 자신은 있었다. 그러나 발이 빠르다는 이유로 '콘택트 위주의 타격을 해라'고 배웠다. 미국에 와서 장타를 의식한 건 아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스윙을 한 것이 주효했다. 자신 있는 공이 날아온다면 2스트라이크에서도 장타를 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홈런을 많이 치면서도 삼진을 당하지 않는 타자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배지환의 타격은 마이너리그에서 통했다. 그러나 빅리그는 달랐다. 올 시즌 최종 타율 0.231, 장타율은 0.331에 그쳤다. 주루와 달리 그의 타격 득점 가치는 하위 13%에 불과했다. 평균 타구 속도가 88.1마일에 불과했고, 배럴 타구(장타로 연결되는 각도와 속도를 지닌 타구) 비율도 2%(하위 25%)에 그쳤다.
MLB의 빅리그의 벽을 느꼈지만, 배지환의 목표가 바뀌지는 않는다. 지난 4일 본지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시상식 후 만난 배지환은 "구단의 주문은 항상 같다. 단타자가 되더라도 내 스피드를 살리길 바란다"고 했다. 피츠버그로서는 배지환이 아니더라도 오닐 크루즈, 키브라이언 헤이즈 등 상위 유망주 출신 타자들의 장타력이 뛰어나다. 배지환이 콘택트를 발전시켜 출루만 한다면 충분히 생산성을 살릴 수 있다고 계산한 셈이다. 과거 스즈키 이치로(은퇴)가 일본프로야구(NPB)에서 보여준 장타력을 포기하고, 빅리그에서 단타자로 롱런한 것도 좋은 롤 모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배지환은 아직 더 큰 꿈을 버리지 않았다. 배지환은 "아직 내 개인적 욕심이지만, 단타자에 그치는 건 너무 짧은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5년, 7년, 10년까지 길게 본다면 중장거리 타자가 돼야 한다. 그게 내 최종 목표"라고 답했다.
일단 당장은 완벽하게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올해 출전 경기 수가 113경기에 그친 것도 부상 탓이었다. 마이너리그나 KBO리그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162경기 시즌 일정도 쉽지 않았다고 했다. 배지환은 "지금은 부산에서 재활에 집중하고 있다"며 "마이너리그에 있을 때는 KBO리그처럼 월요일마다 쉬면서 시즌을 치렀다. 그런데 빅리그는 정기 휴일이 없고, 불규칙하다. 그러면서 어떻게 체력을 회복해야 할지 어려움도 겪었다. 시즌이 끝나는 시점에는 확실히 4~5월에 비해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지나간 건 어쩔 수 없다. 내년 시즌은 길게 보겠다. 체력을 안배하는 방법도 고민하면서 2024시즌을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