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SBS 제공) 망자의 한(恨)을 통쾌하게 풀어 주는 ‘신들린 변호사’ 신이랑과 승소에 모든 것을 건 ‘냉혈 엘리트 변호사’ 한나현의 기묘하고도 따뜻한 한풀이 어드벤처, SBS 금토드라마 ‘신이랑 법률사무소’가 화제입니다.
지난 21일 방영된 4화에서는 걸그룹 연습생 수아의 죽음을 둘러싼 아이돌 세계의 경쟁과 질투, 배신과 반전, 그리고 살인사건의 진범을 추적하는 범죄 서스펜스같은 긴박한 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 이 이야기가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누가 수아를 죽였는가’라는 범인의 실체를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면에 숨겨진 저작권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데 있습니다.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자작곡이 어떻게 타인의 손에 넘어가고, 그 과정에서 진짜 창작자의 이름이 어떻게 지워질 수 있는지 사건 그 이상의 서늘한 여운을 남깁니다.
극중 신이랑(유연석)은 수아(오예주)가 죽던 날 들었던 휴대전화 벨소리의 주인이 글로리 엔터의 작곡가 고종석(정시헌)이라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이후 수아의 영혼과 함께 그의 집에 들어간 신이랑은, 고종석이 수아의 휴대전화에 담긴 가사와 자작곡을 몰래 들여다보며 자신의 곡처럼 활용하려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고종석은 그 곡의 가치를 알아챈 뒤, 수아의 곡을 자신의 곡으로 둔갑하여 세상에 발표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초 이 사건은 표절시비가 끊이지 않던 작곡가 고종석이 연습생(수아)의 미발표곡에 탐을 내 저지른 살인사건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반전은 진범이자 공범이 수아의 가장 가까웠던 연습생 동기 엠마(천영민)였다는 점입니다. 수아의 자작곡을 가장 먼저 듣고 그 노래의 가치를 알아본 엠마는, 수아를 속여 곡을 보내달라고 한 후 자신의 곡처럼 고종석에게 들려주었고, 데뷔조 탈락의 공포 앞에서 수아를 경쟁자이자 장애물로 여겨 끝내 살인까지 저지릅니다.
범행을 목격한 고종석이 신고하려 하자, 엠마는 오히려 고종석이 연습생의 자작곡이 탐나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뒤집어 씌우겠다는 협박으로 사건을 은폐시킵니다. 결국 두 사람은 공모하여 수아의 휴대전화와 자작곡을 통째로 가로챕니다. 이로써 사건은 단순히 ‘누가 수아를 죽였는가’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게 됩니다.
◇저작권은 언제부터 발생되나
현실에서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거나 저작권협회에 등록되지 않으면 저작권이 발생하지 않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작권은 특허처럼 등록으로 생겨나는 권리가 아닙니다. 창작적 표현이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는 순간, 원칙적으로 저작권이 발생하게 됩니다. 저작권 등록은 권리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문이 아니라, 분쟁이 벌어졌을 때 누가 언제 무엇을 창작했는지를 보다 쉽게 증명하기 위한 장치에 가깝습니다.
이 점에서 수아의 휴대전화는 단순한 소지품 그 이상입니다. 그 안에 남겨진 가사와 음성 메모 속 멜로디, 미완성 데모 파일이 비록 미공표된 저작물이지만, 아이디어를 넘어 표현의 형태로 구체화되었다면 이미 저작권 보호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수아의 휴대전화 속 기록은 단순한 흔적이 아니라, ‘누가 이 노래를 만들었는가’를 증명하는 가장 직접적인 창작의 이력서입니다.
◇저작권 침해: 표절보다 잔인한 창작자 존재의 삭제
이 사건이 유독 잔인한 이유는 단순히 ‘표절’이라는 저작권 침해를 넘어, 작품에서 진짜 창작자의 존재 자체를 지우려 했다는 데 있습니다.
저작권법이 저작인격권 중 하나인 ‘성명표시권’을 보장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작품은 단순한 재산이기 이전에, 창작자의 생각과 감정, 시간과 삶이 투영된 인격의 표현이기에 저작자가 자신의 실명이나 예명을 표시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고종석과 엠마가 노린 것은 단순한 멜로디 몇 마디가 아니라 그 노래 속에 새겨진 ‘수아’라는 존재 자체를 훔치려 한 것입니다.
◇ 저작권, 돈의 권리이기 전에 ‘이름의 권리’
저작권을 말할 때 우리는 종종 저작권료, 수익배분, 인세와 같은 ‘돈의 언어’부터 떠올립니다.
물론 경제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창작자에게 저작권은 단지 수입원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작품을 언제, 어떤 이름과 모습으로 세상에 내놓을지 결정할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발표 저작물에서는 ‘공표권’이 중요합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노래라면, 그 노래를 언제 어떤 형식으로 세상에 내놓을지 정할 사람은 원칙적으로 창작자 자신입니다. 누군가 그 노래를 몰래 발표하거나 타인의 이름으로 공개하는 것은 단순한 무단이용을 넘어, 저작자의 시간과 이름을 가로채는 일과 같습니다.
◇저작자 사망 뒤 미공표 저작물은 누가 공개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수아처럼 저작자가 사망하고 노래가 공표되지 않은 경우, 누가 이 곡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을까요? 흔히 상속자가 그 권한을 그대로 물려받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저작권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저작권 중 재산권은 사후 70년간 존속하며 상속되지만, 인격권은 저작자 개인에게 귀속되는 권리여서 그대로 상속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단순히 ‘공표권을 누가 물려받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상속된 저작재산권의 행사와 저작자의 사후 인격적 이익 보호를 조화시킬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해야 합니다.
저작권법은 저작자 사후에도, 생전의 저작인격권이 침해될 만한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유족이나 유언집행자는 침해 행위의 정지나 명예회복에 필요한 조치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저작자가 사망했다고 해서 그의 인격적 권리가 법적으로 완전히 소멸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고종석과 엠마가 수아의 곡을 제멋대로 발표하려고 한 시도는, 수아가 생존해있었다면 자신이 결정했어야 할 공개의 시점과 방식, 그리고 자신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갈 권리를 타인이 가로채려 한 잔인한 범죄인 것입니다.
◇ 저작권, 돈의 권리이기 전에 ‘존재의 권리’
‘신이랑 법률사무소’ 4회를 저작권의 시각으로 다시 보면, 한 사람을 추락시킨 물리적 폭력 너머로 한 사람의 창작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타인의 이름을 남기려 한 또 하나의 폭력이 공존합니다. 수아를 옥상 아래로 떠민 손과, 수아의 노래에서 수아의 이름을 밀어내려 한 손. 하나는 생명을 지우고, 다른 하나는 존재를 지우려 했기에 더욱 섬뜩합니다.
창작물이 한 사람의 시간과 감정 등 다양한 삶의 흔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저작권은 ‘돈의 권리’이기 이전에 ‘존재의 권리’입니다. 창작의 출처보다 자본의 힘을, 진실한 이름보다 유명한 이름으로 창작자를 지운 채 작품만 소비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결국 문화의 이름으로 사람을 소모하는 사회일 수밖에 없습니다.
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김지욱 대표(사진=본인 제공)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