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의 좌완 투수 이승현은 이번 비시즌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냈다. 시즌 종료 후인 11월 호주야구리그(ABL) 애들레이드 자이언츠에 파견돼 공을 던졌고, 돌아온 뒤엔 나흘 휴식만 취한 뒤 다시 운동에 매진했다. 눈 떠보니 벌써 스프링캠프, 하지만 이승현은 “전혀 힘들지 않다”라며 기지개를 켰다.
겨울 호주행은 이승현에게 큰 자산이 됐다. 부담 없이 하고 싶은 야구를 할 수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이승현의 선발 도전. 2021년 데뷔 후 삼성에서 줄곧 필승조 불펜 역할만 했던 이승현은 호주에선 줄곧 선발 마운드에 올랐다. 출국 전 선발에 도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구단에 전달했고, 코칭스태프들이 이를 수락하면서 성사됐다.
박진만 삼성 감독도 이승현의 선발 도전을 흔쾌히 수락했다. 아직 스프링캠프 초반이지만, 선발 후보로 그의 이름을 넣었다. 박진만 감독은 “선발진은 외국인 선수 2명과 원태인은 고정이고 4선발은 백정현을 생각하고 있다. 5선발 한 자리를 두고 최채흥과 황동재, 선발 도전하는 좌완 이승현 등이 경쟁 중이다”라고 말했다. 욕심과 의지만으로 선발 후보에 든 것은 아니다. 호주에서 선발로서 좋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가능한 선발 도전이었다.
미국 메이저리그 및 마이너리그, 일본 프로야구 등 다양한 경험을 가진 선수들이 모여 있는 호주 야구리그를 경험하면서 이승현의 시야도 넓어졌다. 이승현은 “몸을 푸는 방법도 모두 다르고, 야구를 대하는 태도도 다 다르더라. 마운드 위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부상 방지를 위해 관리하는 모습들도 보면서 도움이 많이 됐다”라고 전했다.
뜻밖의 은인도 만났다. 애들레이드에서 짧게나마 한솥밥을 먹은 무라타 토오루(일본·니혼햄 파이터스)였다. 이승현과 이병헌, 박권후 등 함께 애들레이드 유학을 떠난 삼성 선수들을 잘 챙겼다는 무라타는 저조한 구속에 힘들어하던 이승현을 위해 이승현의 과거 투구 영상을 찾아보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충분히 150㎞/h 다시 던질 수 있다”라고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면서 이승현을 격려했다는 후문이다. 이승현에게 큰 힘이 됐다.
새 시즌 KBO리그에 도입될 가능성이 높은 피치클록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호주 리그는 피치클록을 하지 않지만, 함께 호주로 간 박희수 2군 투수 코치가 초시계로 이승현의 투구 시간을 점검하고 조율했다. 이승현은 “처음엔 힘들었다. 생각보다 빠듯하더라. 포수에게 공을 받을 때 마운드에서 세네발짝 내려와서 받는데, 이때부터 시간을 잰다. 마운드 위에서 숨 고르고 땀 한번 닦고 던지는데 15초가 금방 가더라. 그래도 박희수 코치님이 주자 있을 때와 없을 때 시간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지금은 익숙해졌다”라고 돌아봤다. KBO리그에서도 계속 같은 템포로 공을 던지겠다고 말했다.
겨울에 땀 흘리며 거둔 값진 경험들. 새 시즌 이 노력이 결실을 맺으려면 안 아픈 게 최우선이다. “선발 도전에 대해 의식하지 않고 지금은 캠프에서 몸을 잘 만드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그는 “성적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안 아프고 1군에 계속 머무는 것이 목표다”라며 새 시즌에 임하는 각오를 전했다.