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은 없었다. 일본이 인도네시아를 완파하고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D조를 2위로 마쳤다. 이제 남은 건 한국의 조별리그 E조 최종 순위다. 한국이 조 1위에 오르면 16강에서 한일전이 성사된다. 이번 대회 가장 강력한 두 우승 후보이자 영원한 라이벌 간 맞대결이 조기에 펼쳐질 가능성이 커졌다.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이끄는 일본은 24일 오후 8시 30분(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의 알투마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회 조별리그 D조 최종전에서 우에다 아야세(페예노르트)의 멀티골을 앞세워 인도네시아를 3-1로 제압했다. 인도네시아 사령탑은 신태용 감독이다.
전반 6분 만에 우에다의 페널티킥 선제골로 앞서간 일본은 후반 7분 도안 리츠(프라이부르크)의 어시스트를 받은 우에다의 추가골로 승기를 잡았고, 후반 43분엔 상대 자책골까지 터지며 승기를 굳혔다. 추가시간 만회골을 허용했지만 결과에는 영향이 없었다.
이로써 일본은 승점 6(2승 1패)을 기록, 이라크(3승·승점 9)에 이어 D조를 2위로 통과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는 승점 3(1승 2패)으로 3위다. 만약 이날 인도네시아가 이겼다면 인도네시아와 일본의 순위가 뒤바뀔 수 있었지만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본은 71.2%에 달하는 볼 점유율에 슈팅 수에서도 14-3으로 크게 앞섰다.
큰 반전 없이 일본이 D조를 2위로 통과하면서 대회 결승전이 아닌 16강에서 한일전이 펼쳐질 첫 번째 조건도 채워졌다. 남은 조건은 한국의 조별리그 E조 1위 등극 여부다. 만약 한국이 조 1위로 통과하면, 당초 결승에서나 펼쳐질 것으로 보였던 한일전은 16강 외나무다리에서 조기에 펼쳐지게 된다.
일본이 조별리그 D조를 1위로 통과하지 못하는 바람에 16강 한일전 성사 가능성이 커졌다. 당초 한국과 일본은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고, 자연스레 각 조 1위로 조별리그를 통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만약 한국과 일본이 나란히 조별리그를 1위로 통과했다면 대회 토너먼트 대진에 따라 결승 이전엔 만날 가능성이 없었다. 한국과 일본 모두 우승 전력으로 평가받은 만큼 대망의 결승전에서 한일전이 성사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다. 아시안컵 최고의 흥행카드였다.
그러나 일본이 지난 2차전에서 이라크에 1-2로 충격패를 당하면서 대회 전 예상이 모두 빗나갔다. 일본은 첫 경기에서도 베트남에 4-2로 재역전승을 거두며 진땀을 흘린 데 이어, 이라크에 무릎을 꿇으면서 자존심을 잔뜩 구겼다. 결국 일본이 D조 1위가 아닌 2위로 통과하면서 토너먼트 대진에도 큰 변수가 생겼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일본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한일전이 16강에서 조기에 펼쳐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16강 한일전을 위한 남은 조건은 한국의 조별리그 E조 1위다. 이번 대회 토너먼트는 미리 구성된 대진표에 따라 E조 1위와 D조 2위(일본)가 격돌한다. 한국은 최종전을 앞둔 현재 E조 2위에 올라 있는데, 최종전 결과에 따라 1위에 오를 수 있다. 조별리그 최종전 대진 등을 고려하면 1위 통과 가능성, 즉 16강 한일전 성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조별리그 E조 최종전 대진은 25일 오후 8시 30분 한국과 말레이시아(알자눕 스타디움), 요르단과 바레인(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의 경기가 동시에 열린다. 중간 순위는 요르단, 한국(이상 승점 4) 바레인(승점 3) 순이다. 한국은 요르단에 득실차에서 2골 뒤져 2위에 처진 상태다.
한국의 최종전 상대인 말레이시아는 이미 2연패로 탈락이 확정됐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한국이 23위, 말레이시아는 130위로 격차도 워낙 크다. 경고 변수 등을 지우기 위해 로테이션을 가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는 가운데 설령 핵심들이 대거 빠진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전력이 월등히 우위라는 평가다.
만약 한국이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무승부 이하에 그치면 조 1위 가능성은 사라진다. 만약 말레이시아에 지고, 요르단도 바레인에 지면 득실차에 따라 한국이 조 3위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객관적인 전력상 한국이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무승부 이하에 그칠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국 한국의 말레이시아전 승리를 전제로 따져볼 건 요르단과 바레인전 결과다. 만약 선두 요르단이 바레인을 이기지 못하면 한국이 승점 7을 기록, 요르단과 바레인을 제치고 조 1위로 오르게 된다. 16강 한일전 성사도 확정된다.
한국도, 요르단도 나란히 승리하면 두 팀은 승점 7로 동률을 이룬다. 아시안컵은 승점이 같으면 상대 전적을 먼저 따지지만, 앞서 한국과 요르단이 2-2로 비긴만큼 조별리그 전체 득실차와 다득점 등을 따져 최종 순위를 가린다. 이미 득실차에서 요르단에 2골, 다득점에서 1골 뒤진 만큼 한국은 말레이시아전을 상대로 다득점 승리가 필요하다. 예컨대 요르단이 바레인을 1-0으로 제압하면, 한국은 말레이시아에 3-0으로 승리해야 1위로 오를 수 있다.
관건은 요르단의 바레인전 승리 여부다. 한국의 말레이시아전 승리는 유력한 데 반해 요르단이 바레인을 잡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FIFA 랭킹에서는 바레인이 86위, 요르단은 87위로 요르단이 한 계단 더 낮다. 바레인이 아직 16강을 확정하지 못했다는 점, 대신 무승부만 거둬도 자력으로 16강에 오를 수 있다는 점도 요르단과 바레인전 결과에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결국 한국이 말레이시아에 덜미를 잡히는 등 이변이 발생하지 않는 한 16강에서 한일전이 성사될 가능성이 매우 커진 분위기다. 축구 통계 업체 옵타는 한국이 1위에 오를 확률을 약 56%로, 요르단과 바레인의 1위 확률은 각각 약 38%와 6%로 내다봤다. 한국이 16강에서 일본을 만날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신 한국이 E조 1위가 아닌 2위로 16강에 오르면 F조 1위와 격돌하게 된다. F조 1위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태국이 경합을 펼치고 있다. E조 3위로 16강에 오르면 A조 1위이자 개최국인 카타르와 8강 진출을 놓고 다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