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는 질풍노도와 같았다. 2024년도 똑같다. 앞도, 뒤도 보지 않는다. 최고의 현재를 만든다면, 과거의 과정도 미래의 결과도 찬란할 것이다.”
김주성(44) 원주 DB 감독은 지난달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2023년을 돌아보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1월 감독대행을 맡은 그는 2023년의 마지막 순간 ‘1위 사령탑’ 명찰을 지켰다. 2024년에도 김 감독의 시선은 굳건히 ‘현재’에 향해 있다.
첫째 원칙은 ‘순리’
김주성 감독은 지난 1월 감독대행을 맡으며 친정팀 DB의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2002년 DB 선수로 데뷔해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이뤄낸 그가 20년 뒤엔 지휘봉을 잡은 것이다. 은퇴 후 막내 코치로 합류한 뒤 4년 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애초 김주성 감독의 구상과는 거리가 먼 결과기도 했다. 김 감독은 2018년 선수 은퇴 뒤 미국으로 향해 농구 인생의 제2막을 열었다. 김 감독은 “솔직히 말하면 ‘무조건 지도자, 감독을 하겠다’라는 계획이 있진 않았다. 그런 기회가 당연히 주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다만 나는 순리대로 하는 걸 좋아한다. 그땐 DB에 남아 지도자 생활을 하는 흐름이었다”라고 돌아보면서 “다른 일을 하기보단 계속 흐름을 타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첫 행선지로 미국을 택한 건 더 많은 경험을 쌓기 위해서였다. 유학비자까지 발급받은 김주성 감독은 가족들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로 향해 UCLA, UC 얼바인 등 대학농구 현장을 두루 돌아봤다.
김주성 감독에게 ‘미국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을 묻자, 그는 “생각과 달리 감독들이 선수들을 거세게 압박했다. 함께 뛰면서 열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더라”라고 혀를 내둘렀다. 미국에서 2~3년을 보내기로 계획했지만, 기회는 빨리 찾아왔다. 은퇴한 지 1년 뒤인 2019년, 친정팀 DB에서 그를 막내 코치로 선임했다.
김주성 감독은 “막내 코치로 왔을 때, 사령탑으로 부임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다. 감독이 안 되더라도 다시 미국에서 공부할 생각이었다. 엄청난 개척 정신은 없지만, 할 것이라면 확실히 하려고 한다”고 돌아봤다.
농구 인생을 갈아 넣은 이틀
그는 코치 부임 4년 만에 감독 기회를 잡았다. 2023년 1월 이상범 전 감독이 성적 부진 끝에 지휘봉을 내려놓은 것이다. DB는 ‘원클럽맨’ 김주성 감독에게 감독대행을 맡겼다. 당시를 회상한 김 감독은 “공식 발표 후 사흘째가 울산 현대모비스와의 원정경기였다. 선수 선발부터 모든 걸 나 혼자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농담 반으로 내 농구 인생을 그 이틀에 전부 쏟아 넣었다”라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당시 DB는 연장 접전 끝에 현대모비스를 94-90으로 꺾고 김주성 감독의 데뷔전 승리를 이뤘다. 김 감독은 “그런 준비 과정을 겪으며 많은 공부가 됐다. 해당 시즌 25경기를 치르며 연승도, 연패도 해봤다. ‘더 공부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 오전 8~9시쯤 사무실에 나오면, 밤 10시까지 계속 앉아 비디오를 보며 공부했다. 지금 한상민, 이광재 등 코치진과 대화를 나누는 게 일상이 됐다”라고 돌아봤다. 구단은 시즌을 마친 뒤 김 감독에게 3년 계약을 안기며 그를 정식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다 나가” 호통의 비하인드 스토리
선수 시절 산전수전을 다 겪은 김주성 감독에게도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선수 관리다. 소위 말하는 ‘요즘 선수들’의 행동에 한창 신경 쓴다. 선수 시절 무표정하기로 유명한 김 감독은 시즌 중 엄청난 ‘호통’으로 화제가 됐다. 지난 11월 안양 정관장과의 경기에서였다. 당시 DB는 큰 점수 차로 정관장을 압도하고 있었는데, 경기 중반부터 연이은 야투 실패가 나오며 흐름이 끊겼다. 특히 외국인 선수 이선 알바노는 플레이가 풀리지 않자 거듭 아쉬운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때 김주성 감독은 작전타임을 외친 뒤 주전들을 향해 “모두 싹 다 나와”라고 강하게 질책했다. 안일한 플레이로 경기를 이어가고 있는 선수단에 경고 메시지를 남긴 것이다. 당시 중계 화면에도 해당 장면이 생생히 전달됐다. 김 감독의 호통 이후 베테랑 김종규가 후보 선수들을 격려하는 모습이 함께 화제되기도 했다. 김주성 감독은 “알바노 같은 주전 선수들이 화를 내고 짜증 섞인 제스처를 하면, 식스맨이나 벤치 선수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그런 표현이 계속되면 결국 팀 케미스트리가 무너질 것이라 봤다. 이때 선수단 분위기를 잡지 않으면 나중에 흔들릴 것이라 판단했다”라고 돌아봤다.
동시에 스스로의 반성도 빼놓지 않는다고. 김주성 감독은 “개막 후 첫 2연패 때도 그렇지만, 나도 코치진과 ‘뭔가 잘못됐다. 우리도 뭔가 (나사가) 빠져있다’라고 얘기를 나눴다. 선수들은 코치, 감독이 대충하면 그걸 바로 알아챈다. 선수들이 대충하는 걸 팬들이 알듯이 말이다. 우리부터 바꿔 나가야겠다 싶었다”라고 말했다. DB는 2연패 후 연승 가도를 달리며 압도적 1위를 수성하고 있다.
승리보다 간절한 ‘에너지’
DB는 지난달 31일 정관장전에서 승리하며 2023년을 5연승으로 마무리했다. 2일 기준 2위 서울 SK에 3.5경기 앞선 1위다. 2023~24시즌 개막 후 한 차례도 정상을 놓치지 않았다. 마치 지난 시즌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에 성공한 정관장 같은 페이스다. 하지만 김주성 감독은 “그런 가능성은 저 멀리에 묻어놨다”라고 선을 그으며 “압도적인 우승은 로망 중 하나지만, 중요한 건 다가오는 한 경기에 집중하는 것이다. 내가 원한 건 단순히 승리가 아닌, 마지막까지 승부할 수 있는 에너지 있는 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로 데뷔 시즌인 2002년 팀의 첫 번째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함께한 김주성 감독이 사령탑으로도 우승의 맛을 볼 수 있을까. 김 감독은 “시즌 전에도 말했지만, 나도 선수단도 발전해야 하는 시기다. 겸손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선수 시절 난 농구를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비는 자신 있었지만, 내 실력을 온전히 발휘한 건 70%밖에 안 됐다. 대신 좋은 팀, 감독님들을 만나 좋은 커리어가 됐다. 운칠기삼이라고 하던가, 나는 운구기일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라고 웃어 보였다.
끝으로 김주성 감독은 “코로나19 이후, 생활이 다시 활기를 되찾은 것 같다. 우리 모두에게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게 증명된 게 아닐까 싶다. 농구에서 샷클락에 쫓기듯 우리 인생도 비슷한 것 같다. 계속 쫓기기만 하다 보면 스스로에게 좋지 않다. 그럴 때 하늘을 보며 한순간의 여유를 찾으시길 기원한다”라며 신년 인사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