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최고령 사령탑 김학범(63) 제주 유나이티드 신임 감독은 ‘체력’을 강조했다. 의미 없는 발언은 아니었다. 김 감독은 “요즘 축구는 100분 축구”라면서 남들보다 더 뛸 제주를 예고했다.
김학범 감독은 지난달 제주의 제17대 사령탑으로 선임됐다. 지난 2016년 광주FC를 떠난 뒤 6년 만의 복귀, 새 시즌을 맞이하는 것을 감안하면 무려 7년 만이다. 물론 축구계를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다.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을 이끌고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AG) 우승, 2020 도쿄 올림픽 8강을 이끌었다. 공부하는 감독으로 알려진 김 감독은 올림픽 이후로는 지휘봉을 내려놓고 세계를 돌며 공부에 매진했다.
제주는 2023시즌 최종 성적 9위로 마무리했다. 프로축구연맹이 지난 4일 공개한 연봉 지출표에 따르면, 팀 연봉은 4위에 달했다. 여러 방면으로 기대치를 밑돈 결과였다. 쇄신을 바라본 제주는 베테랑 김학범 감독을 선임하며 반등을 노린다.
김학범 감독은 10일 서귀포시 제주 유나이티드 클럽하우스에서 열린 취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과 마주했다. 김 감독은 먼저 “아름다운 제주에 오게 돼 행복감을 느낀다. 모든 구성원이 행복할 수 있는 축구를 하려고 한다. 모두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렇다면 김학범 감독이 진단한 제주는 어떤 팀일까. 김 감독은 “잘할 때는 잘하지만, 떨어질 땐 떨어지는 굴곡이 심한 팀 중 하나다. 특히 홈 승률이 너무 낮다. 급선무는 홈 승률을 끌어올리는 것이다”라고 짚었다. 취재진이 해결 방안에 대해 묻자, 김 감독은 “홈 승률을 높이기 위해 어떤 방법이 있을지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라고 말을 아꼈다.
이어 취재진이 제주의 올 시즌 목표에 대해 묻자, 김학범 감독은 “3단계가 있다”라고 운을 뗀 뒤 “먼저 6위 안에 드는 것이다. 두 번째 목표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주관 대항전 티켓을 따는 것, 세 번째는 우승”이라고 힘줘 말했다.
끝으로 김학범 감독은 “제주를 원정팀의 무덤으로 만들겠다”라고 공언했다. 김 감독은 “요즘 축구는 90분이 아니라 100분 축구다. 그만큼 강인한 체력을 요구한다는 의미다. 남들보다 한 발, 1~2m 더 뛰는 축구를 해 상대를 괴롭힐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취재진 사이에선 ‘한라산 등반’에 대한 질의도 나왔다. 체력을 강조한 김학범 감독이니만큼, 실제 성사 여부에 대해 물은 것이다. 이에 김학범 감독은 “선수단뿐만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갔으면 좋겠는데, 신청제라서 어려울 것 같다. 도에서 도와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일단 나라도 등산하겠다”라고 미소 지었다.
한편 이번 선임으로 과거 아시안게임에서 함께한 김은중 수원FC 감독, 이민성 대전하나시티즌 감독과 마주하게 된 김학범 감독이다. 이에 김 감독은 “두 감독 모두 잘하고 있다. 승부의 세계에선 누가 이길지 모른다. 맞대결한다면 어떻게든 이기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웃었다.
다음은 김학범 감독 일문일답.
-취임 소감은. “아름다운 제주에 오게 돼 행복감을 느낀다. 모든 구성원이 행복할 수 있는 축구를 해보려고 한다. 팬들이 지켜봐 주신다면 행복한 축구가 이런 것이라는 걸 아실 것이다. 최선을 다해보겠다.”
-제주의 지난 시즌 홈 승률이 낮았다. 어떤 전략을 세울 것인지. “그동안 많은 분이 홈 경기 승리를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제주를 봤을 때 홈 승률이 너무 낮다. 급선무는 홈 승률을 높이는 것이다. 사실 과거 K리그에서 제주를 상대할 때 제주 원정이 굉장히 까다롭고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홈 승률을 높여서 팬들이 좋아할 수 있는 경기를 하고 싶다. 방법을 찾고 있다.”
- 취임 후 새 외국인 선수 등을 영입했다. 어떤 영입 전략을 세운 것인지. “제주는 수비력보다는 득점력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중원과 공격진을 보강했다. 많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 K3리그에서 활약한 제갈재민 선수를 영입했는데. “프로에서 한 차례 좌절을 맛본 선수다. 하지만 여러 팀, 지난해엔 목포에서 많은 걸 이뤘다. 배고픈 선수는 갈망하는 게 있다. 이곳이 알맞은 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아시안게임 당시 함께한 김은중, 이민성 감독과 재회하게 됐다. “쉬는 동안 이민성 감독은 내 선배, 김은중 감독은 동기가 됐다. 둘 다 잘하고 있다. 승부의 세계에선 누가 이길지 모른다. 맞대결한다면 어떻게든 이기도록 노력하겠다.”
- 공부하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제주의 장단점, 그리고 목표는. “잘할 땐 잘하다가, 떨어질 때 떨어지는 굴곡이 심한 팀 중 하나였다. ‘왜 안 될까’라는 생각도 했다. 지금은 파악 중이다. 목표를 잡으라고 한다면 3가지로 구분하겠다. 첫 번째는 6강, 두 번째는 ACL 티켓, 세 번째는 우승이다.”
- 신임 감독에겐 구단으로부터 ‘선물’이 주어지곤 한다. 감독님이 원하는 선물이 있다면. “감독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렇지만 무턱대고 할 수 없다. 구단에서도 노력하고 있다. 스쿼드 안에서 어떤 선수가 필요할지 구단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 중이다.”
-6시즌 정도 K리그에서 떨어져 있었다. 어떤 부분이 많이 향상됐을까. “단순히 숫자적으로만 떨어진 것이다. 그동안 연령별 대표팀을 이끌며 선수 선발을 위해 꾸준히 현장에 있었다. 리그 수준을 봤을 땐 발전한 팀도, 떨어진 팀도 있다. 과거 수비 축구한다고 내려서는 팀이 많았지만, 지금은 라인을 올려 압박하고 있다. 세계적인 축구 트렌드 아닌가. 고무적이고, 좋은 현상이다.”
-구상하고 있는 축구가 있다면. “이 팀의 모든 것을 파악한 뒤에 결정할 것이다. 지금 축구는 90분 축구가 아니라 100분이다. 강인한 체력을 요구한다. 남들보다 한 발, 1~2m 이상 뛰는 축구를 할 것이다. 상대를 괴롭히는 축구 말이다.”
-아시안게임에서 활약한 후배들이 아시안컵을 앞두고 있다. 일본과의 대결을 전망해 본다면. “일본과 결승에서 맞붙을 것 같다. 결승전에서 붙는다면 우리가 이길 것 같다. 중요한 건 결승까지 가는 과정이다. 앞서 이라크와의 평가전에선 로테이션이 원활하지 않았던 것 같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선택에 따라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일본이 결승에 올라온다는 보장도 없다.”
- 1차 전지훈련을 제주로 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태국 전지훈련을 기획했지만, 지금 선수들의 몸 상태가 제대로 올라오지 않는 상황에서 나가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차분하게 준비를 마치는 게 우선이라고 봤다. 특별한 이유라기보단,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다.”
-K리그 최고령 감독이 됐다. 구단들이 베테랑 감독을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면.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어리다고 해서 신선한 것도 아니다. 소통을 잘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영국 로이 호지슨 감독은 70이 넘는 나이에도 지휘봉을 잡고 있다. 생각의 전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책임감 있게 한다면,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가 갈 것이라 생각한다. 연구하고, 집중할 생각이다.”
-눈여겨본 팀, 롤 모델로 삼고 싶은 팀이 있다면. “어느 한 팀, 감독을 꼽기보다 그들의 장점만 모아 접목하고 싶다. 백3, 백4 모두 감독마다 다르다. 유럽에선 공격, 수비 시 폭이 굉장히 좁아졌다. 그런 부분도 고민하고 있다.”
-부임 후 선수단에 강조한 부분이 있다면. “첫 번째 얘기는 ‘도와달라’는 말이었다. 나도, 선수도, 구단도 도와 모든 정점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 팀이 하나가 돼야 위기일 때 일어설 수 있다. 하나가 될 수 있는 팀을 강조했다.”
-제주가 전통적으로 한라산 등반을 하곤 했는데, 계획이 있나. “우리 팀만 아니라, 18세 이하, 구단 직원 모두 가고 싶다. 한라산이 허락을 해주지 않는다. 한라산이 겨울에 올라가면 굉장히 좋다. 기회가 된다면 모든 구성원이 가고 싶다. 도에서 도와줘야 가능할 것 같다. 지금은 접어둔 바람이다. 일단 나라도 올라 갔다 올 생각이다.”
- 지난 시즌 K리그에서 흥미롭게 본 팀과 그 이유는. “생각은 다 똑같을 것이다. 포항 스틸러스와 광주FC다. 뛰어난 경기력과 성적을 거뒀다. 프로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그런 팀과 경쟁해야 하는 입장이다. 나의 숙제 중 하나다.”
-선수들에게 어필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어필을 할 필요가 없다. 선수들이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어필보단, 다 같이 가는 게 중요하다. 이제 강압적인 건 먹히지 않는 시대다. 서로 같이해야 하는 시대다.”
- 감독님을 기다리는 팬들이 많다. 인사를 전한다면. “이제 제주는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경기를 보여드릴 것이다. 특히 홈에서의 좋은 경기를 약속하겠다. 반대로 원정팀의 무덤이 될 수 있는 팀이 되게 하겠다. 팬들의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선임 배경으로 제주의 리빌딩에 대한 언급도 나왔다. 어떤 계획이 있는지. “리빌딩이라는 건 한 번에 되지 않는다. 하나씩 해결 방법을 의논하고 있다. 서서히 바꿔야 건강한 팀이 될 수 있다.”
- 마지막 대회였던 도쿄 올림픽에서 8강에 그치며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이제는 황선홍 감독이 도전을 앞두고 있는데, 조언을 하자면. “지금의 올림픽을 논하기 앞서, 과정이 중요하다. 아직 올림픽 티켓을 확정하지 않았다. 하나씩 해결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도전해 보니 쉽지 않은 길이다. 한 단계 한 단계 잘 밟아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